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체력이 경험하는 등산의 3대 미스터리

산에 가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미스터리 하니까 뜬금없이 종로에 있던 나이트클럽이 생각난다. 이태원에 있는 라이브러리와 쌍벽을 이뤘던 것 같다. 도서대출증 없이도 갈 수 있었던 라이브러리와 미스터 김도 미스터 박도 입장이 되던 미스터리를 출입하던 시절에는 굳이 힘들여 산에 갈 이유가 없었다. 아~~~ 옛날이여.

삼천포로 빠지는 뻘소리는 각설하고 저질 체력을 이끌고 산에 갈 때면 종종 드는 의문이 세 가지 있다.

등반시간은 누굴 기준으로 했을까?

등산
등산 안내도에 있는 등반시간은 누가 쟀는지 궁금하다. 저질 체력인 나 같은 이들은 적혀 있는 시간을 맞추다가는 객사하기 딱 좋다. 물론 그럴 일이 저질 체력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렇다는 야그다. 행여 완전군장보다 더 크고 빵빵한 배낭을 메고 오르막길을 뛰어올라 가는 강철 산악인을 기준으로 했다면 시간이 더 줄어들었을 것 같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나 같은 저질 체력을 기준으로 했을 리는 없고.

이제는 요령이 생겨 적혀 있는 시간에 20% 정도 할증을 해주면 얼추 맞아 들어간다. 구간 가운데 빠져 있는 시간과 쉬고 밥 먹는 자투리 시간을 나름대로 할증해 준다는 말씀. 여기에다 북한산이나 도봉산을 주말에 등반한다고 하면 러시아워에 대한 특별할증으로 10%를 더해주면 딱 떨어진다.

그나저나 등반시간은 공원 관리공단 직원 중 갓 제대한 제일 막내가 산들바람 살랑살랑 부는 오월 어느 평일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김밥 두 줄과 오이랑 사과를 싸들고 산행한 것을 기준으로 한 건 아닌지 참말로 궁금하다. 게다가 날머리에선 이쁜 애인까지 기다리고 있고.

왜 하산길은 언제나 험해 보일까?

오르막길은 숨이 턱까지 차지만 내리막길은 무릎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가뜩이나 종아리도 뻐근한데 한 발 한 발 내딛으면 아랫도리가 욱신욱신거린다. 까딱 잘못해서 미끄러지는 경우도 오르막길보다는 오히려 내리막길에서 더 많이 나오곤 한다.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이 길로 올라갔으면 정상까지 가지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번번이 들곤 한다. 그러면서 이 길로는 들머리를 삼지 않겠다고 투덜거린다.

그런 잡생각을 하다 보면 완만하게 경사진 평탄한 길이 시작되고 잠시 뒷걸음질로 걸어가면 참 편하다. 사람 발이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에 더 적합하도록 진화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추측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정상으로 오르려고만 하지 정작 멋있게 내려오는 모양새를 본 적이 없으니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왜 하산을 하면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 것이 귀찮아질까?

내리막길이 끝나면 역시 평지를 걷는 게 가장 편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가장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 현자가 있었던 것도 같다. 아니면 말고. 그런데 이때부터 사악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몸 생각해서 산을 탔는데 고작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 게 귀찮아진다. 평지길이 걷기 좋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걷기가 싫어진다. 너무 편해서 그런가. 사악한 마음은 누가 태워주길 바라며 뒤를 흘깃거린다. 참말로 분수도 모르는 몸땡이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염치라고는 쥐뿔도 없는 대굴빡이 문제다.

에필로그

그동안 저질 체력을 보충하고자 산에 오르지만 아직도 세 가지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는다. 무협지를 보면 심신을 수련한 제자에게 더 가르칠 게 없으면 그만 하산하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따지면 평생을 산에 갇혀 강호 구경은 고사하고 하산 한 번 해 보지 못할 팔자라는 말씀인데 세상이 좋아져서 엄배덤배 꼽사리 껴서 강호에 살고 있다. 주구장창 민폐를 끼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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