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단일화

막걸리
지난 주말에 국순당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뭐랄까 달착지근한 맛이 혀에 착 참기는 게 참 수더분하며 착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예전에 자고 일어나면 골 때리던 걸쭉한 막걸리가 확실히 변한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술술 넘어가는 목 넘김 덕분에 달게 마셨습니다.

마시다 도수가 어떻게 되나 살펴보다 막걸리를 영어로 표현한 걸 봤습니다. Korean Rice Wine. 막걸리를 영어로 기가 막히게 옮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막걸리를 한마디로 압축해 설명하는 번역이라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물론 막걸리를 영어로 직접 옮겨 MacGirly라고 쓰면 더 좋겠지만 말이죠. 떡을 코리안라이스케이크가 아니라 '떡' 그대로 소개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막걸리라는 술을 영어식으로 표현하며 와인이라는 단어를 고른 것이 간단명료하게 그 뜻을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까지 번역한 책을 접하면서 어쩜 이리도 제목을 기막히게 정했을까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책이 하나 있습니다. 《소유의 종말》(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민음사)입니다. 원제가 'The Age of Access'라서 직역하자면 '접속의 시대'라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번역자는 책의 내용을 관통하며 역설적으로 '소유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골라냄으로써 원제목보다 더 강렬하게 주제가 다가왔습니다. 정말 멋진 제목입니다.

가끔 차림표를 보며 그 옆에 어설프게 적혀 한국인만 이해하는 한식의 영어 표현을 볼 때가 있습니다. 갇힌 표현보다는 소유의 종말처럼 막걸리가 MacGirly로 널리 통용되면 좋겠습니다.

요즘 지방선거 단일화로 뜨겁습니다. 그동안 선거를 치르고 나면 우리네 민심이 얼마나 정확하고 핵심을 찌르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번처럼 이슈는 산적한데 바람이 불지 않는 선거도 참 드물지 싶습니다. 그 원인이 허름한 야권보다 관록 있는 여권이 수비를 잘해서 그렇지 않나 합니다. 그럴수록 단일화로 바람이 일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단일화라는 말이 반정부를 넘어 정책연대 혹은 가치지향적이길 바랍니다.

가까운 훗날, 파헤쳐진 4대강을 보며 그나마 여기서 삽질을 멈출 수 있었던 건 2010 단일화 덕분이었다고 말하면 좋겠습니다. 막걸리가 코리아 라이스 와인을 넘어 막걸리로 불리길 기대하듯 2010 단일화는 정치적 갈등을 넘어 생태평화 출발의 시발점과 소유의 종말 원년이 되었다는 전설이 되길 앙망합니다. 천일이 지나고 나서 코리아 라이스 와인이 아니라 MacGirly라고 쓰인 막걸리로 건배하며 새로운 아이콘이 된 단일화라는 안주를 먹으며 파안대소하는 미래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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