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
애덤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의 커콜디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에 도덕철학으로 유명한 글래스고대학교에 입학해 수학하고, 옥스퍼드대학교에 유학하였다. 당시 교수들의 강의에 실망하여 독학으로 고전 연구를 하다 1746년 스물세 살의 나이에 옥스퍼드를 자퇴하고 귀향한다. 1751년 스물여덟 살에 글래스고대학교의 논리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이후 도덕철학을 가르치게 된다.
서른여섯 살이 되던 1759년 《도덕감정론》을 출간한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번역되어 인기를 얻자 경제적 후원자도 등장했다. 1763년에 12년간의 대학교수 생활을 접고 유럽 여행을 한다. 3년 동안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스미스는 10년 동안 집필에 전념하였고, 마침내 1776년 《국부론》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1790년 예순일곱의 나이로 에든버러에서 사망하여 그곳 교회에 묻혔다. 묘비명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 여기 잠들다'이다.
'《도덕감정론》은 동감윤리학이자 동감심리학이다. 스미스는 동감이 윤리의 원천이 되며, 모든 인간은 동감의 본성을 타고났다고 말한다(53)'. '스미스는 행복의 원천을 타인으로부터의 동감 혹은 인정에서 찾았다(56)'. 《도덕감정론》의 주요 내용은 '동감은 인간의 본성이며 행위 적정선은 동감에 있다는 것이다. 동감은 상호 간의 동감도 있지만, 쌍방의 상호작용을 지켜보는 제3의 관찰자의 입장에서의 동감도 있다(57)'. '동감은 공감, 동정, 동료애와 같은 의미(51)'이다.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동감의 범위에서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신중함이 필요(68)'하다.
스미스는 '개인은 자기 이해관계를 '신중'히 추구할 수 있지만, 이것도 타인의 동감을 얻는 범위, 그리고 공정한 관찰자가 시인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라며 '공동체로부터 동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71)'고 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때는 '상인과 제조업자가 국가 권력과 결탁해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약자들이 을의 입장에서 피해 보고 있었다. 그래서 기득권자의 독점을 없애고 시장에 맡겨야 국민이 잘살 수 있다(72)'고 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에서 단 한 번만 언급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여 사회에도 이익이 된다(227)'는 뜻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언급된 맥락은 독점으로 유지되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고전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자신들의 균형이론에 꿰맞추어 '시장기능'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해석을 일반인들도 받아들여 보편화된 것(228)'이다.
《도덕감정론》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등장한다.
《도덕감정론》과 〈천문학의 역사〉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 현상과 자연 현상에서 나타나는 '신의 섭리'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을 딱 세 번 사용했다.
'경제학을 창시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수요-공급 곡선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그림들은 경제에 수학을 적용한 신고전경제학자들에게서 도입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창시한 경제학은 고전경제학이라 부르고, 현대 경제학은 이전의 경제학과 구분하여 신고전경제학이라고 한다(144)'. '현대의 경제학은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면서 정치경제학에서 분리된 것이다. 전통 경제학은 발라가 물리학의 균형개념을 경제학에 도입하면서 수학적 방법을 채택한다. 그는 균형이론이 가능하기 위하여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데, 이는 현실에 맞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이런 가정을 당위로 착각하면서 이윤극대화 원칙을 만들어냈다(174)'.
애덤 스미스는 '이윤 추구는 인정하지만 이윤극대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165)'.
아울러 이윤과 함께 항상 임금도 같이 이야기한다.
