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다리

무너진 다리
가이아는 지구로부터 6만 광년 떨어져 있는 제2의 지구이다. 2087년 로켓 펄서 1호가 가이아를 향해 출발했다. 2091년 4월 10일 펄서 1호가 가이아 대기권에 진입하다 유성체와 충돌했다. 11년 뒤, 펄서 1호에 탑승했던 우주비행사 아인이 깨어났다.

휴론은 휴먼(human)과 클론(clone)의 합성어로 사람의 장기를 배양하여 다시 자신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무성 개체다. 휴론은 사고와 학습, 자기 판단이 가능하도록 완벽했지만, 늘 판단 오류를 내렸다. 자기 판단에 자기(自己)가 들어가지 않고 완벽이 들어간 것이 오류의 원인이었다. 거짓말은 인간이 지닌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만, 휴론의 최대 장점인 정직함과 솔직함은 오히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인간은 단 한 번도 완벽한 판단을 내린 적 없이 진화했지만 휴론은 개성이 없었다.

펄서가 유성체와 충돌할 때 아인은 1인용 캡슐로 탈출해서 지구에 도착했다. 아인이 날아오는 동안 가이아로 출발하려던 핵엔진 로켓이 아메리카 대륙에 떨어졌다. 폭발의 충격으로 대륙이 붕괴하여 가라앉았다. 지구 행성의 반이 사라졌다. 인간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휴론을 보냈다. 감정과 기억을 초기화시켜 청소만 반복하는 로봇으로 만들어 보냈지만 통신이 두절된 지 7년이 지났다. 아인은 핵엔진을 찾고 아메리카 대륙을 염탐하라는 임무를 안고 출발한다.

붕괴된 대륙에는 카인이 있다. 이 땅에 버려진 모두의 존재 이유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도록 진화한 첫 번째 휴론이다. 신의 감각 기관 중 하나를 훔쳐 온 인간의 직감도 가졌다. 기억하는 자가 더 많이 후회하고 스치기만 해도 쓰린 심장을 가질 정도로 진화했다. 살아남은 대륙도 피폐해졌다. 기술이 발전하면 힘든 일은 기계가 하고 인간은 취미를 낙으로 살아갈 거라고 했지만 틀렸다. 기술이 더 위대한 일을 했고, 인간이 기계처럼 일하는 세상이 됐다.

물 위에 살고 있는 것들은 실은 아주 오래전에 바다에서 살고 있었고 죄를 저질러 추방을 당했다. 인간도 원래 물에 살았다. 인간은 어떤 이유로 그곳에서 퇴출당했다. 인간은 아가미로 숨을 쉴 수 있었던 축복에서 내쫓겼다. 육지는 해상의 유배지였던 셈이다. 돌아가기 위한 방법은 죽음밖에 없다.

아인이 찾아온 핵엔진을 장착한 우주선은 지구를 버리고 선택된 소수의 인간만 태우고 가이아로 떠나려던 참이다. 아인과 카인은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생존자들과 휴론을 가이아로 가는 우주선에 태우려고 한다.

완벽이 종말의 다른 표현이라면 인간의 종말은 지구에게는 완벽이겠다. 인간을 대신할 다음 세대가 지구에 생기고 있다. 우주에서 가장 멋있는 문명을 품었던 인간이라면 결말도 멋있어야 한다. 카인이 아인에게 말했다. "너희는 지구를 끌어안아라. 원망했던 만큼 아프도록. 그리하여 지구의 모든 고름이 나오게 하라."

무너진 다리/천선란/그래비티북스 20190903 522쪽 16,000원


덧. 오탈자와 오류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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