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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 - 루이스 웨인의 웃기고 슬프고 이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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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만 해도 영국에서 고양이는 호감을 주는 반려동물이 아니었습니다. 루이스 웨인 Louis Wain 이 그린 고양이 그림이 인기를 얻기 전까지는요. 루이스 웨인은 1860년 8월 5일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뒤로 줄줄이 다섯 명의 여동생이 태어났습니다. 1877년부터 1880년까지 웨스턴 런던 예술학교에서 공부했고, 졸업 후 모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1880년 부친이 돌아가시자 루이스 웨인은 가장 노릇을 하게 됐습니다. 1881년 12월 10일 처음으로 루이스 웨인의 그림이 잡지에 수록됐습니다. 이듬해인 1982년 교사를 그만두고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스태프가 되어 전시회를 취재하며 기사를 쓰고 삽화를 그렸습니다. 1883년 누이동생들의 가정교사로 에밀리 리처드슨(Emily Marie Richardson, 1850~1887)이 왔습니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1884년 1월 30일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루이스 웨인는 스물세 살, 에밀리는 열 살이 더 많았습니다. 독립해 신혼집을 차렸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에밀리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침대에 갇히다시피 하며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루이스는 에밀리를 기쁘게 하려고 침대 곁에서 피터라는 새끼고양이를 스케치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평범한 삽화가였던 웨인은 피터를 대상으로 수많은 습작을 그렸습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사주인 윌리엄 잉그램 경(Sir. William Ingram)에게 고양이 그림 몇 점을 보여주자 그는 두어 점을 잡지에 실었습니다. 1886년 12월에 윌리엄 잉그램 경에게서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실을 삽화 의뢰를 받았습니다. 11일이 걸려 완성한 〈 새끼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A Kitten's Christmas Party 〉는 약 이백여 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했고, 곧바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고양이 화가라는 명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사반세기 동안 일감이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에밀리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불평등한 선진국 -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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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끝난 폐허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은 1960년 초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은 물론 북한에도 뒤지고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보다도 가난했지요. 하지만 지난 60년간의 성장은 누가 봐도 눈부셨습니다.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하지요. GDP는 421배 커졌고, 수출액과 정부 예산 규모는 1만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GDP 규모는 이제 전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고, 1인당 소득(GNI)도 서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입니다. 과학기술 투자액은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다음인 세계 5위입니다. (14) 2019년 수출액은 1960년 대비 1만 6,950배에 달합니다. 무서운 증가세입니다. 그 결과, 한국의 수출액 순위는 중국, 미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 다음인 6위입니다. 물론 수출이 느는 만큼 수입도 늘었지요. 2019년 기준 한국은 세계 9위의 수입국입니다. 수출과 수입을 합하면 전체 무역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습니다. (17) 우리나라 2019년 연구개발 투자는 정부와 민간을 합쳐서 총 89조 471억 원(764억 달러)입니다. 이는 OECD 국가 중 세계 5위이며, 국내 총생산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4.64%로 세계 2위입니다.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016년 이래 계속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 2019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의 1인당 GNI는 3,521만 원입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43,430달러로 전 세계 27위입니다. 일본, 이탈리아와 비슷하며 2017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의 95% 수준으로 2009년 89.1%에 비해 격차가 많이 줄었습니다. (...) 2021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 수준은 일본, 이탈리아, 뉴질랜드, 스페인과 비슷합니다. (23) 국민소득이 높아진 것은 나쁘지 않은 변화입니다. 하지만 선진국이라는 표현이 낙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선진국이 되기 이전에도 우리 사회에 많

