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죽은 자의 집 청소
  • 자비 없는 세상을 원망하고 죽은 인간조차도 그 자리에 방치된 채 오랫동안 썩어갔다면 그 냄새는 자비가 없다. (23)
  • 자신을 죽인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27)
  •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때때로 부유한 자가 혼자 살다가 자살하는 일도 있지만, 자살을 고독사의 범주에 포함하는 문제는 세계적인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니 일단 논외로 하자. 고급 빌라나 호화 주책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적이 없다. (41)
  • 가난은 가난과 어울려 다니며 또 다른 가난을 불러와 친구가 되고, 부는 부와 어울리며 또 다른 풍요를 불러오는 것 같다. (42)
  • 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 (44)
  • 이 죽음을 순수한 자살로 받아들여야 할까? 목숨을 끊은 것은 분명 자신이겠지만, 이 도시에서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권유 타살은 아닐까? 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 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 (46)
  •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47)
  • 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 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 (66)
  • 이곳을 치우며 우연히 알게 된 당신의 이름과 출신 학교, 직장, 생년월일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그것은 당신에 대한 어떤 진실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치우면서 한 가지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이곳에 남은 자들의 마음입니다. (128)
  • 사람이든 고양이든 척추를 가진 포유류가 썩는 냄새는 한번 경험하면 다른 냄새와 오인하지 않을 만큼 고유하다. (150)
  • 자살을 결심하고 그 뒤에 수습할 일까지 염려한 남자, 자기 죽음에 드는 가격을 스스로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건 남자.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어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연이 있기에 한 인간을 마지막 순간으로 밀어붙인 것만으로 모자라, 결국 살아 있는 자들이 짊어져야 할, 죽고 남겨진 것까지 미리 감당하라고 몰아세울까? (197)
  • 똥이나 오줌 따위야 지당한 것이고, 술을 먹고 게워놓은 토사물로 가득한 변기, 지병을 앓다가 고독사한 이가 발견된 집에서는 각혈로 피가 잔뜩 고인 변기도 흔히 만났다. 지상의 그 어떤 더럽고 난처한 것도 군말 없이 받아주는 한량없이 너그러운 존재가 있다면 바로 변기일 것이다. 나는 웬만해선 이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다. (220)
  • 지성을 가진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가 그 지성으로 자살 도구를 고른다. 참으로 잔혹한 아이러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아이러니는 인간의 생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댔을 뿐, 사람의 생명과 죽음은 결국 한 몸통이고 그중 하나를 떼놓고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다. (236)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김영사 20200530 252쪽 13,800원

혼자 죽은 이들의 집을 청소하러 가면 전기나 가스 공급 중단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난한 이들은 혼자 죽지만, 부유한 자는 금은보화를 확인하러 오는 이들 때문에 혼자 죽을 수가 없다. 혼자 죽기 전에 분리수거를 한 사람이나 수습 비용을 문의한 사람은 빚쟁이의 건강을 채권자만 염려하는 사회에서 남은 자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고단하고 외로웠던 누군가의 마지막을 단절했거나 외면했던 사적 마음과 사회적 마음을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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