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 중년 1인 가구, 홀로 나이 들어가는 '에이징 솔로 Aging Solo'가 대폭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혼자 사는 게 과도기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기본값인 사람들이 나이 듦이라는 과제를 함께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노인 1인 가구는 노년기에 접어든 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혼자인 상태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생애 전환을 겪게 될 대규모 집단이 등장했다. (11)
- 세상이 비혼인 중년을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비참해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생애 과제들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리라 예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성숙해지고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은 애초에 결혼 여부와 상관 없는 일이다. (12)
- 혼자 사는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한데, 이 책에서 말하는 에이징 솔로는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해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중년을 뜻한다. 대다수가 1인 가구지만, 친구 등 동거인이 있는 경우에도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비혼의 중년은 에이징 솔로에 포함했다. (13)
-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1인 가구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혼삶'을 지속적인 삶의 방식으로 채택한 에이징 솔로 여성이 왜 아직도 앞에서 인용한 연구 참여자의 설명처럼 '폭력' '무게감'이 실린 눈초리를 받 는가 하는 점이다. 전통적 가족의 모습에서 이탈했다고 해서 왜 '남편도, 자식도 없는' 결핍의 인생이라고 바라보는 걸까? 왜 외롭고 힘들 거라고만 짐작하는 걸까? (39)
- 비혼을 정치적 견해 표현으로 여기는 사람이든, 자신에게 알맞은 삶의 방법을 고르다 보니 어쩌다 비혼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든, 그 선택의 바탕에는 제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묶여 있지 않을 때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통된 가치관이 있다. 도시에서 혼자 살기가 더 수월해지고 다양한 연결망을 통해 사람들의 관계 맺는 방법이 발달할수록 경직된 결혼제도 대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늘게 될 것이다. (60)
- 한국의 기록적인 저출생 현상의 구조적 원인은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의 이기심과 페미니즘이 아니라, 뿌리 깊은 성차별과 가부장 문화에 있다. (73)
- 결혼이 독립의 기준, 성인 됨의 지표인 한국 사회에서 솔로들에게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은 다소 마음이 복잡해지는 주제다. 경제적·공간적으로도 이미 독립했고 오랜 시간을 혼자 살았어도 비혼인 딸들은 부모에게서 독립했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라는 신념으로 살아오면서 자식을 자신과 분리된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는 부모들은 '출가외인'이 되지 않은 비혼인 딸을 여전히 자신의 보호와 감독 아래에 있는 통제 대상으로 바라본다. (128)
-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에서 가장 높다. 노인이 받을 수 있는 공적연금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녀가 있는 노인의 상당수는 장기간 자녀의 값비싼 교육 비용을 부담해 왔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인 중에서도 비수도권에서 혼자 사는 여성 노인이 가장 가난하다. 젊어서부터 혼자 살아온 여성 노인보다 생애 내내 가족 뒤치다꺼리만 하느라 교육을 받거나 직업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기혼 여성이 배우자와 사별한 뒤 더 큰 곤란에 처하기 쉽다. (194)
- 특히 자녀 가운데 비혼인 딸이 있으면 그가 부모 돌봄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비혼 딸에 대해 "결혼 적령기가 지나면 개호(돌봄) 적령기가 온다”라는 속설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일본에서 독신인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실상을 다룬 르포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의 저자 야마무라 모토키는 이를 "초고령 사회에서 만혼화와 비혼화가 진행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초고령자인 부모의 자녀가 결혼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꾸리지 않았을 경우 부모의 돌봄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강요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진해서 부모 돌봄을 선택한다. (217)
- 설령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더 돌봄 친화적이라는 기상천외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여성이 돌봄을 전담해서는 안 된다. 돌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의 기본 조건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당면해야 하는 일을 특정 성별이 전담하고 다른 성별은 '무임승차'해 온 오래된 불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228)
-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서 고독사가 느는 게 아니라 고립이 고독사를 만드는 것이다. (245)
- '싱글리즘Singlism'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회심리학자 벨라 드파울루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사전적 정의는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자에게 편견을 갖는 것"을 뜻한다. (271)
- 에이징 솔로가 대수로울 것 없이 사회에 섞여 살아가려면 아직도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일까. 여전히 비혼 여성에게 적대적이거나 차별적인 한국 사회의 태도와 관행을 생각해 보면, 혼자 사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솔로들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여전히 가족 중심적 사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것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285)
- 협소하게 정의된 가족의 중요도가 커질수록, 가족의 역할이 확대될수록 가족을 구성하고자 하는 의지도 꺾이기 마련이다. 원가족의 풍부한 지원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가족이 사회보장과 복지의 기본 단위인 한, 이미 부유한 가족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가족은 점점 더 가난해질 것이다. 그렇게 가족 계급사회가 가속화할수록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질 것이다. (311)
- 혼자 나이 드는 삶에 대한 선입견을 거두고 바라본다면 이 책에서 에이징 솔로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결국 자기 자신과 생애 전환, 친밀한 관계 맺기, 여러 층위의 연결망, 나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기 등을 다르게 실천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319)
에이징 솔로/김희경/동아시아 20230322 332쪽 16,800원
출산율을 걱정하면서도 미혼모에게 손가락질하는 꼴통가부장시대인지라 중년 1인 가구, 특히 여성 에이징 솔로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출산, 입양, 동거, 돌봄, 연대 등 새로운 식구나 가족형태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서둘러 소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