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序 - 이상희
1989년 초판본 |
호흡곤란으로 숨차하다가 고개를
들어 보면 내려야 할 역(驛)을 또
지나쳐 버렸다······ 낭패
죽음의 기나긴 식도(食道).
지나쳐 버린 역들을 멍멍하게 바라본다.
1989년 11월
이상희
잘 가라 내 청춘/이상희/민음사 20070420 88쪽 7,000원
세상에 나와 이로운 못 하나 박은 것 없다. 못 하나만 잘 박아도 집이 반듯하게 일어나고 하다못해 외투를 걸어두는 단정한 자리가 되는 것을, 나는 간통을 하다가 생을 다 보냈다. 시를 훔치려고 소설을 훔치려고 외람된 기호를 가장했다. 아, 나는 남의 것을, 모든 남의 몫뿐이었던 세상을 살다 간다. 가난한 눈물로 물 그림을 그리던 책상은 긍지처럼 오래 썩어 가게 해 달라. 단 하나, 내 것이었던 두통이여, 이리로 와서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막아 다오. 그리고 떳떳한 사랑을 하던 부럽던 사람들 곁을 떠나는 출발을 지켜봐 다오.1
그가 앉은 섬에는
낙타가 바늘 속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2
나는 나의 시대를 미행할 뿐 눈물 폭죽을 터뜨리며 뛰어가는 광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초조한 범인 검은 쇼윈도에 흘낏 제 꼬리를 감출 때 겅중겅중 위태한 징검돌 개울에서 자라는 혹을 밟으며 건너갈 때 갈채에 떠내려가는 회미한 손금 찢어진 얼굴들 있었지만 나는 가까이 또 멀리서 손아귀 단단히 말아진 신문 부시게 터지는 외신 카메라 플래시를 가리느라 가끔 펴 들고는 말 못할 말 없이.3
연밥 하나 주시겠어요
탈색한 냉이도 반 다발
연밥은 수상하다니까요
이렇게 많은 구멍들을 보세요
절망을 놓쳐 버린 표정이군요4
달면 뱉고
쓰면 삼킨다
가죽처럼 늘어나 버린
청춘의 무모한 혓바닥이여.5
눈물은 결국
만리포 파도처럼
죽은 마음의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깔깔한 사랑의 모랫벌을
다시 달리게 했다.6
오늘은 하지(夏至)
죽음이 가장 긴 날.7
다시 걸으리
믿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지나가는 버스를 세어 보는
수많은 저녁8
청춘은 말없음표인지 말줄임표인지 세어 보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버리는 것, 지나가는 버스를 세어 보는 것, 그러므로 청춘은 무모한 것. 지나쳐 버린 역들은 절망을 놓쳐 버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이로운 못 하나 박질 못해도 다시 달리는 것이 청춘이다. 내 청춘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날은 죽음이 가장 긴 날, 하지뿐이다. 하지 빼곤 모든 날이 청춘이다.
그가 앉은 섬에는
낙타가 바늘 속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2
나는 나의 시대를 미행할 뿐 눈물 폭죽을 터뜨리며 뛰어가는 광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초조한 범인 검은 쇼윈도에 흘낏 제 꼬리를 감출 때 겅중겅중 위태한 징검돌 개울에서 자라는 혹을 밟으며 건너갈 때 갈채에 떠내려가는 회미한 손금 찢어진 얼굴들 있었지만 나는 가까이 또 멀리서 손아귀 단단히 말아진 신문 부시게 터지는 외신 카메라 플래시를 가리느라 가끔 펴 들고는 말 못할 말 없이.3
연밥 하나 주시겠어요
탈색한 냉이도 반 다발
연밥은 수상하다니까요
이렇게 많은 구멍들을 보세요
절망을 놓쳐 버린 표정이군요4
달면 뱉고
쓰면 삼킨다
가죽처럼 늘어나 버린
청춘의 무모한 혓바닥이여.5
눈물은 결국
만리포 파도처럼
죽은 마음의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깔깔한 사랑의 모랫벌을
다시 달리게 했다.6
오늘은 하지(夏至)
죽음이 가장 긴 날.7
다시 걸으리
믿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지나가는 버스를 세어 보는
수많은 저녁8
청춘은 말없음표인지 말줄임표인지 세어 보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버리는 것, 지나가는 버스를 세어 보는 것, 그러므로 청춘은 무모한 것. 지나쳐 버린 역들은 절망을 놓쳐 버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이로운 못 하나 박질 못해도 다시 달리는 것이 청춘이다. 내 청춘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날은 죽음이 가장 긴 날, 하지뿐이다. 하지 빼곤 모든 날이 청춘이다.
- 봉함엽서
- 바느질
- 조서
- 마른 꽃 가게에서 1
- 잘 가라 내 청춘
- 내가 가끔 회상하는 건, 그날/ 잠에서 처음 깨어 나무 그늘 꽃 위에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무엇이고 어디 있고 어디서 어떻게 그곳에 왔는가를 의아해하던 그때의 일
- 하지
- 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