이상한 성공 - 한국은 왜 불평등한 복지국가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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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습니다.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가장 가난한 개발도상국이 부유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사례는 한국이 처음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7) 세대 담론은 부와 특권이 세습되는 계급사회의 현실을 감추는 위험한 장막이 될 수 있어요. 지금 청년들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부가 대를 이어 세습되는 불평등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불평등의 사슬을 끊는 것은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대다수 기성세대를 적으로 돌리는 세대 간의 반목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한 특권 없는 사람들의 세대를 가로지르는 연대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부가 세습되는 새로운 신분사회니까요. (45) 전 세계에서 유명한 CEO 1,582명의 출생 순서를 조사한 연구 결과에서도 무려 43퍼센트가 첫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출생 순서에 따라 부모가 투여하는 자원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자녀의 역량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자란 형제들도 그럴 진데, 사회적 지위가 상이한 아이들의 성공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상식적인 결론 아닐까요. (52) 우리가 참 대단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사회문제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니까요. 실제로 한국은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GDP가 4만 불이 넘는 부유한 국가입니다. 동시에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 중 절반 가까이가 빈곤한 국가입니다. 부자 나라 대한민국에서 65세 이상 노인 중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이 무려 6만 6천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중 29퍼센트는 이미 80세가 넘은 초고령 노인입니다.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도 노인들의 월 평균 수입은 20만 원이 되지 않습니다. (67) 한국에서 대기업의 성장은 국민의 엄청

지금은 없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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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 정책에 청년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강력 반대하는 목소리나,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 대학생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턱이 없는 강의실로 바꾸기로 했다는 결정에 '역차별이다'라고 분노하는 목소리들에 이르면 아예 이런 질문을 전지고 싶어진다. 도대체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함'이란 어떤 의미인가? (25) 가짜뉴스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이해집단 간의 치열한 갈등이 정치라는 과정 속에서 원활하게 해소되지 못하니 집단들은 정치적 해결이 아닌 파워게임으로 이해를 관철시키려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워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갈등하는 상대방과의 대화와 타협은 고려되지 않고, 상대방을 위선적인 대상으로 매도하거나 여론으로부터 고립시켜 영향력을 잃도록 만들면 된다. 그런 점에서 가짜뉴스가 주로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거나 갈등 관계인 상대방이 여론의 비난에 부딪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53) 만 18세가 선거권을 갖게 되었으니 그에 맞춰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사후대책이 아니라, 의무교육 과정에 민주시민교육을 확대 편성함으로써 선거권을 더 하향시키겠다는 포부가 필요하다. (68) 선거를 민주주의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 선거 다음 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다. 유권자로서 우리는 단 한 표를 행사할 뿐이지만 시민으로서 우리는 더 많은 권리를 지닌다. 정치와 선거는 동의어가 아니다. (71) 언론은 자기 진영의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으니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뿌리고, 독자들은 기꺼이 그 기사들을 팔아준다. 오보는 그렇게 반복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해 독자로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 언론 탓만 하고 있기엔 오보가 가지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123) 전국금속노동조합에 속한 청년 노동자 261명이 지난 6월 30일에 "정규직화가

장애시민 불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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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던 내가, 극복을 성공의 요건으로 여기던 내가, 성공을 이기심의 결과로 여기던 내가, 이기심을 생존의 요소로 여기던 내가, 생존을 경쟁의 합리적 근거로 여기던 내가, 장애운동을 계기로 오랫동안 나를 지배하던 신념을 회의적으로 돌이켜보게 되었고,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는 삶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를 이토록 다른 차원으로 이끈 순간의 말들을 잊고 싶지 않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나를 '아차' 하게끔 한 연결과 연대의 풍경을 꼼꼼히 새겨두었다. (6)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불화'가 정치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민주주의 사회의 규칙이라 여겨지는 '분배를 목표로 한 합의'는 정치(politics)가 아니라 치안(police)을 위한 활동이라는 것이 그의 주된 주장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그저 자원을 나눠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간 존재를 부정당했던 '몫 없는 자들'이 몫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한다. 목소리 없는 이들, 몫 없는 이들이 몫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화는 민주주의의 위협 요소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번영을 견인하는 힘이다. (14) "편의시설을 바꾸는 데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장애인에게 계단은 계단이 아닙니다." 계단은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차별의 단면이었다. 그는 돈키호테 같은 대답을 이어갔다. 돈키호테가 풍치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듯, 그는 계단을 보면 계단으로 향했고, 계단이라는 괴물을 무찌르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를 꿈꿨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계단과 문턱에 대드는 활동에 그토록 진심을 다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계단은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 같은 거예요, 그건." (27) 그는 장애운동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여기에 모인 장애인은

