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Gobi, 2005
  • 떠나겠다는 생각을 언제 처음으로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 처음으로 누구에게 그런 생각을 털어놓았는지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것은 떠나겠다는 생각이 언제부터 나를 사로잡고 언제부터 내 삶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안다는 말이다. 나는 이십오 년 전부터 고비 사막을 횡단하고 싶었다. 문제는 내가 과연 아직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12)
  • 나는 곧 예순 살이 될 터였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16)
  • 물론 내게는 유럽의회 의원의 직분에 속하는 온갖 의무들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했다. 의정 활동 중에는 항상 현장에 참석해야 하고, 언제나 연락 가능해야 하고, 어떤 질문에 대해서든 늘 답변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언제든 정치적 인물로서 눈에 띄어야 했다. 사막에서라면 우리는 존재하는 동시에 완전히 여분으로 남는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삶에 짐이 되었던 수많은 일들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우리로부터 벗어나 있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날 찾거나 필요로 하거나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나를 볼 수 있는 거울도 없는 곳이라면 나 자신마저도 더 이상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17)
  • 원래 내키지 않는 삶을 오래 산다는 것은 자기의 백일몽을 좇는 것보다 더 어렵고 결국 더 용감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마흔 살이 되어서 그것을 아주 다르게 생각했던 일이 기억난다. (95)
  • 집을 떠나 길을 돌아다니고 있는 내 상태가 때때로 나를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가! 술에 취한 두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 약탈을 당하거나 맞아서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도 아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전쟁 중이거나 위험이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 있는 토착민들도 공격적이거나 난폭하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 혼자 불확실한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과 아주 다양한 형태의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대개는 엉망진창인 그런 감정들을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을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자살하게 만드는 것은 외롭다는 감정이었다. (122)
  • 나처럼 돌아다니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란 날씨가 어떻든 깜깜한 밤중이든 때에 맞추어 가고 어떤 상황에서든 출구를 찾아낼 줄 안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사람들이 미리 인식하고 피하는 것은 내가 경탄하는 기술이다. 나는 도박처럼 모험에 승부를 거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 적이 없다. 진짜 기량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모험에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 많이 감행할 뿐이다. (149)
  • 사막은 실험의 장이 아니다. 사막은 그저 있을 뿐이고, 나름의 확고한 법칙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내가 지니고 있는 물이 지금 여기서 바닥나고 있다. 유목민을 발견하지 못하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치료해서 고칠 수가 있다. 죽는 것만 고칠 수 없다. 사막은 모든 정치와 그에 대한 온갖 생각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다. 인적이 없는 세계에서 조절되어야 할 게 무엇이겠는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걸어가는 것뿐이다. (169)
  •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단숨에 되지 않는다. 사막을 횡단하려면 작은 걸음들이 수백만 번 필요하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이 길의 한 부분이 되고, 경험의 일부가 된다. 모든 탐험이 매번 진짜 삶이었다. 첫 탐험이든 마지막 탐험이든 마찬가지다. 사막을 횡단하는 나의 길은 나 자신을 뚫고 지나가는 길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끝에 구원이 없었다. 나 자신이 늙어 가는 것에 대한 통찰만 있었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이제 그 통찰에 속했다. 내 때가 되기 전에 벌써 마지막에 다다른 것처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런 깨달음이 남았다. (225)
  • 권리라는 것은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당연한 요소가 아니다. 도시의 사회 모델에서는 권리가 협상의 대상이 되고, 인간들 사이에서는 법률로 확정된다. 그래서 결국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 규칙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볼 때 유목민들은 어디서나 배제되어 있다. 아무도 유목민들을 데리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몽골에서조차 유목민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몽골인들은 오히려 유목민들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부끄러워한다. 원시적이고 시대에 뒤져서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몽골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나는 유목민들과 함께 있을 때 안전했다. 오히려 도시에서 살 때는 그렇지 못했다. 고비 사막을 돌아 다닐 때 나는 행운에 기댄 적이 없다. 우리 모두 사막에서 독자적으로 살아 남으려고 애쓰는 존재이기에, 수도 없이 많이 느끼는 두려움과 어려움은 우리에게 함께 나누는 법을 가르쳤다. 공감은 결국 불안을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나누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236)
  • 고비 사막의 횡단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물론 고비 사막을 횡단했다고 해서 내가 현명해진 것도 아니고 녹초가 된 것도 아니다. 늙어 보이게 되었을 뿐이다. 스스로 보기에도 그랬다. 이게 아니다. 한탄하려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잘 늙어 가는 요령도 익혔다고 주장하고 싶다. 잘 늙는 것은 아직 내가 해야 하는 유일한 도전이다. (257)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Gobi, 2005/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모명숙 역/황금나침반 20061117 258쪽 12,000원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는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 미터급 14봉을 모두 완등 했다. 그린란드, 티배트 동쪽, 남극지방, 서고비 사막도 횡단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는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순의 나이에 그는 고비 사막을 횡단하는 도전을 시작한다. 삼십 리터 물통, 텐트와 침낭, 셔츠 한 장, 바지 하나, 갈아 신을 양말 한 켤레, 지도와 메모용 노트를 넣은 배낭 하나를 메고 고비 사막으로 갔다.

그가 고비 사막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생각하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 고비마다 도움을 받은 유목민들에게서 느끼는 행복감, 사막 한가운데에서 죽음에 직면하며 마주한 자신과 그럴수록 생각나는 가족, 그리고 자유의지로 들어선 고비 사막에서 그를 걷게 만든 것은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이제 잘 늙어 가는 것을 깨닫는 것이 남아 있는 유일한 도전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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