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혹은 부록

소금창고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 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내 나이 딱 마흔이 되는 날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게 남은 날이기도 하다.
공자님은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 하셨고
어느 시인은 부록처럼 남은 세월을 덤으로 살아가는 기분이라고도 했다.
나는 괜찮은 별책부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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