오늘 시작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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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난은 플래시 포워드다. 우리에게 미래 세계를 잠깐 보여준 것이다. '잠깐'이라는 표현은 코로나 백신이 머지않아 개발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어쨌건 코로나19 재난은 '미래에 재난이 어떻게 일어나고, 재난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강요 받고,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9) 너른 정원에 독초가 한 포기 자리 잡았다. 독초는 매일 두 배로 늘어난다. 정원의 주인은 게으름을 부리면서 정원의 절반이 독초로 채워지면 독초를 뽑기로 결정하였다. 이 주인에게 독초를 뽑을 수 있는 날은 며칠이나 남아 있을까? 단 하루다. 우리는 지구 멸망까지 단 하루가 남았을 때, 재난을 막는 행동을 하기로 겨우 합의하게 될지 모른다. (18) 불평등이 줄어들면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활동 수준 자체가 낮아진다. 예를 들어 불평등한 경제에서는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여도 가난한 사람이 굶을 수 있지만, 평등한 경제에서는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만 되어도 굶지 않을 수 있다. (33) 탄소세 도입에 따른 정치적 저항은 탄소세 수입을 탄소 기본소득으로 나누어주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 탄소세와 결합된 탄소 기본소득은 전 국민의 2/3를,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더 많은 순 수혜자로 만든다. 지구를 살리면서, 돈까지 받는 정책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42) 토지 보유세와 토지 기본소득은 불로소득을 걷어내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며, 불평등을 줄여 한국 경제에 오랜 부담이었던 큰 숙제를 풀어줄 수 있다. (...) 부동산 불로소득은 혁신의 동기를 잠식한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인 나라에서 혁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혁신 정책은, 혁신 없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부동산 불로소득 같은 것들을 없애는 것이다. (55) 코로나19 재난은 미리 준비하는 것과 늦게 준비하는 것의 차이가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후재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와 혁명의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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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는 1891년 1월 22일 이탈리아의 큰 섬 사르디니아의 알레스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에 속해 있긴 해도 사르디니아는 긴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에서 장화의 발꿈치만치 서쪽으로 떨어져있는, 변방 중에서도 변방의 섬이다. (5) 그람시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발전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발발한다고 말하였으나 후진 농업국가인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졌으니 러시아 혁명은 마르크스의 『자본』의 주장에 거스르는 혁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이론이 틀린 것인가? 아니면 러시아 혁명이 제대로 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가? 그람시는 이 두 의문을 모두 잠재우며 이를 오히려 마르크스 사상의 정수를 드러내 보인 역사적인 현실로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4) 토리노의 『전진』 본부에 있다가 그람시의 사무실로 옮겨온 사람들은 1919년 5월 1일 타스카, 톨리아티, 테라치니 등과 '사회주의 문화비평' 주간지로 『신질서 L'Ordine Nuovo 』를 창간했다. 이 저널은 두 가지 이유로 이탈리아 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하나는 『신질서』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조만간 이탈리아 공산당의 지도적인 핵심인사들이 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신문이 이탈리아의 소비에트, 즉 공장평의회를 조직하기 위한 매체가 되어 이탈리아 노동운동에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18) 그람시에게 흔히 따라붙는 호칭 중 하나가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건자'이다. 물론 이 호칭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가 공산당 창당을 처음부터 주창하거나 고집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람시는 사회당을 해체하고 공산당을 새롭게 창당하는 것에 내켜하지 않았으며, 위에서 아래로 건설하는 방식에도 회의적이었다. 게다가 보르디가가 주도하는 공산당 계획은 당과 대중의 관계나 공장 노동자조직 같은 신질서 그룹의 의제들과 전혀 부합하지 않고, 오로지 규율과 중앙집중만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람시는 당

