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내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습니다.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가장 가난한 개발도상국이 부유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사례는 한국이 처음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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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담론은 부와 특권이 세습되는 계급사회의 현실을 감추는 위험한 장막이 될 수 있어요. 지금 청년들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부가 대를 이어 세습되는 불평등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불평등의 사슬을 끊는 것은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대다수 기성세대를 적으로 돌리는 세대 간의 반목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한 특권 없는 사람들의 세대를 가로지르는 연대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부가 세습되는 새로운 신분사회니까요.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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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유명한 CEO 1,582명의 출생 순서를 조사한 연구 결과에서도 무려 43퍼센트가 첫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출생 순서에 따라 부모가 투여하는 자원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자녀의 역량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자란 형제들도 그럴 진데, 사회적 지위가 상이한 아이들의 성공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상식적인 결론 아닐까요.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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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참 대단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사회문제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니까요. 실제로 한국은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GDP가 4만 불이 넘는 부유한 국가입니다. 동시에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 중 절반 가까이가 빈곤한 국가입니다. 부자 나라 대한민국에서 65세 이상 노인 중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이 무려 6만 6천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중 29퍼센트는 이미 80세가 넘은 초고령 노인입니다.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도 노인들의 월 평균 수입은 20만 원이 되지 않습니다.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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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대기업의 성장은 국민의 엄청난 희생과 양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 기업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할 수 있는 일을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 있는 돈이란 돈은 다 긁어모아 대기업에 몰아주었으니까요.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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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은 1인당 국민소득 만 달러가 될 즈음인 1980년에 이미 GDP의 21.9퍼센트를 복지에 지출했고요. 최고의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은 1인당 국민소득이 만 달러였던 1975년에 GDP의 15.6퍼센트를 복지에 지출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1인당 GDP가 만 달러를 넘었던 1980년에 복지지출이 GDP의 10.0퍼센트였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만 달러를 달성했던 1994년, GDP 대비 사회지출(복지지출)은 2.8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의 복지지출이 GDP의 10퍼센트를 넘었던 2017년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을 때였습니다. 현재 한국의 복지지출은 30~60년 전 서구 국가들의 국민소득이 만 달러를 넘었을 때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국민이 복지를 확대하다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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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사회는 사회적 연대를 통해 서로 돕는 일에 이토록 인색해졌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한국의 놀라운 성공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공적 복지의 확대 없이 성장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고 불평등을 낮추었던 그 놀라운 성공의 경험이 한국 사회를 이렇게 만든 것이죠. 성공 경험이 서로 연대하지 못하게 장벽을 친 것입니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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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복지제도는 왜 이렇게 사회적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 사람들을 배제한 복지제도가 됐을까요? (...)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없이 높은 경제성장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에서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하는 방식으로 불평등과 빈곤을 낮추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1인당 GDP는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지만, 복지지출은 무척 더디게 증가했습니다.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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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통해 사회적 위험에 대응했던 한국 사회는 성장이 멈추자 모두가 제 살길을 찾기에 바쁜 각자도생이 사회가 되었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사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사회에서 창의적인 도전을 하는 사람은 점점 소수가 됩니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 비판적인 부모들조차 자녀를 10퍼센트의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자 청년들이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하는 일도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불공정한 경쟁이 판을 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직면한 불평등의 본질은 괜찮은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고도 성장기에 학벌 좋고 성공한 소수의 기성세대가 자신과 유사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불공정 경쟁을 하기 때문입니다.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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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분배를 이야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사회주의로 치부되면서 힘을 잃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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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단순히 사회권을 부여하는 것을 넘어 시민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시장과 가족의 역할도 고려해야 합니다. 복지국가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정의하면 복지국가의 역할은 단순히 사회적 위험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위험이 발생하는 영역에서 그 위험을 완화하는 것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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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독립할 수 있도록 국가가 헌신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존엄은 물론 가족원들 간의 유대도 지켜지지요.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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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의 정당 구조는 사회경제적 갈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 다양한 시민의 다양한 이해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이 만들어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규직 노동자,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는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중소상공인, 대기업, 여성 등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과 계급의 이해를 대표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만들지 못한 것이지요.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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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걸어야 할 정치개혁의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강한 비례대표제와 대통령 중심제가 공존하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정치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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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이 지구를 파괴하면서 만든 부도 개발도상국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복지국가가 국경 내에서의 부의 평등한 분배를 추구했던 분배 체계였다면, 현대화된 새로운 복지국가는 국경을 넘어 국가 간 불평등을 완화하는 분배 체계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개발도상국이 지구를 위태롭게 만들면서 발전했던 선진국의 뒤를 따르지 않고, 지구의 생태적 지속과 국가 발전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길입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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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가 더 나빠지도록 방조하는 사람입니다. 정치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복지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정치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사회 비전인 것입니다. 좋은 복지란 좋은 정치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365)
이상한 성공/윤홍식/한겨레출판 20210830 416쪽 20,000원
기적과도 같은 한국의 성공은 오히려 성공의 덫에 빠지는 최대의 역설이 됐습니다. 풍요로운 사회를 이뤘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희생과 양보를 바탕으로 한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불평등을 낮췄습니다. 공적 복지의 확대 없이 성공한 경험은 서로 연대하지 못하게 장벽을 쳤습니다. 복지를 확대하자고 요구하지도 않고, 분배를 얘기하면 빨갱이라고 합니다.
이상하게 성공해서 불평등한 복지국가가 되었습니다. 노동자가 자본을 대표하는 거대 정당에 투표하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하지 맙시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 한참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