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소주병/공광규/실천문학사 20040405 127쪽 6,000원

자작하고 있던 나는 반 병을 남긴 채
황급히 뚜껑을 덮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잔에다 계속 자신을 따르다
버려지는 소주병이 늘어만 간다.

우째 시절이 점점 하 수상해지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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