우주에 투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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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패권을 잡기 위해 다퉜고, 이 체제 경쟁에서 나온 우주 산업 발전의 시대를 올드 스페이스라고 한다. 이 시기 우주는 새로운 과학 기술을 먼저 선보이고 과시하기 위한 장소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21) 지구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한창이듯, 우주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달의 앞면에는 미국 성조기가, 달의 뒷면엔 중국의 오성홍기가 나부끼고 있다. 하지만 이미 기술력은 중국이 한 수 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6) 페제 경쟁의 산물이었던 올드 스페이스는 민간 기업이 참여해 수익성으로 연결되는 뉴 스페이스로 변하고 있다. 더 이상 무의미하게 막대한 비용을 우주에 지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민간 기업은 체제 경쟁에는 큰 관심이 없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만큼 수익성 있는 사업을 통한 부의 창출이 목표다. 우주 경쟁은 이제 우주에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30)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 두 거물은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이끄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둘은 지구에서 벌이는 사업으로는 딱히 부딪힐 일이 없다. 각각 전기차와 온라인 쇼핑으로 주력 사업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치열한 선의의 경쟁자다. (37)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설립했지만 일론 머스크는 정신없이 달려온 토끼, 제프 베조스는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움직이는 거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블루오리진의 모토는 '한 걸음씩 담대하게'였고, 거북이는 블루오리진의 마스코트였다. (38) 이렇게 라이벌의 존재는 서로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다. 우주를 사랑한 두 명의 천재,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의 경쟁이 없었다면 민간 기업이 우주 산업에 참여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가 없었을 수도 있다. 둘의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한 명은 계획을 세우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고, 다른 한 명은 조용히 일을 진행하는

20세기와 21세기 초의 이데올로기 장기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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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21세기 초의 이데올로기 장기파동 우리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시대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이 시대에 다양한 유럽 나라들에서는 자유방임시장 개인주의라는 사상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진영이 지배했고, 보수주의 우파는 대부분 수세적인 입장이었다. 이 시대의 주인 기표는 자유였다. 자유주의 시대는 세계대전과 세계공황이라는 재앙으로 끝을 맺었고, 그 자리는 정의라는 주인 기표를 가진 자유주의의 오랜 적수인 사회주의가 곧 서구에서는 민주적 사회주의가, 동구에서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가 차지했다. 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해, 붉은 러시아는 국가 중심적이고 매우 억압적인 일국 사회주의의 종주국이 됐다. 동시에, 루스벨트는 자신의 진보적 뉴딜을 고안 중이었는데, 이 같은 뉴딜은 (프랑스에서 더 짧은 기간 동안 레옹 블럼의 인민전선 내각이 그랬듯이) 친노동정책과 사회민주주의적 공공지출에 우선순위를 뒀다. 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지면서, 사회주의의 발흥에 대한 우익의 반작용으로 파시스트 민족주의가 출현했는데, 이들은 노동계급운동 담론의 일부를 전유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사회주의가 철의 장막 양쪽에서 발전했다.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나타난 계급타협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사회민주주의적 협약형태를 띠었고, 이른바 영광의 30년, 곧 1945년과 1975년 사이 자본주의가 경험한 경제성장의 황금시대로 이어졌다. 소련과 그 위성국에서 이 같은 흐름은 공산주의 계획경제와 사회복지정책으로 표출됐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비롯한 잇따른 위기들은 사회민주주의 시대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이 같은 국면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 질서가 탄생할 수 있는 공간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이후 헤게모니 싸움에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칼 포퍼, 밀턴 프리드먼 같은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은 신자유주의가 승리했다. 이런 사상가들은 사회주의 세계를 겨냥해 낭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브랜드의 보수정치인을 통해 신속하게 이행됐다.

플라스틱 바다 - 지구의 바다를 점령한 인간의 창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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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여름. 하와이에서 캘리포니아로 항해하던 찰스 무어는 그림 같은 바다에 이상한 덩어리와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있는 걸 봤다. '낮이고 밤이고 하루에 몇 번을 내다봐도 플라스틱 조각이 물 위로 떴다 잠겼다(13)'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의 중간 지점이었다. 머지않아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the Great Pacific Garbage Patch)라고 불리게' 되지만 대형 잔해 위에 플라스틱 부스러기로 가볍게 양념을 친 '묽은 플라스틱 수프(14)'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상황이었다. 1997년의 항해 때 본 것은 '전체 그림으로 치면 겨우 조그만 점 하나에 불과한 것 같았다(74)'. 찰스 무어는 공식 탐사팀을 꾸리고 1999년 8월 15일에 태평양 환류(還流 Gyre)가 무풍지대에 만든 쓰레기 섬으로 떠났다. '지독한 쓰레기들을 많이 수집했다. 그물과 로프 더미는 물론이고 화학 물질이 들었던 드럼통, 물러진 표백제 병, 일본식 그물 부자(浮子) 여러 개, 신발창을 오려내고 남은 발표 고무 시트, 조리용 사워크림 통도 있었다(109)'. '플라스틱은 마치 육상선수 같다. 종종걸음을 치다가, 하늘을 날고, 헤엄도 친다. 여권 없이도 국경을 건너 어디든 간다. 말 그대로 불법 체류자다(88)'. 무어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쓰레기 문제가 너무나 속상했던 것 외에는 어떤 특별한 동기도 없었(236)'지만, 환류 탐사에 관한 논문을 쓰며 단편 영화도 찍었다. '2001년 12월. 1999년 환류 탐사로부터 1년 반이 지났고, 운명의 첫 번째 환류항해로부터 3년 반이 지났다. 『해양 오염 회보』의 제42권 12월 호가 도착했다. 이렇게 씌어 있었다. "북태평양 중앙 환류에서 플라스틱과 플랑크톤 비교". 이 간결한 다섯 쪽짜리 연구가 그간의 노력을 증명하고 있었다(238)'. 바다에 플라스틱이 있는

