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oking kills

Smoking kills
매달 담배를 끊자고 결심한다. 1월 1일, 2월 2일, 3월 3일...... 일 년에 열두 번 결심을 한다. 희한한 것은 결심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술자리가 생긴다. 1/n이 아닌 공술이 꼭 생긴다는 야그다. 맨 정신으로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견딜만한데 술이 몇 순배 돌고 껌 씹는 소리를 할 때면 그 유혹을 참기 어렵다. 슬쩍 남의 담배 한 개비를 들고 만지작만지작 거리다 보면 어느새 조동이에서 연기를 피우고 있다. 그렇게 작심삼일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길어야 보름을 넘기지 못한다. 담배와 술을 동시 패션으로 끊으면 가능할 것 같은데 고것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는 말씀.

마누라 만난지 35년밖에 안 됐지만 담배를 만난 것은 45년도 더 됐다며 늦게 나타난 마누라가 담배를 끊으라는 게 말이 되냐며 청솔을 꺼내 물던 연세 지긋한 기사 양반이 생각난다. 이십여 년 전 택시를 타고 맞담배질하며 가던 이야기이니 지금은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나이 같은 일화가 된 지 오래다.

지난 9월 9일에도 금연해야쥐... 하며 습관성 결심을 하는데 유럽 출장길에 사 왔다며 예쁜 열쇠고리와 함께 담배를 선물로 받았다. Small Cigars라는데 첫 모금이 목에 탁 걸린다. 독하다. 그래도 선물인데 매정하게 버릴 수야 있느냐며 천천히 음미해보니 그런대로 맛이 괜찮다. 자판기 밀크커피만 마시던 놈이 원두 블랙커피를 처음 맛본 느낌이랄까. 시가형이라서 그런지 가끔 담뱃잎이 혀끝에 묻어 퉤퉤 거리며 피는 모양새가 처음 담배를 입에 댄 그때가 떠오른다.

고3 시절. 할머니가 캐비넷에 꿍쳐둔 오래된 새마을 한 갑을 몰래 빼내 친구들을 만났다. 나름 고삼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고 청자를 피던 넘들은 필터 없는 새마을이 신기하다며 서로 자기들 담배와 바꾸자고 아우성이었다. 필터 없는 새마을이 나오지 않은지 꽤 됐던지라 청자와 바꾸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렇게 얻은 새마을을 한 모금 빨고 퉤퉤 거리고 다시 한 모금 빨고 퉤퉤 거리던 친구들 기억이 난다.

호기심 반 반항심 반으로 뻐끔 담배 배우던 시절을 지나 대학 1학년 때 문무대를 입소하고부터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대학 다니는 남정네라면 열외 없이 끌려가던 문무대는 지금 생각해도 군대 훈련소보다 더 빡셌던 것 같다. 5분간 휴식시간에 피우던 그 담배는 꿀맛보다 더 달콤했었다. 지옥 같은 일주일을 견뎌낸 것은 뻑뻑 피워대던 담배 힘이었다. 그러고 보니 담배를 입에 대기 시작한 것은 나의 실수라 치지만 담배를 피우도록 강요한 것은 국가였다. 뭐 그렇게라도 핑계를 가져다 붙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Smoking kills"
선물 받은 담배에 경고문이 큼지막한 것이 섬뜩하다. 찌라시 같은 우리나라 담배 경고문은 차리리 나긋나긋한 느낌이 난다.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다'라고 하니 나는 예외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니 말이다.

생판 모르는 이에게도 '담배 하나만 빌려 주세요'라고 말하면 '언제 갚을 건데요?'라고 묻지도 않고 흔쾌히 주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인심 좋던 시절도 가고 거저 주기가 참 아까운 세상이 돼서 그런지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는 경고문이 "내 담배 피우면 죽어!"라고 생각이 되는 건 왜일까?

미련 곰탱이 같은 백해무익한 나의 애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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