스미스는 높은 이윤은 해롭다며 이자율의 두 배가 되는 이윤을 적당한 이윤이라고 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스미스의 사상을 왜곡하고 자신의 경제이론을 합리화하려고 '보이지 않는 손'을 가져다 포장하고 있다.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인간의 본성 중에서 이타적 측면은 배제하고 이기적 측면'만을 다루며 이기심의 경제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스미스는 이미 《국부론》에서 시장의 참여자인 상인과 제조업자의 사악함을 지적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은 나쁜 손'이라고 외쳤지만, 웬일인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이 점엔 주목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손은 착한 손'이라는 것만 강조(245)'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에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주의 몰락으로 더 거만해지고 더 탐욕스러워졌다. 신고전경제학자들이 포장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보면 그 내용물은 스미스의 사상과는 다른 이기심의 경제학, 이익극대화의 경제학이 자리하고(233)'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21세기 자본주의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그 본질에 깔려 있는 자본주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깨어 있는 자본주의', '온정적 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 등 자본주의 앞에 자꾸만 수식어가 붙는 것도 자본주의에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반증(26)'한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당시에는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19세기 후반에야 만들어진 용어다. 때문에 애덤 스미스 사상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사회주의적 관점에서도 읽을 수(24)' 있다. '스미스는 통념과 달리 자본가 편에 있지 않았고 노동자, 즉 경제적 약자 편이었다. 스미스에게 있어 자본의 목적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거나 생산적 노동자수를 늘리는 데 있었다. 한마디로 고용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스미스 사상은 자본 친화적이 아닌 노동 친화적이라 할 수 있다(25)'.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시장경제만, 혹은 시장만능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시장과 정부를 두 축으로 하는 정치경제 체제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 정부는 시장에서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의 감시기능 의무가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139)'. 스미스가 말하는 자유는 '자신의 이익 추구와 사회적 책임이 균형을 이루는 자유인 것이다(122)'. '애덤 스미스의 손은 그야말로 '따뜻한 손'이었던 것(347)'이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김근배/중앙북스 20160510 364쪽 16,000원
덧. 오탈자
서른여섯 살이 되던 1759년 《도덕감정론》을 출간한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번역되어 인기를 얻자 경제적 후원자도 등장했다. 1763년에 12년간의 대학교수 생활을 접고 유럽 여행을 한다. 3년 동안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스미스는 10년 동안 집필에 전념하였고, 마침내 1776년 《국부론》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1790년 예순일곱의 나이로 에든버러에서 사망하여 그곳 교회에 묻혔다. 묘비명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 여기 잠들다'이다.
'《도덕감정론》은 동감윤리학이자 동감심리학이다. 스미스는 동감이 윤리의 원천이 되며, 모든 인간은 동감의 본성을 타고났다고 말한다(53)'. '스미스는 행복의 원천을 타인으로부터의 동감 혹은 인정에서 찾았다(56)'. 《도덕감정론》의 주요 내용은 '동감은 인간의 본성이며 행위 적정선은 동감에 있다는 것이다. 동감은 상호 간의 동감도 있지만, 쌍방의 상호작용을 지켜보는 제3의 관찰자의 입장에서의 동감도 있다(57)'. '동감은 공감, 동정, 동료애와 같은 의미(51)'이다.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동감의 범위에서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신중함이 필요(68)'하다.
스미스는 '개인은 자기 이해관계를 '신중'히 추구할 수 있지만, 이것도 타인의 동감을 얻는 범위, 그리고 공정한 관찰자가 시인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라며 '공동체로부터 동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71)'고 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때는 '상인과 제조업자가 국가 권력과 결탁해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약자들이 을의 입장에서 피해 보고 있었다. 그래서 기득권자의 독점을 없애고 시장에 맡겨야 국민이 잘살 수 있다(72)'고 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에서 단 한 번만 언급된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226)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여 사회에도 이익이 된다(227)'는 뜻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언급된 맥락은 독점으로 유지되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고전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자신들의 균형이론에 꿰맞추어 '시장기능'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해석을 일반인들도 받아들여 보편화된 것(228)'이다.
《도덕감정론》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등장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토지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어졌을 경우에는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생활필수품의 분배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부지불식 중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인류 번식의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 신의 섭리는 대지를 소수의 귀족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이 분배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망각하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226)
《도덕감정론》과 〈천문학의 역사〉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 현상과 자연 현상에서 나타나는 '신의 섭리'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을 딱 세 번 사용했다.