일기 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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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엔 "국경이 없"지만 "우편번호가 건강 상태를 결정"한다. 우리는 그 말을 얼른 알아듣는다. (15) 9월에 책을 낸 이후 인터뷰 때문에 사람을 서너번 만났는데, 지난 일년간 뭘하며 지냈느냐는 질문을 매번 받았다. 2020년에 저는 창밖을 보며 지냈습니다. (26) 2020년의 눈사람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29) 봄비 내릴 때 책상 앞에 앉았는데 소설 한편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낙엽이 떨어지는 때,라는 패턴으로 시간이 흐르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 살다보니 나이를 띄엄띄엄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32)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명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조 構造 되는 것이다. (34) 사람들이 전염을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내가 병에 걸리는 경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내가 매개가 되어 남을 병에 걸리게 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고 믿는다. 이 걱정의 바탕은 자기가 남에게 병을 옮긴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고 우애일 수도 있다. (37) 타인의 삶과 죽음을 자기 삶의 지표로 삼는 일에 나는 반대하고 있지만, 어떤 삶과 죽음은 분명 신호이자 메시지이고 그것을 신호이며 메시지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삶은 늘 있다. 이때 발신자는 살거나 죽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속한 사회다. (74)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이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76) 추운 곳에서는 아 씨발 춥다고 웅크리고 더운 곳에서는 씨발 덥다고 웅크린 채로 그런 장소를 이미 일상으로 겪는 삶과 그 삶을 그런 일상으로 내몬 사람들이며 구조 構造 를 생각했다. (100)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가라앉

공정감각 - 〈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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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맥없이 지워지고 '사실'이 근거 없이 조롱과 폄훼를 당하는 것. 바로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점 중 하나다. 거짓일지라도 혹하게 할 만한 선정적 소문과 풍문, '카더라', 맥락을 삭제해 그럴듯하게 이어 붙인 가짜뉴스. 거짓, 가짜, 짜깁기로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동원하고 물리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권력과 권위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현실. 나는 이것을 '반지성주의'라 부르기로 했다. 반지성주의는 '아는 것이 힘(권력 혹은 권위)'이 아니라 전혀 모르거나 알려 하지도 않고 알면서도 비틀어버린 '거짓과 가짜가 진실과 사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힘'이 팽배해진 상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힘을 만들어내며 표심을 얻는 정치인, 돈을 버는 인터넷 인플루언서, 커뮤니티 내 관심의 중심에 선 '관종'이 적지 않다. 동시에 이들을 추종하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상태에 놓인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아 보인다. 진실과 진짜가 아닌, 거짓과 가짜가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대학은, 대학생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14)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라는 개념으로 소수자가 이미 존재하거나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에서 만들어지는(구성되는)'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 권리의무 역학에서 소수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의무에 대한 부담은 똑같지만 권리 향유에서 제약, 차별, 부당함을 '당하는' 존재라고 나는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한국보다 인권 감수성이 높은 사회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이동권에 제약이 없고 차별받지 않으므로 이동에서 부당한 경험을 현저히 덜 한다.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이동권이라는 권리를 제약 없이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그러므로 소수자가 아닐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한국에서는 소수자가 '된

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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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merit 은 개인이 갖고 있는 특징이지만, 능력주의 meritocracy 는 사회가 갖고 있는 특징이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 시스템을 뜻한다. 능력주의라는 말은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 Michael Young 이 자신의 풍자 소설 『 능력주의의 출현 The Rise of the Meritocracy 』(1958년)에서 처음 만들어낸 신조어로, 그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지능 지수와 시험 결과, 개인의 능력만을 토대로 운용되는 사회가 실현되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했다. (12)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온갖 특권을 성공적으로 물려줄수록 자녀들의 삶의 결과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상속에 의해 결정된다. (23) 상속주의와 능력주의는 분배의 〈제로섬 게임〉이다. 