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속도, 할배부터 손자까지 3대에 걸쳐 지켜낸 습지
〈행복의 속도〉는 박혁지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오제국립공원(尾瀬国立公園)에서 일하는 봇카(歩荷)들이 주인공입니다. 오제국립공원은 4개 지자체에 걸쳐 있는 일본 최대의 고산습윤지(高山濕潤地)입니다. 오제 여행은 4월 하순경에 얼음이 녹으면서 시작하여 10월 하순까지 계속됩니다. 9월이 되면 가을에 접어들고 10월 중순이 되면 오제 지역에 있는 산장들이 영업을 끝내고 하산 준비를 합니다. 11월 중순경이 되면 산장들이 모두 문을 닫습니다.
봇카는 일본의 옛날 직업으로 걸어서 짐을 운반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제국립공원에는 지금도 산장까지 걸어서 짐을 나르는 봇카들이 있습니다. 봇카들은 지게에 짐을 싣고 길게는 12킬로미터에 이르는 산장까지 걸어서 운반합니다. 산장이 문을 여는 시즌 초에는 약 40킬로그램을 지며 몸을 만들다가 본격적으로 바빠지면 약 80킬로그램의 짐을 지고 걷습니다. 가까운 산장은 킬로그램당 천 원, 가장 먼 산장은 이천 원을 받습니다. 봇카들은 지게에 짐을 실을 때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엄청난 무게를 이겨내는 해법은 힘이 아니라 균형입니다. 오제에는 여섯 명의 봇카가 있습니다.
오제 산장은 차가 다니지 못하고 폭이 50cm 정도 되는 나무길(木道)로 이어져 있습니다. 봇카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전통이 전해집니다. 선배는 후배의 뒤를 따라 걷습니다. 정오까지 산장에 도착해야 하지만, 선배는 후배의 안전을 살펴줍니다. 일을 계속하려면 모두가 함께 짐을 안전하게 날라야 하니까요. 오제의 길은 나란히 걸을 수 없는 좁은 길이지만, 함께 걷기에 좋은 외길입니다. 누군가 내 뒤를 지켜주는 따뜻한 시선을 느끼며 걷는 길, 바로 봇카의 길입니다.1 이런 나무길은 3대에 걸친 환경보호운동으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설치됐습니다.
1903년 일본 정부는 오제에 댐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자 일본 자연보호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히라노 조조(1870~1930)는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히라노는 1890년부터 오제습원 주변에 현재 '조조산장'으로 불리는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오제의 가치를 알려온 인물입니다. 히라노가 사망한 뒤에는 그의 아들이 댐 반대운동을 이어갔습니다. 1950년대 댐건설계획이 무산된 뒤 1960년대 도로건설계획이 시작되자 손자인 히라노 야스가 도로건설 반대운동을 주도했고, 결국 1971년 일본 정부는 공사 중지를 발표했습니다.2
1940년대 말부터 오제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늪지대 지반 침하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관광객들이 아무 곳이나 밟아버리자 늪지대 지형과 생태계 파괴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나무길은 처음에는 늪지대를 걷기 편하게 하고 걸어 다니는 지역을 제한하여 늪지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후에는 늪지대 보호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 나무길은 1952년부터 단선으로 시작하여 후에 복선으로 바뀌었는데 1975년에 이미 총연장 길이가 60킬로미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1960년대부터 관광객이 불어나자 오제 지역 곳곳이 쓰레기산으로 변했습니다. 1970년대 초 도로반대운동과 함께 시작한 '쓰레기 들고 돌아가기 운동'이 10년 정도 지나자 쓰레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고 합니다.3
2주일에 한 번씩 오제 산장으로 헬리콥터가 짐을 운반하기도 합니다. 헬리콥터를 보며 봇카가 말합니다. "처음에 헬리콥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뭐야? 우리 뭐하는 거지?" 나무길을 걷던 봇카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여기 잠자리는 사람이 와도 도망가지 않아. 사람은 오제한테서 뭘 뺏지 않고 오제도 사람한테서 뭘 뺏지 않거든. 잠자리도 그걸 아니까 도망가지 않아." 빠르진 않지만 묵묵히 함께 걸으며 꼭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행복의 속도가 아닐까요. 시속 4킬로미터로 걸으면 빠르게 지나쳤던 사람이 보이고 꽃들이 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봇카는 일본의 옛날 직업으로 걸어서 짐을 운반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제국립공원에는 지금도 산장까지 걸어서 짐을 나르는 봇카들이 있습니다. 봇카들은 지게에 짐을 싣고 길게는 12킬로미터에 이르는 산장까지 걸어서 운반합니다. 산장이 문을 여는 시즌 초에는 약 40킬로그램을 지며 몸을 만들다가 본격적으로 바빠지면 약 80킬로그램의 짐을 지고 걷습니다. 가까운 산장은 킬로그램당 천 원, 가장 먼 산장은 이천 원을 받습니다. 봇카들은 지게에 짐을 실을 때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엄청난 무게를 이겨내는 해법은 힘이 아니라 균형입니다. 오제에는 여섯 명의 봇카가 있습니다.
