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쓴 1원의 경제학
- 그렇다. 지금 생각하니 상 아래 떨어진 그 밥알은 말하자면 길바닥에 떨어진 1원짜리였다. 지극히 작아 짓밟기도 하는, 어쩌다 흘리면 이내 쓰레기 봉투에 들어가 버리는 밥알 같은 것. 그러나 그 하나만 모자라면 어떤 큰 단위의 돈도 완성되지 않고 한 귀퉁이가 비고 모자라게 되는 확실한 몫의 질량을 가진 돈. (17)
- 근면성을 상실하면 직업을 잃고, 직업을 상실하면 경제를 잃는다. 그리고 소망을 상실하면 내일을 잃는다. 소망은 내일로 가는 길이다. 모든 것을 다 갖고도 소망을 상실하면 내일의 광명이 없고,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소망을 갖는다면 내일의 광명이 온다. (39)
- 한푼을 쪼개고 쪼개면서 정신적으로 강인해지고 풍성해졌다. 무한한 정신세계의 발아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나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 자신이 대견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문득 르나아르(프랑스 시인)의 일기 한 구절이 생각난다.
- 돈을 갖지 않고 지내는 것도 돈을 버는 것과 같은 노고와 가치가 있다. (74) - 돈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통행증 같은 것이어서 그것 없이는 절대로 통과할 수 없을 뿐더러 삶의 가치와 품위를 높여 주기도 하고 마음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만드는 마물이다. (78)
- 인간은 넘어질 때 비로소 성숙하게 된다. 평생을 넘어지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는 확실히 불구자일 것이다. 가난은 인간을 성숙시켜 주는 매듭이지만 정신을 밝게 해주는 깨우침이 있을 때 매듭을 이어가는 성장이 있게 된다. (125)
- 그 시절 사람들은 지금처럼 영악하지 않았다. 가난했지만 인간적이었다. 사람 사귀는 맛이 나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132)
- 우리 나라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유행에 초연할 수 있는 자각과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남의 이목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나름대로의 검소한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이말은 구두쇠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검소하고 청결한 삶을 쌓아 나가자는 뜻일 뿐이다. 유행을 쫓는 일이 삶의 목적인 양, 흔들리지 말자는 것이다. (224)
1원의 경제학/김춘수 외/자유지성사 19990220 238쪽 6,000원
십여 년 전 시인 32인이 어려운 시절을 극복한 소중한 이야기를 했다. 쌀 한 톨, 몽당연필 그리고 1원의 소중함을 잊고 지냈기 때문에 IMF가 왔다고 얘기한다. 해방 전후에 태어나 6.25 전란을 겪으며 배고픈 기억은 있지만 불행하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온 그들은 배는 부른데 행복하지 않다는 십여 년 전 그 시절에 검소하게 살며 희망을 갖자고 말했다. 전쟁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딱 십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때 인간적인 교훈을 배운 것이 아니라 더 영악해져서 남의 희망마저 꺾고 있지는 않은지 둘러볼 일이다.
딱 십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때 인간적인 교훈을 배운 것이 아니라 더 영악해져서 남의 희망마저 꺾고 있지는 않은지 둘러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