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세를 아시나요?

어느 날 갑자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점심을 배불리 먹고 눈꺼풀이 절로 감기는 한가로운 오후 어느 날. 전화벨 소리가 아주 짜증 나게 울린다.

- ○○팀 나무삼.
- 관리팀 아무개삼. 큰일났삼.
- 밥 잘 먹고 이 무슨 호들갑?
- 며칠 후에 세무조사가 나오는데 계약서에 수입인지가 붙어있는지 확인해주삼.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웬 수입인지.
- 인지세를 붙여야 하는데 몇 년이 누락된 것 같삼.
- 인지세가 뭥미? 내가 올라갈게 기둘리삼.

수입인지
관리팀에 들르니 그제야 내막을 알게 됐다. 세무조사가 예정돼 있어 회계장부를 정리하던 중 그동안 수입인지를 산 흔적이 없다고 한다. 계약을 맺으면 인지세로 수입인지를 붙여야 하는데 누락이 된 것 같으니 계약서를 확인해서 수입인지를 붙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무실로 내려와 계약서를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수입인지가 몇 년 동안 붙어 있질 않았다. 예상되는 수입인지 금액을 계산해서 관리팀에 통보하니 차 한 잔 식을 시간이 지나자 수입인지를 들고 왔다. 보통 때나 이렇게 업무처리를 빨리하지. 그때부터 계약서 파일을 꺼내 계약서 뒷장에 붙이기 시작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사람은 수입인지를 자르고 한 사람은 풀칠하고 한 사람은 계약서에 붙이길 개 발에 땀이 나도록 했다. 그나마 계약서 파일 정리가 잘 돼 있어 빨리 끝났지 아니면 밤샐 뻔했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 세무 조사는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세무조사하는데 인지세가 차지하는 비중이야 별 볼일 없지만 행여나 생길 불상사를 예방하고자 함이었으니 탈이 났으면 경치는 소리가 났을 게다. 그 후 기성금이나 준공금이 나가기 전 지급품의를 할 때 계약서에 인지세를 붙이는 것으로 업무 프로세스가 정착됐다.


인지세가 뭥미?

그런 일이 있고 나자 인지세가 뭔지 궁금해 검색을 하였다. 계약을 하는데 왜 세금을 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었다. 「인지세법」 제1조에는 고상하게 구시렁 대며 씨부려 놨지만 한마디로 "돈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뜻이다. 주변에서 수입인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면 바로 그것이 인지세다. 무심코 지나쳤지만 관심 있게 보면 의외로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지세 유래를 알면 정말 억지스럽게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1624년 네덜란드에서 전쟁비용을 조달할 목적으로 처음으로 채용되었고, 점차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서 시행되고 있는 문서세라고 한다.

또한 1765년에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하여 각종 증서, 신문, 광고, 달력 따위의 인쇄물에 인지세를 매기는 조례를 정하자 식민지 측은 자치권의 침해로 여기고 강력히 반대하여 이듬해 폐지하였지만 반항운동으로 확산되어 미국 독립 전쟁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유추하건대 인지세는 전쟁비용을 마련하고자 대굴빡를 쥐어짜다 나온 것 아닌가 싶다.


수입인지, 아깝지만 붙여야

비과세 문서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재산에 관한 문서 혹은 증서는 반드시 인지세를 납부하여야 한다. 납부할 인지세는 인지세법 제3조를 참조하면 된다. 그런데 수입인지를 붙이려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10억원 초과하는 계약서는 세액이 35만원이나 되고 그 건수가 100건이라고 하면 3500만원이다. 소액이지만 1천만원 계약을 1000건 한다면 2000만원이나 된다. 갑, 을이 수입인지를 붙인다면 세액은 두 배가 된다.

인지세는 수입인지를 붙이도록 하지만 그 시행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 인지세법을 위반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조세범처벌법」 제9조에는 "인지세의 경우에는 증서·장부 1개마다 포탈세액의 5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라고 꼭 집어 놓았다. 벌금이야 물면 되지만 이름 있는 회사라면 세금포탈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수밖에 없으니 그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눈물 나는 정착민들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부가세가 포함돼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듯이 문서로 된 거래를 할 때 인지세가 부과된다는 것을 간과하곤 한다. 최근 중국이 경기를 부양하고자 인지세율을 인하한다는 뉴스를 보면 인지세가 실생활에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부가가치세가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가치(같이) 내는 세금'이라는 눈물 나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절세하는 방법(?)이 유독 발달한 것을 보면 세금은 힘없고 빽도 없이 눈먼 사람만 내는 돈이라는 인식이 지워지질 않는다. 우리와 비슷한 직접세와 간접세 비율을 가진 유럽의 나라들은 복지국가라고 불리는데 말이다.

자크 아탈리가 쓴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보면 정착민이 발명한 것은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뿐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정착민이 돼서 부쩍 눈물이 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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