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내가 광주 도청 앞 분수대에서 총탄 자국을 본 것은 1990년 1월이었습니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날 무렵 저녁 회식을 하려고 식당에 가던 길에 부러 찾아가 봤습니다. 총탄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연수가 끝나기 전에 YS는 3당 합당을 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85년.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가려고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옆자리에 치악산에 왔다가 간다는 또래 여자가 앉았습니다. 이런저런 이바구를 하다 고향이 광주라고 했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자기 삼촌도 광주항쟁 때 죽었다고 했습니다. '시내에는 관이 동났다고, 급한 대로 베니어판을 구해 목공소에서 짜(19)'았다는 소문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을 염려하거나 눈물을 흘리면 잡혀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앞만 보며 터미널까지 왔습니다.

그날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는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85)'을 치욕스러워합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135)'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익숙해지는 치욕 속에 살아갑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102)'습니다.

소년은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17)'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걸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173)' 걸 모릅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17)' 나라가 소년을 죽였으니까요. 소년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213)'을 뿐이었습니다.

광주항쟁 영상을 처음 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동아리 방에서 빛이 새나가지 못하도록 창문을 가리고 모두가 숨죽이며 낡디 낡은 필름을 봤습니다.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213)'. 보면서도 믿지 못했습니다. 광주 폭동은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돼서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닙니다. 목격담이자 증언이고 취재수첩입니다. 학살자 전두환은 자연사가 최대 축복이 되면 안 됩니다.

소년이 온다/한강/창비 20140519 216쪽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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