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이 좋다

나는 마흔이 좋다
불혹의 나이가 그런 모양이다. 아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아들을 통해 나의 아버지를 돌아보는 나이가 불혹인 모양이다. (96)

어쨌거나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보란 듯이 잘 먹고 잘살았는지 이야기할 순서인 것 같은데 임금 피크제라는 것을 갖고 설명해 보면 어떨까 싶다. 나이나 경력이 최고 수준에 도달한 후 일정 단계를 넘으면 다시 임금이 인하되면서 일자리를 보장받는 똑똑한 제도 말이다. 개인의 수입이나 재산에도 이런 개념을 적용하면 나의 경우도 재산상의 피크를 지나 이제는 하강곡선을 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얼마 안 되는 재산이나마 까먹고 있다는 얘기다. (126)

외국계 회사에 다닐 때 내가 모시던 영국인 사장은 늘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나오고 또 그만큼 일찍 퇴근하곤 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아침 시간에 집에 있어봐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집안일을 도울 수도 없을 뿐더러 또한 일찍 출근해야 어느 직원이 부지런한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고, 퇴근을 서둘러 하는 이유는 집에 가서 할 일이 많다는 것과 사장이 자리에 없어야 혹 일이 있어 빨리 퇴근하려는 부하 직원들이 눈치 안 보고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정과 회사 두 분야를 고루 배려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148)

우리 사회가 너무 빨리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후배들과 우리는 전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단칸방에서 대여섯 식구가 함께 생활하거나 국가가 두발과 복장까지 관리하던 사회에서 자라던 우리들과 80년대에 태어난 후배들이, 또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50대 선배들이 서로를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처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선배들을 보면서 가책을 느끼고 후배들을 보면서 낯설어하는 일이 우리 세대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늘 이렇게 이어져오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어느 누군가는 낯설어하면서 말이다. (198)

그런 반성 끝에 이 나이는 한없이 쑥쓰러운 것이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강팀을 만나 전반전은 1:0으로 끝났고, 후반전이 시작된 지 10여 분 경과한 시점이 이 나이다. 동점이라도 만들 수 있을까 불안한 나이다. 어렵게 동점이라도 만든다면 '등'의 땀이라도 닦을 최후의 여유라도 주어질 것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설령 2:0으로 끝난들 어떠랴. 나는 당당히 이 시합에 출전했고, 휘슬이 울릴 때까지 열심히 뛰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리라. 더 이상 인생의 승패에 매달리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이 시합을 마치는 것, 그뿐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시합의 당당한 주전선수 아니었던가? (241)

나는 마흔이 좋다/한재희 등/마고북스 20070409 254쪽 9,800원

불혹은 부록. 제법 괜찮은 특별부록이 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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