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삶이란 허공에 던진 주사위와 같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주사위 하나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첫울음을 터뜨리며 주사위는 던져지고 삶이 시작됩니다.
허공에 있던 주사위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비로소 떨어집니다.
삶은 주사위의 양면과 같습니다.
6이 나올 수도 있고 1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4가 나올 수도 있고 3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온 숫자만큼 그 사람이 세상에 이바지했다면
바닥에 숨어 있는 숫자는 그 사람의 허물입니다.
어떤 이는 나온 숫자가 그 사람의 허물이라고 하며
바닥에 숨은 숫자만큼 이바지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옳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허물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숨어있는 숫자를 애써 외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허물이 6만큼이나 있어도 1만큼 이바지도 했습니다.
이바지를 6만큼 했어도 허물은 1만큼 있습니다.
삶은 이바지를 얼마나 했던 허물이 얼마나 크던
그 둘을 합치면 누구나 똑같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많이 배웠든 적게 배웠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장님이든 절름발이든
부처를 믿든 예수를 믿든 사랑을 하든 말든
삶은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주 보는 주사위 합은 누구한테나 7입니다.
삶이 끝나는 순간 떨어진 주사위를 보며
어느 면이 허물이고 어느 면이 이바지인지는
구태여 얘기하지 말도록 합시다.
길게 늘어선 산자가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밤새워 향불을 피우는 산자가 알고 있습니다.
모퉁이에서 몰래 눈물 훔치는 이가 알려줍니다.
허공에 있는 내 주사위가 떨어지는 날
허물은 덮어주고 이바지는 두고두고 기억해 주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행복하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오늘 진눈깨비가 내립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마지막 가는 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