위대한 탐험의 숨은 영웅 톰 크린
1912년 1월 4일. 여덟 명의 대원은 마지막으로 악수하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스콧이 어젯밤에 팀을 다시 꾸리기로 하고 테디 에반스, 래실리, 크린에게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크린은 지난 두 달 동안 노력했음에도 남극점을 밟을 기회를 놓친 것이다. 스콧, 윌슨, 보워스, 오츠, 태프 에반스가 살아서 이동하는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았다.
크린, 래실리, 에반스는 베이스캠프까지 1206킬로미터를 되돌아가야 했다. 네 명이 해야 할 일을 셋이 하며 남극점을 정복하고 돌아올 대원들을 위해 식량과 연료의 4분의 1을 저장소마다 남겨두고 가야 했다. 더군다나 테디 에반스만 유일하게 방향을 찾는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에반스는 괴혈병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세 사람은 180킬로그램의 짐을 실은 썰매를 끌며 나아갔다. 기온은 섭씨 영하 29도까지 내려갔고, 바람이 '얼어붙은 바늘 끝으로 뺨을 찌르는 것처럼' 얼굴을 후려쳤다.
1월 17일. 스콧은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아문센의 탐험대가 한 달쯤 전에 먼저 왔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셋은 크레바스가 숨어 있는 미로와 같은 벌판을 계속해서 나아갔다. 1월 21일 늦게 빙하 하부 저장소에 도착했다. 장장 1770킬로미터 동안 썰매를 끌어온 에반스가 괴혈병 증세를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는 래실리가 현기증을 느꼈고, 크린도 설사하기 시작했다. 에반스 곶까지는 640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1월 25일. 세 사람이 로스 빙붕의 평평한 얼음 벌판 위에서 썰매를 끌고 이동할 때, 아문센은 3000킬로미터, 99일의 남극 탐험을 마치고 프라하임 기지에 도착했다. 에반스의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었다. 셋이 끌던 썰매를 둘이 끌어야 했고, 에반스가 방향을 찾지 못할까 걱정이 컸다. 무거운 썰매를 끌던 두 사람은 2월 11일에 필요 없는 장비들을 모두 버려 무게를 줄였다.
헛포인트까지 160킬로미터 정도 남았을 때 에반스가 일어설 수 없게 되어 썰매에 묶어야 했다. 에반스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하였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남기고 물건을 모두 버렸다. 목숨 외에는 버릴 것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루에 열 시간 동안 16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있었다. 하루에 열 시간을 걷는 것이 능력의 한계였는데, 그렇게 해서는 헛포인트에 무사히 도달할 수 없었다.
에반스는 자신의 상태가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기를 남겨두고 가라고 했다. 크린과 래실리는 단칼에 거절했다. 2월 16일에는 식사량을 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헛포인트까지 65킬로미터가 남은 상황에서 식량은 나흘 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65킬로미터를 가기에는 부족한 양이었다. 식사량을 줄이면 하루나 이틀은 더 버틸 수도 있지만, 식사량을 줄이면 몸이 더 약해질 것이었다.
2월 17일. 헛포인트에서 56킬로미터 떨어진 코너 캠프에서 밤을 보냈다. 남극점에서 돌아오던 다섯 명 중에 테프 에반스가 처음으로 목숨을 잃었다. 2월 18일 아침. 기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헛포인트까지는 5일, 식량은 이틀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동료를 태우고 160킬로미터를 왔다.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고, 힘겨운 투쟁은 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둘은 텐트를 치고, 죽어가는 에반스를 텐트 안으로 옮겼다.
둘은 힘이 다 빠졌고, 식량도 거의 남지 않았다. 에반스를 놔두고 가면 둘은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에반스는 죽을 것이다. 한 사람이 에반스와 함께 남고, 한 사람이 걸어서 56킬로미터 떨어진 헛포인트까지 가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2월 18일 오전 10시. 비스킷 세 개와 초콜릿 두 개를 크린의 주머니에 넣었다. 남아 있던 식량의 전부였다. 래실리는 떠나는 크린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에반스의 등을 받쳐 주었다.
