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소설은 '정의란 번복될 수 없고, 번복되어서도 안 되는 불변의 가치(306)'라고 믿는 1지구부터 60년 전 일어났던 12월 폭동으로 시간이 멈춰져 멸종되어 가는 9지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의를 판단할 때 실수할 수 있는 하위 지구와 중위 지구는 3심제와 2심제로 이루어졌지만, 1지구 법원은 단심제를 하고 있다. 1지구 법원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아서다. 9지구는 한낮에도 살인이 일어나고 강도가 득실댄다는 소문이 있다.

'아버지는 나에게 꿈을 불러일으켜 준 사람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겨 내야 하는 적'이라서 '적에게 배울 순 있지만 도움을 기대할 순 없(520)'는 3대에 걸친 과거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친구를 잃는 건 자신의 어린 시절 전체를 잃어버리는 것과도 같(233)'은 열여섯 동년배는 대를 이어 자식들도 또래 친구가 됐다. '가장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이라서 '죄책감도 가장 많이 느끼는(360)' 다윈 영, 자유를 '공휴일처럼 날을 정해 놓고 누리는 게 아니라, 갑자기 한밤중에 거리로 뛰쳐나가고 싶을 때 뛰쳐나갈 수 있는(92)' 레오 마샬 그리고 폭동인지 혁명인지 '껍질을 까서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578)'고 평가하려는 루미 헌터. 모두 1지구에 사는 특권층이지만 12월 폭동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운명이 엇갈린다.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 중 자신이 가장 용서받기 어려운 범죄에 대해서 변론과 반론, 판결(558)'을 내려야 한다. '세상에 한 사람이 반론과 변론을 동시에 수행하는 재판(670)'에서 진실이 '행복을 갉아먹는 해충'이 됐을 때 '진실의 가치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믿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치 있는 진실(429)'로 변하고 만다. '진실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진실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그런 관념론적 주장은 폐기 처분해야 한다. 나는 고통받는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서 의기양양해하는 진실 따위는 숭배하지 않(418)'게 된다. '다윈은 프라임스쿨과 다윈 영이라는 두 개의 다른 개체가 정교하게 합일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존재 양식이 완전히 다른 두 개체가 완전하고 완벽하게 하나로 일치돼 가고 있었다(767)'. 그렇게 악의 기원은 시작된다.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전 세대의 영광은 이어지고 흠결은 사라진다고 하는 게 문명의 발달에 부합되는 것 아니겠어? 모든 인간은 과거에서 유래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인간은 새로운 존재잖아. (388)

과연 그럴까? 살해당한 제이 헌터는 조카인 루미 헌터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족과 집을 더 사랑(243)'하는 천재이자 '재판관 제이(664)'였을까. 제인 헌터가 살해당하는 걸 목격한 동생 조이 헌터는 왜 침묵하고 있을까. 루미는 '역설적이게도 레오의 죽음이라는 극한의 불행을 통해 니스 아저씨에게 다윈과의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852)'를 얻어 좋아하지 않을까. 니스 영은 '단 한 번이라도 그게 진정한 선택(606)'이었을까. 다윈 영도 아버지처럼 레오 마샬을 기리는 추도식에 자기 자식을 데리고 갈까.

악은 평범하다. 악은 '누구든 연습하면 숙련될 수 있고, 숙련되면 위장할 수 있다(463)'.

다윈 영의 악의 기원/박지리/사계절 20160920 856쪽 18,000원


덧. 프라임스쿨은 6년제인데 제이 헌터는 열여섯에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4학년 편입시험이라는 언급이 었는 걸로 봐서는 3년이 늦었다. 이에 대한 어떤 암시도 소설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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