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 지금의 의료 서비스가 계속되리라 믿는 당신에게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 한국의 의사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58.3명의 환자를 진료합니다(2019년 기준). (...) 놀랍게도 같은 해에 미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의사들은 하루에 고작 환자 8.1명 정도를 진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7)
  • 태움을 뚜렷하게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괴롭힘의 방식과 양태가 제각각이기도 하고, 외견상으로는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에게 '교육'을 하는 형태를 띠니 교육과 괴롭힘을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태움의 대략적인 유형은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데요, '불공정한 업무 분담, 꼬투리 잡기, 망신 주기, 뒷말, 없는 사람 취급' 등입니다. (...) 본인이 태움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61%에 달했습니다. (16)
  • 종합병원의 병동 간호사 1명이 하루에 담당하는 환자의 수는 대략 10.1명입니다(2019년 기준). 이렇게만 보면 적은 숫자인지 많은 숫자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한데, 해외의 간호사 1인당 환자 수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가 있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많은 주에서 간호사 : 환자 비율을 법으로 정해 놓고 있는데요, 뉴욕주는 일반적인 내과 병동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 4명 정도, 캘리포니아주는 간호사 1인당 환자 5명 정도를 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수간호사와 같은 관리 인력은 제외하고 실제 근무를 서는 인력만으로 잡은 것이니, 한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죠. (20)
  • 각자의 1인분을 하는 것으로도 벅찬데, 업무 역량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신규간호사가 구멍을 만들면 그 업무를 다른 간호사 혹은 교육 책임자인 본인이 져야 하니까요. 그 상황을 견디는 사람은 병원에 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병원 밖으로 밀려나는 게 '태움'이라는 현상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
  • 상당히 높은 업무 강도 및 교대근무제와 함께 젠더적 요소까지 더해지면,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간호사라는 직업을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는 거죠. 전체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의료 기관에 종사 중인 활동간호사의 비율이 50.6%(2019년 기준) 수준에 불과한 것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25)
  • 외과 수술은 사회·문화적 변화와도 무관한 꾸준한 수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수요는 꾸준히 많은데도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지속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하게 된 게 바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서 의사 업무의 일부를 대신 수행하는 간호사인 진료보조인력 (physician assistant, PA)입니다. (40)
  • 의사는 개별 환자를 최대한 짧게 진료하고, 짧아진 진료 시간으로 인해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환자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벌충하기 위해 다양한 검사를 처방함으로써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모아야만 합니다. 그런 결과들을 받아 최종 진단이 나오면 빠르게 약을 처방하고 다른 환자를 봐야만 하죠. 종합병원에서 의사의 대면 진료는 잠깐이지만,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고 몇 시간씩 병원 안을 떠돌아다니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묘한 냉대에 환자들도 불만이 많지만, 진료하는 의사들도 불만이 많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의 수익 구조가 그렇게 돼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을 뿐이죠. (50)
  • 종합병원에서는 의사 등의 전문적 인력이 인적 행위를 통해 얻는 수익보다 의료 기기를 이용하여 진단·검사를 하는 수익이 훨씬 크며, 운영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의료 기기 구매에 대해서는 회계적 특혜까지 주고 있죠. 종합병원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보단 새로운 장비를 계속 채우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지이고, 또 그래야만 가까스로 유지라도 되는 구조인 겁니다. (56)
  • 의사를 포함한 의료 인력 임금은 서울보다 지방이 훨씬 높습니다. 물론 의사의 경우에는 전문의인지 아닌지, 전문의라면 어떤 과를 전공했는지, 그리고 근무 형태는 어떻게 다른지에 따라 매우 달라지므로 구체적인 데이터를 소개하기는 여러모로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략 전공한 과가 같고 근무 형태가 유사하다고 했을 때, 서울에서의 임금보다 지방 광역시에서의 임금이 최소 2~2.5배 정도는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여성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약사의 경우, 같은 수도권 내에서도 강남-분당 지역의 임금과 그 외 지역의 임금이 1.5배 정도는 차이가 납니다. 지방의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 수준과 주택 가격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임금 격차는 그 이상으로 커지는데, 이런 임금 차가 꾸준히 유지되는 이유는 그럼에도 의료 인력들이 지방 근무를 꺼려서입니다. (95)
  • 실제로 2009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환자 1인이 평생 쓰는 의료비의 절반은 64~66세를 넘긴 노년 시기에 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삶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노년기에 내가 평생 쓰는 의료비의 절반이 집중된다는 거죠. (152)
  • 지방으로 갈수록, 그리고 도시가 아닌 읍·면 지역으로 갈수록 의료 접근성은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의사 수 자체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새로 배출된 의사들이 똑같이 서울에만 모여 있다면 의료 접근성 문제는 거의 개선되는 바가 없습니다. 숫자 자체도 문제이긴 하지만 의사가 지역별로 얼마나 고르게 나뉘어 진료를 보느냐가 의료 접근성 문제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주제란 거죠. (162)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박한슬/북트리거 20221020 184쪽 14,500원

의사 한 명이 하루 평균 환자 58.3명을 진료한다. 주요 선진국 의사들은 평균 8.1명을 진료한다. 종합병원 간호사가 하루에 담당하는 환자는 10.1명이다. 미국은 간호사 1인당 환자를 4~5명 정도를 돌보도록 규정하고 있다. 병원에는 의료진이 부족한 대신 검사 장비로 가득하다. 신규 간호사 60%는 태움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활동간호사는 50.6%이다. 의료 인력은 임금이 더 높아도 지방을 기피한다. 그래서 지방은 구인난에 허덕이고 서울에선 임금이 하락한다. 환자는 서울 병원으로 몰리고 지방 의료는 몰락하고 있다.

저자는 태움, 기피과, 진료보조인력, 진료는 짧아지고 검사는 늘어나는 문제점의 배경과 해법을 제안한다. 생산가능인구보다 노령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현시점에서 의료 정책에 대한 숙제를 풀지 못하면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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