둘 중 하나가 많아지면 나머지 하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은 개인의 능력이 소득과 부의 분배에 상속만큼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즉, 상속주의가 능력주의를 앞서고 있다. (38)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는 학교는 사회적, 문화적 재생산의 기구, 즉 〈사회적 계층을 재생산하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56) 교육 기회의 평등은 능력주의 시스템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교육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 적은 거의 없다. 가족의 사회경제저 지위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특혜들은 교육적인 성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학교는 사회에 존재하는 기존의 불평등을 오히려 더 반영하고 심화시킨다. (80)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 이란 근본적으로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는가, 즉 당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의 가치를 뜻한다. (85) 또 하나의 비능력적 요인인 문화적 자본 cultural capital 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구성원으로 온전히 인정받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모든 것, 즉 그 집단의 규범과 가치관, 신념, 스타일, 매너, 학위, 여가 활동,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한 지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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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누구라도 '위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영양가 없는 수다꾼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위기라는 단어가 워낙 엄밀하지 못하게 자주 회자되다 보니 이제는 말 자체가 진부해진 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진단컨대 지금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우리가 처한 위기의 특징을 정확히 밝히고 위기의 독특한 역학 dynamics 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교착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정치적 재편성 political realignment 을 통해 사회 변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3) 헤게모니란 지배계급이 자신의 세계관을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상정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과정을 가리키는 그람시의 개념이다. 조직 차원에서 헤게모니의 대응물은 헤게모니 블록 bloc 이다. 헤게모니 블록이란 지배계급이 모은 이질적인 사회 세력들의 연합이며, 지배계급은 이 연합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확고히 한다. 만약 피지배계급이 이 질서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더 설득력 있는 새로운 상식, 즉 대항 헤게모니 counterhegemony 를 구축해야 하며, 더 강력하고 새로운 정치적 동맹, 즉 대항 헤게모니 블록을 구성해내야 한다. (16) 적어도 20세기 중반 이래 미국과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는 옮음 right 과 정의 justice 의 서로 다른 두 측면을 결합함으로써 형성되었다. 한 측면은 분배 distribution 에 초점을 맞췄고, 다른 측면은 인정 recognition 에 초점을 맞췄다. 분배 측면은 사회가 나눌 수 있는 여러 재화, 특히 소득을 어떻게 할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표명한다. 즉 분배 측면은 사회의 경제구조를 다루며, 간접적인 방식이긴 해도 계급 분열의 쟁점을 다룬다. 반면 인정 측면은 사회가 존중과 존경을, 구성원이 되는 것과 소속감의 도덕적 표지를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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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가인 김남희 작가는 '모험심이라고는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고, 잠귀가 밝아 잠자리를 가리는데다가, 안 먹는 음식이 많고,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성격(240)'이랍니다. 그런데도 여덟 살 때 혼자 기차를 타고 포항에서 대구로 떠난 것이 첫 여행이었답니다. 서른넷에 회사를 그만두고 배낭을 꾸린 후 20여 년이 되도록 유목민으로 살았습니다. 책은 코로나19가 창궐해서 여행하지 않는 여행작가가 됐을 때 얘기입니다. 싱글, 여성, 여행작가. 근사한 조합이지만 '자유로움은 경제적 불안함과 동의어'입니다. '외로움과 불안함을 반반씩 섞어 자유 위에 덧바른 삶(28)'입니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췄지만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한 매일 산책을 하며, 꾸준히 달리기를 하며'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겠지만 멈추지 않(51)'았습니다. 방과후 산책단, 방과후 글쓰기단, 에어앤비를 하며 버티다 보니 타인의 호의가 쌓였습니다. 통장이 텅장으로 변했지만 전염병에 맞서는 연대의 백신 같은 택배 상자가 배송되는 호의가 이어졌습니다.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포에 작은 마음을 모아 맞서는 사람들'의 '우아한 연대(203)'였습니다. 덕분에 전생에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굶기를 밥먹듯이 하고 자(65)'라서 냉장고를 포기하지 않았고, '도예가 밑에서 뼈빠지게 일만 하다 제 그릇 하나 구워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79)'난 것 같아 사 모은 그릇으로 밥상을 차렸습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은수저로 밥을 먹는 사람(40)'도 됐습니다. 서른을 넘긴 후 나는 늘 혼자 살아왔는데, 정말로 혼자였던 날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매 순간을 타인의 친절에 기대어 살아왔다. 지친 무릎이 꺾이려고 할 때마다 일으켜세워주던 손들이 있었다. (8) 코로나 이후 집에 갇혔던 시간 동안 나는

