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점(零點) 없는 영혼이 두려운 까닭

군대에서 사격해 본 사람이라면 영점사격이라는 걸 해봤을 겁니다. 총이 조준하는 곳과 총알이 박히는 곳이 일치하도록 조정하기 위한 사격을 말합니다. 표적지 한 군데에 일정하게 총알이 세 발 박힌 걸 보고 가늠자와 가늠쇠를 이용해서 한가운데에 맞도록 조정을 합니다. 이렇게 한 후 사격을 하면 비로소 과녁을 제대로 맞힐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점사격을 한 총알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으면 영점을 잡을 수가 없게 되고 사격수는 얼차려의 세계에서 피똥을 싸다 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도 이와 비슷합니다.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반복하면 영점조정을 통해서 바른 행동을 하게 합니다. 조정 역할을 하는 것은 가정, 학교, 사회 혹은 자기학습 등 다양합니다. 그런 영점조정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하고 있고 해야만 합니다. 표적지라는 가치는 변화무쌍하고 한 군데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표적지의 좌측에 총알 자국이 몰려 있으면 진보좌파라 하고 우측에 있으면 보수우파라고 하지만 과녁의 한 복판을 맞추려고 영점조정은 쉬지 않고 합니다. 또한 중도성향이라고 표적지의 정중앙을 관통하며 백발백중하지는 않습니다. 총알이 총구를 떠나는 순간 표적지는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좌파, 우파, 중도를 가리지 않고 영점조정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영점조정을 멈추는 순간 그들은 이미 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영점조정이 멈췄다며 두려워하지는 마세요. 생각이나 행동이 진부한 것이 됐을 수는 있지만, 왕년에 한 번 정도는 과녁을 맞혔던 것이라 틀린 것은 아니니까요. 멈춘 시계가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하게 시간을 가르쳐 주는 이치와 같답니다. 그리고영점조정을 멈춘 사람은 남에게 총을 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총알이 사방에 박히는 사람입니다. 영점조정도 수시로 하는 것 같은데 총알이 좌상귀에 박혔다가 우하귀에 박혔다가 일관성이 없습니다. 노무현 탄핵 촛불 땐 가만있다가 쇠고기 촛불에는 물대포를 쏘는 경찰, 대통령과 맞짱 뜨던 기백은 어디로 사라지고 한 술 더 뜨는 검찰, 뼛조각 쇠고기는 당장 수입금지하라더니 지금은 베리 굿이라는 CJD와 딴나라당, 아니되옵니다 하다 CEO가 바뀌었다고 냉큼 도장 찍고 오는 공무원. 모두 총알을 사방으로 쏴대는 영점 없는 영혼들입니다.

영점 없는 영혼들은 썩은 물과 같습니다. 크리스털 컵, 찌그러진 양푼이, 똥장군 등 어디든지 담기며 담긴 그릇에 딱 맞게 완벽한 변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혼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심한 악취가 나지만 이미 익숙해져서 무덤덤합니다. 가끔 독특한 악취 때문에 흠칫 놀라지만 그때뿐입니다. 이렇게 중독된 우리는 그들의 숙주가 되고 다음 세대를 감염시킵니다. 이것이 영점 없는 영혼이 두렵고 미운 까닭입니다.

영점 없는 영혼은 우리가 숙주인 이상 멸종시킬 수는 없습니다. 정신 차리게 하는 방법이 알려진 것도 뾰족한 게 없습니다. 다만, 사격수에게 얼차려를 주며 피똥 싸게 하면 영점이 잡히는 일도 있으니 그 방법을 수시로 써 보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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