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 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7)
  • 내 글이 나이 든 시급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모든 아픔을 온전히 풀어내지는 못할지라도, 나와 동료들이 겪었던 고단함만은 진실하게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9)
  • 회사가 주는 것은 딱 하나, 월급뿐이다. (33)
  •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보급이 전혀 없는 병사들과 같았다. 보급품이 필요하면 자신의 시급을 털어 넣어 조달해야 한다. 시급 일터는 다 그랬다. (35)
  • '임시 계약직'이라는 말에 노인 '장'(長) 자를 하나 덧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임계장이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이다. 나는 계약직 중에서도 '단기'인 임시 계약직이기 때문에 임계장이 된 것이다. (38)
  • 아파트 경비원 구인 광고에는 "신체가 강건한 자"라는 문구가 많았다. 허약한 노인은 사절한다는 뜻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그냥 '실팍한 머슴'을 구하는 것이었다. 사지가 멀쩡한 건강한 몸뚱이를 요구하는 것은 임계장류 직종에 공통적이었다. (51)
  • 경비원은 그저 늙은 소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자치회나 관리사무소에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요. 빗자루나 걸레 같은 게 닳거든 웬만하면 제 돈 주고 사서 쓰는 게 마음 편할 거요. 그저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해요. (62)
  • 경비원을 시작할 때 선임자가 해준 첫 번째 충고는 주민과 다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랬다. 다투면 항상 졌다. 내가 옳으면 주민은 항상 더 옳았다. (69)
  • 잡균과 오물이 묻은 손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주민의 심부름도 할 수 없으며, 택배를 다룰 수도 없으니, 하루 평균 손을 씻는 횟수가 서른 번, 어떨 때는 쉰 번이 넘을 때도 있었다. (87)
  • 주민들은 좋은 사람 소수와 아주 무관심한 다수, 그리고 극소수의 나쁜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이 있었다. (100)
  • 2017년 들어 최저임금이 6030원에서 6470원으로 상승했는데, 그 상승분 440원을 주기 싫어서 무급 휴게 시간을 한 시간 더 늘린 상황이었다. (109)
  •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이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122)
  • 휴게 시간이란 경비원이 받는 임금이 쉬는 시간이지 몸이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경비원이 휴게 시간에 쉴 수 있으려면, 그 시간에 아파트도 쉬어야 한다. 그러나 수천 명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24시간 잠시도 쉬지 않는다. (124)
  • 휴게 시간에 쉬어서는 안 되는 더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일 잘하는 경비원'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재계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비원들 가운데 휴게 시간에 제대로 쉬는 경비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일하는 내내 휴게 시간이 근무시간보다 바쁠 때가 더 많았다. (126)
  • 경비원들이 똑같이 원하는 것은 세 가지였다. "몸을 씻을 수 있는 곳,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잠을 잘 수 있는 곳." 인격적 무시와 과중한 업무, 그리고 부상에 시달리는 일 등은 차라리 나중 문제였다. (127)
  • 24시간 격일제로 일하는 두 곳의 일터를 오가게 되면서 쉬는 날은 없어졌다. 52시간 근무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고, 내겐 월화수목금금금, 퇴근이 곧 출근이고 출근이 곧 퇴근인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150)
  • 밥을 못 먹어서 서러운 것이 아니라, 밥도 못 먹게 하는 사람을 동료라 여기고 일해야 하는 현실이 서러웠다. (172)
  • 사실 경비원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중 반가운 것은 빗방울뿐이다. 눈이며, 꽃잎이며, 낙엽이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들은 모두 다 쓰레기다. (181)
  • 경비원에게 명절의 '3대 공포'는 선물 상자 택배와 명절 쓰레기, 방문 차량이다. (199)
  • 터미널고속 운전기사 숙소는 정기적으로 침구를 세탁해 주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노조가 있고 경비원은 노조가 없다. 운전기사는 정규직이고 경비원은 단기 비정규직이다. 이런 신분의 차이가 침구 세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215)
  • 시급 노동자 임계장은 아파서는 안 되고 일터에서 부상을 입어서도 안 된다. (...) 고용주에게 중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이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가이다. (248)
  • 내가 일했던 모든 시급 일터에서 고용주의 요구는 항상 똑같았다. "최저임금으로 최고의 노동을 바쳐라!" 고용주들이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시급 노동 인력들이 넘쳐 나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 나라는 가장 적은 임금으로 가장 혹독한 일을 시킬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고용주들의 소망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250)
  • 서울 평화시장에서 하루 16시간씩 미싱을 돌리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보듬어 안고 분신했다. 전태일 시대의 가혹한 노동은 현 시대에 단기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시대의 비정규직이 없어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전태일이 스스로를 태워야 하는 것일까? (251)

임계장 이야기/조정진/후마니타스 20200330 260쪽 15,000원

버스 회사 배차원, 아파트 경비원, 고층 빌딩 주차 관리원 겸 경비원, 터미널 보안요원이 된 시급 노동자 즉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인 임계장의 노동 일지입니다. 경비원에게 가장 반가운 것은 빗방울뿐이고, 눈이나 꽃잎, 낙엽과 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든 것들은 쓰레기라고 합니다. 시급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건 '최저임금으로 최고의 노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된 세상입니다. 최저임금만 지급해도 시급 노동을 하겠다는 인력이 넘치기 때문이죠.

비정규직은 구조적 문제가 엃히고설켜 있어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보다 더 높아야 합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받는 복지 혜택이 없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지만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음지에서 움직이는 건 애사심이 넘치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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