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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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1인 가구, 홀로 나이 들어가는 '에이징 솔로 Aging Solo'가 대폭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혼자 사는 게 과도기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기본값인 사람들이 나이 듦이라는 과제를 함께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노인 1인 가구는 노년기에 접어든 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혼자인 상태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생애 전환을 겪게 될 대규모 집단이 등장했다. (11) 세상이 비혼인 중년을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비참해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생애 과제들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리라 예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성숙해지고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은 애초에 결혼 여부와 상관 없는 일이다. (12) 혼자 사는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한데, 이 책에서 말하는 에이징 솔로는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해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중년을 뜻한다. 대다수가 1인 가구지만, 친구 등 동거인이 있는 경우에도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비혼의 중년은 에이징 솔로에 포함했다. (13)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1인 가구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혼삶'을 지속적인 삶의 방식으로 채택한 에이징 솔로 여성이 왜 아직도 앞에서 인용한 연구 참여자의 설명처럼 '폭력' '무게감'이 실린 눈초리를 받 는가 하는 점이다. 전통적 가족의 모습에서 이탈했다고 해서 왜 '남편도, 자식도 없는' 결핍의 인생이라고 바라보는 걸까? 왜 외롭고 힘들 거라고만 짐작하는 걸까? (39) 비혼을 정치적 견해 표현으로 여기는 사람이든, 자신에게 알맞은 삶의 방법을 고르다 보니 어쩌다 비혼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든, 그 선택의 바탕에는 제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묶여 있지 않을 때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통된 가치관이 있다. 도시에서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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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무렵 폴은 혼자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로 가서 봉투에 사탕을 그득하게 담고 은박지로 잘 싼 체리 씨 여섯 개를 내밀었다. 위그든 씨는 돈이 조금 남는다며 거스름돈으로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꺼내 주었다. 폴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열대어 가게를 운영하던 어느 날. 대여섯 살 된 남매가 물고기를 사러 왔다. 아이들은 몇 가지 물고기를 고르고 5센트짜리 동전 두 개와 10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폴은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서 맡았던 사탕 향기가 향수(鄕愁)가 되어 콧잔등을 스쳤다. 폴은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거스름돈으로 주었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서 나는 박하사탕 향기와 위그든 씨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인 벤슨 선생님을 짝사랑하게 된 폴은 선생님 생일에 야생 식물로 만든 화환을 만들어 드렸다. 선생님은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파티를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벤슨 선생님은 결근했다. 머루랑 달래 등 야생 열매와 독이 있는 예쁜 담쟁이 잎으로 만든 화환 때문에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폴은 10일 동안 정학 처분을 받았다. 벤슨 선생님의 병실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붕대로 겨우 눈만 보일 정도로 얼굴을 감고 있었다. 선생님은 폴을 원망하거나 탓하기는커녕 특별한 선물을 해준 폴에게 말했다. 아들을 낳으면 꼭 너처럼 키우겠다고. 동네에 전화기가 있는 집이 드물었던 일곱 살 때 집에 참나무로 만든 커다란 전화기가 있었다. 신기한 상자에는 '안내를 부탁합니다'라는 똑똑한 요정이 살았다. 혼자서 알아낼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요정에게 전화를 걸면 다 해결해주었다. 어느 날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전화하자 요정은 "그 새가 노래 부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별생각 없이 전화기를 들고 무의식적으로 "안내를 부탁합니다."라고 하자 요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샐리라는 걸 알았고,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즐거운 데이트를

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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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수호랑이는 앞발 볼의 너비가 보통 10.5~13센티미터이다. 시베리아호랑이 최대의 발자국인 으뜸 수호랑이를 왕대(王大)라 부른다. 이마에는 임금 王 자, 등줄기로 넘어가는 뒷덜미에는 큰 大 자가 뚜렷한 가장 크고 강한 수호랑이다. 왕대들은 2,000제곱킬로미터(지리산 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473제곱킬로미터) 이상의 광대한 영역을 돌아다닌다. 꼬리는 앞발 볼의 너비가 13.1센티미터로 엄청난 크기인 왕대다. 소금절벽에서 꼬리로 물모기를 쫓으며 사냥을 하려고 잔뜩 웅크린 모습을 처음 보면서 '꼬리'라고 불렀다. 꼬리는 왕대였지만 눈빛과 몸짓에서 세월이 묻어나는 전성기를 지난 늙은 왕대다. 꼬리는 사냥에 자신감이 부족해서 잡을 수 있을 때 많이 잡아놓으려는 생각, 탐욕으로 가축을 습격하기도 했다. 꼬리는 사람보다 굶주림이 무서워 개를 잡았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개 다섯 마리를 먹어도 멧돼지 한 마리만도 못하다. 늙는다는 것도 불완전했고 늙어서 스스로 생활해야 하는 것도 불완전했다. 