오제 산장은 차가 다니지 못하고 폭이 50cm 정도 되는 나무길(木道)로 이어져 있습니다. 봇카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전통이 전해집니다. 선배는 후배의 뒤를 따라 걷습니다. 정오까지 산장에 도착해야 하지만, 선배는 후배의 안전을 살펴줍니다. 일을 계속하려면 모두가 함께 짐을 안전하게 날라야 하니까요. 오제의 길은 나란히 걸을 수 없는 좁은 길이지만, 함께 걷기에 좋은 외길입니다. 누군가 내 뒤를 지켜주는 따뜻한 시선을 느끼며 걷는 길, 바로 봇카의 길입니다.1 이런 나무길은 3대에 걸친 환경보호운동으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설치됐습니다.
1903년 일본 정부는 오제에 댐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자 일본 자연보호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히라노 조조(1870~1930)는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히라노는 1890년부터 오제습원 주변에 현재 '조조산장'으로 불리는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오제의 가치를 알려온 인물입니다. 히라노가 사망한 뒤에는 그의 아들이 댐 반대운동을 이어갔습니다. 1950년대 댐건설계획이 무산된 뒤 1960년대 도로건설계획이 시작되자 손자인 히라노 야스가 도로건설 반대운동을 주도했고, 결국 1971년 일본 정부는 공사 중지를 발표했습니다.2
1940년대 말부터 오제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늪지대 지반 침하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관광객들이 아무 곳이나 밟아버리자 늪지대 지형과 생태계 파괴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나무길은 처음에는 늪지대를 걷기 편하게 하고 걸어 다니는 지역을 제한하여 늪지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후에는 늪지대 보호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 나무길은 1952년부터 단선으로 시작하여 후에 복선으로 바뀌었는데 1975년에 이미 총연장 길이가 60킬로미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1960년대부터 관광객이 불어나자 오제 지역 곳곳이 쓰레기산으로 변했습니다. 1970년대 초 도로반대운동과 함께 시작한 '쓰레기 들고 돌아가기 운동'이 10년 정도 지나자 쓰레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고 합니다.3
2주일에 한 번씩 오제 산장으로 헬리콥터가 짐을 운반하기도 합니다. 헬리콥터를 보며 봇카가 말합니다. "처음에 헬리콥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뭐야? 우리 뭐하는 거지?" 나무길을 걷던 봇카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여기 잠자리는 사람이 와도 도망가지 않아. 사람은 오제한테서 뭘 뺏지 않고 오제도 사람한테서 뭘 뺏지 않거든. 잠자리도 그걸 아니까 도망가지 않아." 빠르진 않지만 묵묵히 함께 걸으며 꼭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행복의 속도가 아닐까요. 시속 4킬로미터로 걸으면 빠르게 지나쳤던 사람이 보이고 꽃들이 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 해발 1500미터, 짐을 실어나르는 '봇카'의 삶
다큐영화 길 위의 인생 - 인생을 짊어지고 - 경향신문 일본 최고 습지 지킨 산장지기 삼대의 환경운동
- 문옥표 개발과 보존의 사이 : 일본 오제(尾瀬)의 관광개발과 자연보호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