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c, 슬픈 시대와 엮이다
1.
김재박 감독이 한국화장품에서 야구를 하던 시절. 코리언 리그에서 7관왕을 하자 엄마 뱃속에서 야구를 배워 나왔던 놈이라는 시기 어린 비아냥을 들었던 1977년에 나는 국민학생이었습니다. 그때 다짐했습니다. 아들을 나면 박재김이라고 짓겠다고.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개구리 번트를 대며 동점을 만들었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박재김 엄마를 언능 찾겠노라고. 김재박 선수와 나는 '박'이라는 한 단어로 데자뷰 하는 관계였습니다.
2.
2명박이라는 양반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오년마다 하는 기대를 했습니다. 전과 14범이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며, 그래 당신만은 썩 괜찮은 대통령으로 기억하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닷새 만에 금이 가더니 오십일이 가기 전에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3.
난 박c입니다. 그래서 지금 박가라는 게 서글퍼집니다. 자식을 낳으면 박명이로 지으라고 농반진반 권할 일이 개구리 겨드랑이에 털 날 확률보다 적어 슬프고 또 슬퍼집니다. 2명박과 나는 '박'이라는 한 단어로 엮이게 돼 기분이 참말로 더럽습니다. 그 악연이 일천삼백오십팔일 남았습니다. 현재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