크린이 헛포인트에 도착했지만 도움을 청할 존재가 없었다. 베이스캠프가 있는 에반스 곶까지 24킬로미터 정도를 더 가야 했다. 크린은 마지막 비스킷을 얼음과 함께 먹었다. 2월 19일 오전 3시 30분. 18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설원을 걸어 온 크린은 에반스와 래실리의 소식을 전한 후 쓰러졌다. 눈보라가 거세지고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래실리와 에반스는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안타깝게도 남극점을 향했던 스콧을 포함한 다섯 사람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톰 크린은 1877년 아일랜드 남서부 케리 카운티(Kerry County)의 딩글 반도(Dingle Peninsula)에 있는 아나스카울(Anascaul)이라는 마을 서쪽의 외딴 농촌 거투크란(Gurtuchrane)에서 태어났다. 톰 크린이 태어났을 때는 대기근(the Great Famine, 1845~1852)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톰 크린은 열여섯 번째 생일을 열흘 앞둔 1893년 7월 10일 영국 해군에 입대했다. 1900년 2월, 해군 병장 크린은 오스트레일리아 영해에 있던 링가루마 호(HMS Ringarooma)로 배치되었다. 이 일로 청년 크린은 완전히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스콧, 섀클턴, 와일드, 에반스, 래실리 같은 극지 탐험가를 만난 것이다.
20세기가 시작하며 남극 탐험 시대가 열렸다. 크린은 로버트 팔콘 스콧(Robert Falcon Scott, 1868~1912)과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Henry Shackleton, 1874~1922)이 이끈 남극 탐험을 뛰어나게 보좌했던 인물이다. 계급 사회였던 당시 영국은 탐험도 귀족과 고위 장교가 주도했다. 이로 인해 톰 크린 같은 평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의 기여가 없었다면 탐험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린이 직접 쓴 글이 적어 같이 탐험했던 이들이 쓴 글과 기억으로 그의 숨은 역할을 서술한 기록이다. 톰 크린은 영국이 주도했던 네 가지 남극 탐험 가운데 세 번의 탐험에 참가했다. 스콧의 1차 디스커버리 탐험대, 2차 테라노바 탐험대와 섀클턴의 인듀어런스 탐험대까지 세 차례나 남극을 탐험한 인물이다.
남극대륙 빅토리아랜드(Victoria Land)에 있는 2550미터 높이의 '크린 산(Mount Crean)'과 사우스조지아섬의 6.4킬로미터에 이르는 '크린 빙하(Crean Glacier)'가 남극 탐험 시대의 숨은 영웅 톰 크린(Tom Crean, 18770720~19380727)을 기억하고 있다. 톰 크린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Home is the Sailor, Home from the Sea.(선원이 돌아왔다, 바다에서 고향으로)"
위대한 탐험의 숨은 영웅 톰 크린An Unsung Hero: Tom Crean - Antarctic Survivor, 2009/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서영조 역/지혜로울자유 20170301 448쪽 16,500원
크린, 래실리, 에반스는 베이스캠프까지 1206킬로미터를 되돌아가야 했다. 네 명이 해야 할 일을 셋이 하며 남극점을 정복하고 돌아올 대원들을 위해 식량과 연료의 4분의 1을 저장소마다 남겨두고 가야 했다. 더군다나 테디 에반스만 유일하게 방향을 찾는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에반스는 괴혈병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세 사람은 180킬로그램의 짐을 실은 썰매를 끌며 나아갔다. 기온은 섭씨 영하 29도까지 내려갔고, 바람이 '얼어붙은 바늘 끝으로 뺨을 찌르는 것처럼' 얼굴을 후려쳤다.
1월 17일. 스콧은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아문센의 탐험대가 한 달쯤 전에 먼저 왔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셋은 크레바스가 숨어 있는 미로와 같은 벌판을 계속해서 나아갔다. 1월 21일 늦게 빙하 하부 저장소에 도착했다. 장장 1770킬로미터 동안 썰매를 끌어온 에반스가 괴혈병 증세를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는 래실리가 현기증을 느꼈고, 크린도 설사하기 시작했다. 에반스 곶까지는 640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1월 25일. 세 사람이 로스 빙붕의 평평한 얼음 벌판 위에서 썰매를 끌고 이동할 때, 아문센은 3000킬로미터, 99일의 남극 탐험을 마치고 프라하임 기지에 도착했다. 에반스의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었다. 셋이 끌던 썰매를 둘이 끌어야 했고, 에반스가 방향을 찾지 못할까 걱정이 컸다. 무거운 썰매를 끌던 두 사람은 2월 11일에 필요 없는 장비들을 모두 버려 무게를 줄였다.
헛포인트까지 160킬로미터 정도 남았을 때 에반스가 일어설 수 없게 되어 썰매에 묶어야 했다. 에반스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하였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남기고 물건을 모두 버렸다. 목숨 외에는 버릴 것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루에 열 시간 동안 16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있었다. 하루에 열 시간을 걷는 것이 능력의 한계였는데, 그렇게 해서는 헛포인트에 무사히 도달할 수 없었다.