'경제학을 창시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수요-공급 곡선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그림들은 경제에 수학을 적용한 신고전경제학자들에게서 도입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창시한 경제학은 고전경제학이라 부르고, 현대 경제학은 이전의 경제학과 구분하여 신고전경제학이라고 한다(144)'. '현대의 경제학은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면서 정치경제학에서 분리된 것이다. 전통 경제학은 발라가 물리학의 균형개념을 경제학에 도입하면서 수학적 방법을 채택한다. 그는 균형이론이 가능하기 위하여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데, 이는 현실에 맞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이런 가정을 당위로 착각하면서 이윤극대화 원칙을 만들어냈다(174)'.
애덤 스미스는 '이윤 추구는 인정하지만 이윤극대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165)'.
이윤이 감소할 때 상인들은 사업이 잘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쉽지만, 이윤의 감소는 상업 번영의 자연적인 결과이거나 이전보다 많은 자본이 사업에 투자된 결과이다. (...) 일반적인 이윤율의 최저한도는 자본의 투입으로 노출되는 우연한 손실을 보상하는데 충분한 것보다 항상 약간 높아야 한다. (165)
아울러 이윤과 함께 항상 임금도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의 상인과 제조업자는 높은 임금이 상품가격을 인상시켜 국내·국외의 판매량을 감축시킨다고 여기며 높은 임금의 나쁜 영향에 대해서는 크게 불평하면서도, 높은 이윤의 나쁜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이윤이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타인들의 이득이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서만 불평하고 있다. (166)
스미스는 높은 이윤은 해롭다며 이자율의 두 배가 되는 이윤을 적당한 이윤이라고 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스미스의 사상을 왜곡하고 자신의 경제이론을 합리화하려고 '보이지 않는 손'을 가져다 포장하고 있다.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인간의 본성 중에서 이타적 측면은 배제하고 이기적 측면'만을 다루며 이기심의 경제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스미스는 이미 《국부론》에서 시장의 참여자인 상인과 제조업자의 사악함을 지적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은 나쁜 손'이라고 외쳤지만, 웬일인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이 점엔 주목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손은 착한 손'이라는 것만 강조(245)'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에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주의 몰락으로 더 거만해지고 더 탐욕스러워졌다. 신고전경제학자들이 포장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보면 그 내용물은 스미스의 사상과는 다른 이기심의 경제학, 이익극대화의 경제학이 자리하고(233)'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21세기 자본주의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그 본질에 깔려 있는 자본주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깨어 있는 자본주의', '온정적 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 등 자본주의 앞에 자꾸만 수식어가 붙는 것도 자본주의에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반증(26)'한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당시에는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19세기 후반에야 만들어진 용어다. 때문에 애덤 스미스 사상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사회주의적 관점에서도 읽을 수(24)' 있다. '스미스는 통념과 달리 자본가 편에 있지 않았고 노동자, 즉 경제적 약자 편이었다. 스미스에게 있어 자본의 목적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거나 생산적 노동자수를 늘리는 데 있었다. 한마디로 고용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스미스 사상은 자본 친화적이 아닌 노동 친화적이라 할 수 있다(25)'.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시장경제만, 혹은 시장만능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시장과 정부를 두 축으로 하는 정치경제 체제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 정부는 시장에서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의 감시기능 의무가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139)'. 스미스가 말하는 자유는 '자신의 이익 추구와 사회적 책임이 균형을 이루는 자유인 것이다(122)'. '애덤 스미스의 손은 그야말로 '따뜻한 손'이었던 것(347)'이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김근배/중앙북스 20160510 364쪽 16,000원
덧. 오탈자
- 135쪽 6행 사법부를 행정부와 입법부를 분리하자는 주장 → 사법부를 행정부와 입법부로 분리하자는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