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정치 선진화는 성동격서를 위한 떡밥이다

MBc가 제64주년 광복절 축사에서 국민 통합을 위해 정치 선진화를 강조하며 선거제도와 행정구역을 손보자고 했다. 한나라당은 조국의 미래를 위한 비전을 밝혔다며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투덜대는 야당도 제안을 피하기가 어렵게 됐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손본다면 어떤 형태로든 중대선거구제 형식을 따르게 될 것이고 아울러 행정구역의 변화도 불가피하지만 현 국회의원은 적어도 당선에 안착하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분명히 싫지 않은 딜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자당에 유리한 게리맨더링을 그려가며 다음 선거 때까지 옥신각신할 것이다.

문제는 개헌을 포함한 정치 선진화라는 화두를 던진 MBc는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괘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던진 떡밥은 결코 정치가 선진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치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밝혔듯이 여의도 정치를 경제의 뒷다리나 잡는 불법노조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경제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MBc는 당선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비즈니스 프랜드리를 강조했고 그의 행보를 보면 주체가 누구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기업, 소위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을 경제의 주체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경제활동은 대기업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희생양으로 보고 있다. 일련의 성장 배경이나 언행으로 보면 글로벌 기업이 발전해야 모두가 먹고살 수 있다는 논리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은 한 명의 천재가 수천 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론에서 천재를 대기업으로 치환한 것으로 보면 아주 정확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의문을 품어야 할 것은 그의 기업론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한 명의 천재와 같은 대기업이 수천 명을 먹여 살리느냐는 것이다. 먹여 살린다는 의미를 단순히 최저 생계비로 본다면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불균형한 부의 재분배로 심화되는 양극화 같은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최저 생계비를 받는 비정규직을 더 많이 고용한다고 보는 것이 어울린다. 기업형 마트가 고용창출 효과를 내지만 고용의 형태는 오히려 비정규직이거나 아르바이트가 늘어나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MBc의 기업성장 우선론은 하나의 기업이 수천 명을 고용함으로써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오로지 기업(혹은 대주주)에만 유리하다는 것으로 바뀌어야 올바를 것이다.

그런데 정치 선진화라는 명분을 내걸며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 더 나아가서는 개헌론을 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구장에서 내기 당구를 쳐 본 이들이라면 그 답을 쉽게 알 것이다. 게임 종료 단추를 누르고 잃은 사람과 딴 사람의 돈을 합쳐보면 처음 당구장에 들어왔을 때 가지고 있던 돈만큼 되지가 않는다. 당구를 치면서 돈을 주고받는 동안 정작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번 사람은 당구장 주인이기 때문이다. MBc의 노림수가 바로 이것이다. 정치 선진화라는 떡밥을 툭 던져 놓으면 정치권은 서로 차지하려고 아비규환이 될 것은 뻔 한 이치이고 그사이 MBc는 당구장 주인이 되어 게임만 끝나길 기다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MBc는 참 일관성 있는 사람이다. 우직하다. 이런 우직함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이것은 그동안 보여온 행태를 보면 쉽게 알 것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으로 촛불이 전국을 휘몰아칠 때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진정되기를 기다렸고, 4대강 사업은 운하사업이 아니라며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법으로 조중동과 재벌에게 사업진출의 발판을 만들어 줬다. 이때 슬쩍 끼워 넣은 금산분리 완화법은 미디어법 덕분에 거론하는 이가 없다. MBc는 작전상 후퇴를 하기는 했지만 그 작전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다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면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법과 원칙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당구장 주인이 된 MBc에게 남은 것은 FTA 비준과 공기업 민영화다. FTA 비준과 공기업 민영화는 MBc 경제성장론의 방점이자 최대의 성과물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경쟁체제로 만들면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밀어붙일 것이고 이것은 4대강 살리기로 바닥난 적자예산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FTA 비준도 마찬가지로 미국에 자동차를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것만 강조했지 공기업이 민영화되어 오른 전기세와 수도세가 외국 자본의 M&A로 더 오른다는 것은 쏙 뺄 것이 분명하다.

4대강 사업과 마찬가지로 임기 내에 이를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개헌론을 포함한 정치 선진화라는 떡밥을 던지기에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이다. 4대강 보상비를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뿌리며 땅값을 올리고 정치권은 개헌 얘기를 하며 허송세월을 하는 동안 남은 FTA 비준과 공기업 민영화를 얼렁뚱땅 해치우면 되는 것이다. FTA 비준은 한나라당이 오케이 하면 될 것이고, 공기업 민영화는 보유한 주식을 내다 팔면 끝이다.

이런 자신감은 작금의 미디어법을 보면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 미디어법이 헌법재판소에 걸려 있지만 절차상 하자라는 판결이 나면 다시 시도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없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미디어법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당은 국회의원 선거를 코앞에 두고 토사구팽이라는 것을 인식하겠지만 그럴수록 머릿수를 앞세워 중대선거구제로 돌파하면 되므로 밑져야 본전인 셈이다. 여기에 머릿수로 좁혀오는 여당에 맞서 늦으면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야권의 조바심은 슬쩍 던진 떡밥을 물을 수밖에 없다.

무서운 것은 이를 알면서도 급제동을 걸 수 있는 제어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구시렁 대면서도 돌격 명령을 내리면 육탄전을 불사하는 친위 여당이 재임 기간 동안 건재하고 삼권분립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사법부는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여기다 존재감마저 상실하여 지리멸렬한 야권은 승부수를 반박자 늦게 던지는 행운마저 쥐어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이대로 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대로 실현이 되었다고 해도 나는 그 결과물의 첫 열매를 맛볼지 장담할 수는 없다. 정말 불행한 세대는 촛불을 들었던 여중생과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20대가 한 세대가 흐른 뒤 기회손실을 복구하기 위하여 혹독한 시대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숨 쉬고 있는 우리 모두의 죄이고 폭주하는 미친 기관차를 멈춰야 하는 역사적 사명인 것이다. 믿을 것은 우리의 촛불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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