에반스는 자신의 상태가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기를 남겨두고 가라고 했다. 크린과 래실리는 단칼에 거절했다. 2월 16일에는 식사량을 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헛포인트까지 65킬로미터가 남은 상황에서 식량은 나흘 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65킬로미터를 가기에는 부족한 양이었다. 식사량을 줄이면 하루나 이틀은 더 버틸 수도 있지만, 식사량을 줄이면 몸이 더 약해질 것이었다.
2월 17일. 헛포인트에서 56킬로미터 떨어진 코너 캠프에서 밤을 보냈다. 남극점에서 돌아오던 다섯 명 중에 테프 에반스가 처음으로 목숨을 잃었다. 2월 18일 아침. 기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헛포인트까지는 5일, 식량은 이틀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동료를 태우고 160킬로미터를 왔다.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고, 힘겨운 투쟁은 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둘은 텐트를 치고, 죽어가는 에반스를 텐트 안으로 옮겼다.
둘은 힘이 다 빠졌고, 식량도 거의 남지 않았다. 에반스를 놔두고 가면 둘은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에반스는 죽을 것이다. 한 사람이 에반스와 함께 남고, 한 사람이 걸어서 56킬로미터 떨어진 헛포인트까지 가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2월 18일 오전 10시. 비스킷 세 개와 초콜릿 두 개를 크린의 주머니에 넣었다. 남아 있던 식량의 전부였다. 래실리는 떠나는 크린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에반스의 등을 받쳐 주었다.
크린이 헛포인트에 도착했지만 도움을 청할 존재가 없었다. 베이스캠프가 있는 에반스 곶까지 24킬로미터 정도를 더 가야 했다. 크린은 마지막 비스킷을 얼음과 함께 먹었다. 2월 19일 오전 3시 30분. 18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설원을 걸어 온 크린은 에반스와 래실리의 소식을 전한 후 쓰러졌다. 눈보라가 거세지고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래실리와 에반스는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안타깝게도 남극점을 향했던 스콧을 포함한 다섯 사람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톰 크린은 1877년 아일랜드 남서부 케리 카운티(Kerry County)의 딩글 반도(Dingle Peninsula)에 있는 아나스카울(Anascaul)이라는 마을 서쪽의 외딴 농촌 거투크란(Gurtuchrane)에서 태어났다. 톰 크린이 태어났을 때는 대기근(the Great Famine, 1845~1852)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톰 크린은 열여섯 번째 생일을 열흘 앞둔 1893년 7월 10일 영국 해군에 입대했다. 1900년 2월, 해군 병장 크린은 오스트레일리아 영해에 있던 링가루마 호(HMS Ringarooma)로 배치되었다. 이 일로 청년 크린은 완전히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스콧, 섀클턴, 와일드, 에반스, 래실리 같은 극지 탐험가를 만난 것이다.
20세기가 시작하며 남극 탐험 시대가 열렸다. 크린은 로버트 팔콘 스콧(Robert Falcon Scott, 1868~1912)과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Henry Shackleton, 1874~1922)이 이끈 남극 탐험을 뛰어나게 보좌했던 인물이다. 계급 사회였던 당시 영국은 탐험도 귀족과 고위 장교가 주도했다. 이로 인해 톰 크린 같은 평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의 기여가 없었다면 탐험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린이 직접 쓴 글이 적어 같이 탐험했던 이들이 쓴 글과 기억으로 그의 숨은 역할을 서술한 기록이다. 톰 크린은 영국이 주도했던 네 가지 남극 탐험 가운데 세 번의 탐험에 참가했다. 스콧의 1차 디스커버리 탐험대, 2차 테라노바 탐험대와 섀클턴의 인듀어런스 탐험대까지 세 차례나 남극을 탐험한 인물이다.
남극대륙 빅토리아랜드(Victoria Land)에 있는 2550미터 높이의 '크린 산(Mount Crean)'과 사우스조지아섬의 6.4킬로미터에 이르는 '크린 빙하(Crean Glacier)'가 남극 탐험 시대의 숨은 영웅 톰 크린(Tom Crean, 18770720~19380727)을 기억하고 있다. 톰 크린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Home is the Sailor, Home from the Sea.(선원이 돌아왔다, 바다에서 고향으로)"
위대한 탐험의 숨은 영웅 톰 크린An Unsung Hero: Tom Crean - Antarctic Survivor, 2009/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서영조 역/지혜로울자유 20170301 448쪽 1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