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힘
1.
우리는 오래 전부터 참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가지고 있다면 자기 나라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 따위의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정의를 찾지 못하고 강자(强者)나 그 밖의 것만을 찾아보게 된 것이다. (팡세 297)
올바른 자를 따라가는 것은 바른 일이며, 제일 강한 자를 따라가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반항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언제나 악인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수반하지 못한 힘은 공격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의와 힘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자를 강하게 만들고, 강한 자를 올바르게 만들어야 한다.
정의는 논의(論議)의 대상이 되기 쉽고, 힘은 인정을 받기는 쉽지만, 좀처럼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정의에 힘을 부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힘은 정의에 반항하여, 〈당신은 올바르지 못하다. 나는 올바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올바른 자를 강하게 할 수 없으므로, 강한 자를 정의로 간주했다. (팡세 298)
2.
가끔 아주 가끔 학창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팡세》를 손에 잡곤 합니다. 색이 누렇게 변해 꼬질꼬질한 묵은 종이 내음이 나지만 이따금 아무 페이지나 펼쳐봅니다. 삼성출판사(三省出版社)에서 1977년 6월 1일에 초판이 나왔고, 손에 있는 건 1978년 2월 15일자 10판 발행본이네요. 세계사상전집 가운데 한 권인데 보급특가가 무려(?) 900원짜리입니다.
파스칼은 1623년에 태어나 1662년에 세상을 떠났고, 《팡세》는 파스칼이 죽은 뒤 유족과 친척들이 글을 묶어 1670년에 펴냈다고 합니다. 오늘도 무심코 펼쳤는데 '정의와 힘'에 관한 팡세였습니다. 파스칼이 350여 년 전에 한 생각(Pensées)일 텐데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을 대신하며 처방하는 것 같아 흠칫했답니다.
강자만 따라가므로 정의를 찾지 못했다는 원인과 그 해결책으로 정의와 힘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읽혔습니다. 물론 파스칼이 400년을 살아있다고 해도 여전히 풀기 어려운 일이겠지요. 정의가 힘을 얻으며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말은 했을 것 같습니다.
올바른 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과 강한 자를 올바르게 만드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빠르고 쉬운 길인지는 결정하기 어렵겠지요. 다만, 우리 현대사와 요즘 형편으로 보면 올바른 자를 조금만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 빠른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오는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국회로 아주 많이 진출하도록 힘을 모아 주는 것처럼요. 단두대 없이 어물쩍 지나간 4월혁명과 6월혁명에 대한 후회를 한 방에 해소하는 첫단추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오늘을 사는 꼴통들이 한 최초로 의미 있는 반성이기도 하고요.
이 세상에 언제나 악인이 있다는 건 참된 정의도 분명히 있다는 방증이겠지요. 정의가 아직 힘을 얻지 못했을 뿐이고 당신이 그 힘이라고 파스칼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참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가지고 있다면 자기 나라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 따위의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정의를 찾지 못하고 강자(强者)나 그 밖의 것만을 찾아보게 된 것이다. (팡세 297)
올바른 자를 따라가는 것은 바른 일이며, 제일 강한 자를 따라가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반항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언제나 악인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수반하지 못한 힘은 공격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의와 힘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자를 강하게 만들고, 강한 자를 올바르게 만들어야 한다.
정의는 논의(論議)의 대상이 되기 쉽고, 힘은 인정을 받기는 쉽지만, 좀처럼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정의에 힘을 부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힘은 정의에 반항하여, 〈당신은 올바르지 못하다. 나는 올바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올바른 자를 강하게 할 수 없으므로, 강한 자를 정의로 간주했다. (팡세 298)
2.
가끔 아주 가끔 학창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팡세》를 손에 잡곤 합니다. 색이 누렇게 변해 꼬질꼬질한 묵은 종이 내음이 나지만 이따금 아무 페이지나 펼쳐봅니다. 삼성출판사(三省出版社)에서 1977년 6월 1일에 초판이 나왔고, 손에 있는 건 1978년 2월 15일자 10판 발행본이네요. 세계사상전집 가운데 한 권인데 보급특가가 무려(?) 900원짜리입니다.
파스칼은 1623년에 태어나 1662년에 세상을 떠났고, 《팡세》는 파스칼이 죽은 뒤 유족과 친척들이 글을 묶어 1670년에 펴냈다고 합니다. 오늘도 무심코 펼쳤는데 '정의와 힘'에 관한 팡세였습니다. 파스칼이 350여 년 전에 한 생각(Pensées)일 텐데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을 대신하며 처방하는 것 같아 흠칫했답니다.
강자만 따라가므로 정의를 찾지 못했다는 원인과 그 해결책으로 정의와 힘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읽혔습니다. 물론 파스칼이 400년을 살아있다고 해도 여전히 풀기 어려운 일이겠지요. 정의가 힘을 얻으며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말은 했을 것 같습니다.
올바른 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과 강한 자를 올바르게 만드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빠르고 쉬운 길인지는 결정하기 어렵겠지요. 다만, 우리 현대사와 요즘 형편으로 보면 올바른 자를 조금만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 빠른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오는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국회로 아주 많이 진출하도록 힘을 모아 주는 것처럼요. 단두대 없이 어물쩍 지나간 4월혁명과 6월혁명에 대한 후회를 한 방에 해소하는 첫단추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오늘을 사는 꼴통들이 한 최초로 의미 있는 반성이기도 하고요.
이 세상에 언제나 악인이 있다는 건 참된 정의도 분명히 있다는 방증이겠지요. 정의가 아직 힘을 얻지 못했을 뿐이고 당신이 그 힘이라고 파스칼이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