꼬리에게 끌리는 것은 완전한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 대한 연민이었다. 꼬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수호랑이다. 꼬리는 야생에 있고 나는 문명에 있기 때문에 꼬리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식은 모르는 척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다 끝내 마을 건초창고에서 갇힌 꼬리를 만났다. 폭설과 혹한에 먹이감이 부족해 마을로 내려왔다 건초창고에 갇히게 된 것이다. 결코 만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오래전 헤어진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나 늙고 시든 얼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식인호랑이라는 누명을 벗기려고 돈을 건네주고 마취를 하여 마을을 벗어나 풀어줬다. 꼬리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고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꼬리가 사라진 지 14개월 후, 양지바른 바위굴 입구에서 엎드려 죽은 호랑이 주검을 발견했다. 꼬리였다. 27년의 추적과 20,000시간의 잠복으로 시베리아 호랑이를 1500시간 넘게 영상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 - 대전환 시대, 한국 복지국가의 새판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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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구조화되어가고 있는 격차는 개천에서 태어난 용의 씨를 말리고 있는 수준이다. (43) 불평등과 불공정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대안과 희망이 부재한 현재적 조건은 결국 이들을 높은 수준의 울분으로 몰아넣는다. 앞서 제시한 불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에 대해 아주 높은 수준의 울분을 보이고 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울분이 높은 수준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7)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의 전형적인 양상인 '격차, 장벽, 불안'은 더욱 증폭될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증폭될 것인가? (...) 현재의 도-농간, 수도권-비수도권 간의 격차 역시 경제사회적 격차가 투영되는 한편 인구의 절벽 현상과 맞물려 더욱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재의 격차사회는 '초격차사회'로 변화될 것이다. (...) 우리 사회의 소득과 자산, 교육의 불평등이 낳은 장벽은 미래에 이 불평등한 구조가 초격차사회를 낳는 구조로 더욱 공고화될 경우 이제 장벽을 넘어 '단절'의 사회가 될 것이다. (...)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각종 자연적, 사회적 재난 앞에서 단순히 불안함을 넘어 '공포'의 단계를 접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66) 자본주의경제와 주택 체제 간의 연관성을 중요시하는 입장들은 주택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자본의 하나이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통해 탈상품화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고 봤다. 20세기에 대부분의 발전된 자본주의사회에서 주택은 '상품화→탈상품화→재상품화'의 방향으로 변해왔고, 여기서 탈상품화 단계는 제2차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사회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국가의 힘과 공공 부문이 팽창했던 예외적인 시대였다는 것이다. (87) 1987년 민주화 이후 권위주의 세력과 보수야당이 합의한 소선구제와 다수득표제의 공고화는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높이는

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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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우리에게는 우리 시대에 부합하는 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위기의 개념들이 별로 없다. 나는 이런 개념의 하나로 '식인 자본주의'를 주창한다. (30) 착취와 수탈 모두 축적에 기여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착취는 자유 계약에 따른 교환으로 위장한 채 가치를 자본에 이전시킨다. 즉, 노동자는 노동력 사용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자본은 '잉여노동시간'을 전유하는 한편 '필요노동시간'만큼만 급여를 지불한다. 반면에 수탈의 경우에는 자본가가 타인의 자산을 (대가를 거의 혹은 전혀 지불하지 않은 채) 폭력적으로 징발하는 쪽을 선호하기에 이러한 온갖 세심함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즉 강제 노동, 토지, 광물, 에너지를 기업 활동에 몰아줌으로써 기업의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 늘린다. 이렇듯 수탈과 착취는 서로를 배제하기는커녕 손잡고 함께 간다. (51) 자본주의가 경제적 시스템도 아니고 윤리적 삶의 사물화된 형태도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본주의를 '제도화된 사회 질서an institutionalized societal order'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이해라는 게 나의 답이다. 이를테면 봉건제 같은 하나의 사회 질서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58) '수탈'이 자본주의에 구조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정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앞장에서 본 대로, 수탈은 다른 수단을 통한 축적이다. 즉, 착취와는 다른 방식을 통한 축적이다.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 관계 대신 수탈은 인간 역량과 자연 자원을 징발하여 자본 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징발은 신세계 노예제에서 그랬듯이 뻔뻔스럽고 폭력적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의 약탈적 대출과 담보물 압류에서 그렇듯이 상거래라는 베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또 수탈당하는 주체는 자본주의 주변부의 농촌이나 토착민 공동체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중심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