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와 21세기 초의 이데올로기 장기파동
20세기와 21세기 초의 이데올로기 장기파동 |
우리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시대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이 시대에 다양한 유럽 나라들에서는 자유방임시장 개인주의라는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진영이 지배했고, 보수주의 우파는 대부분 수세적인 입장이었다. 이 시대의 주인 기표는 자유였다. 자유주의 시대는 세계대전과 세계공황이라는 재앙으로 끝을 맺었고, 그 자리는 정의라는 주인 기표를 가진 자유주의의 오랜 적수인 사회주의가 곧 서구에서는 민주적 사회주의가, 동구에서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가 차지했다. 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해, 붉은 러시아는 국가 중심적이고 매우 억압적인 일국 사회주의의 종주국이 됐다. 동시에, 루스벨트는 자신의 진보적 뉴딜을 고안 중이었는데, 이 같은 뉴딜은 (프랑스에서 더 짧은 기간 동안 레옹 블럼의 인민전선 내각이 그랬듯이) 친노동정책과 사회민주주의적 공공지출에 우선순위를 뒀다. 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지면서, 사회주의의 발흥에 대한 우익의 반작용으로 파시스트 민족주의가 출현했는데, 이들은 노동계급운동 담론의 일부를 전유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사회주의가 철의 장막 양쪽에서 발전했다.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나타난 계급타협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사회민주주의적 협약형태를 띠었고, 이른바 영광의 30년, 곧 1945년과 1975년 사이 자본주의가 경험한 경제성장의 황금시대로 이어졌다. 소련과 그 위성국에서 이 같은 흐름은 공산주의 계획경제와 사회복지정책으로 표출됐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비롯한 잇따른 위기들은 사회민주주의 시대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이 같은 국면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 질서가 탄생할 수 있는 공간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이후 헤게모니 싸움에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칼 포퍼, 밀턴 프리드먼 같은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은 신자유주의가 승리했다. 이런 사상가들은 사회주의 세계를 겨냥해 낭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브랜드의 보수정치인을 통해 신속하게 이행됐다. 이런 정치인 중에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이 가장 유력했는데, 이들은 신자유주의가 정책입안자 사이에서 지배적인 경제적, 정치적 교리가 되도록 만들었다. 다시 한 번, 이 시대의 주인 기표는 '자유' 또는 더 정확하게 '시장의 자유'가 됐다. 이런 과정에는 개방시장이 승리를 거둔 시대라는 서사를 함께 꾀하려고 고안된 몇 가지 연관된 용어들, 곧 '개방성', '기회', '기업가정신' 등이 수반됐다. 급증하는 불평등에 대한 널리 퍼진 불만이 불을 지핀 2010년대의 반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의 부상은 이 같은 이데올로기 시대의 최저점을 나타낸다.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 사회가 자신에게 반격을 가하는 현상이다.
우리는 현재 정치적 양극단을 모두 아우르는 이데올로기 공간의 체계적 변화의 측면에서 나타나는 서로 유사한 이데올로기적 또는 더 나은 표현으로 메타 이데올로기적 이행국면에 서 있다. 이 같은 국면에서 신자유주의는 정치담론의 형태를 새롭게 하고 사회의 전망과 정치적 우선순위들을 급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운명을 떠안은 신국가주의로 대체되는 시점에 서 있는 듯 보인다. 현재의 이데올로기적 궐위 시기에 드러나는 광포 속에서 이 같은 정치적 공통감각의 변화가 진보적 모멘텀이 될지 반동적 모멘텀이 될지에 관해서는 아직 우리가 조금이라도 확실히 이야기할 수 없는 반면, 보호와 통제 담론의 새로운 키워드들은 코로나19 위기로부터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고 있다. (68~72쪽)
거대한 반격 - 포퓰리즘과 팬데믹 이후의 정치The Great Recoil: Politics after Populism and Pandemic, 2021/파올로 제르바우도Paolo Gerbaudo/남상백 역/다른백년 20220405 496쪽 22,000원
이데올로기의 상승과 쇠락 국면에서 나타난 신자유주의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뒤에 나타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신국가주의를 예측한다. 20세기와 21세기 초의 이데올로기 장기파동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하여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