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6.25 전쟁은 지난 세기 냉전시대의 서막을 연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목격할 수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중공군 통역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 최고 권력자 모택동 주석의 큰아들 모안영.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된 상황. 한참 신혼에 젖어 있던 모안용에게 전쟁 참여를 권유한 이는 바로 아버지 모택동이었다. "내 아들이 가지 않으면 누구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모안용은 6.25 전쟁에 참전한 지 한 달여 만에 평안북도에서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전사하고 만다. 당시 중공군 수뇌부는 최고 권력자의 큰아들이었던 모안용의 시신을 본국으로 후송하려고 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중공군의 관례대로 다른 인민군과 함께 묻히는 것이 도리라며 거절한다. "내 아들만 데려오면 다른 아들들은 어찌하느냐. 내 아들도 조선에 묻어라." 결국 모안용의 유해는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에 안장된다.

로마의 귀족층에서 시작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는 훗날 서구 사회 지도층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됐다. 제2차 대전 때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당시 공주 신분) 수송부대 하사관으로 군복무.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6.25 전쟁 당시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천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미국 현역 장군들의 아들들. 초대 미8군 사령관 월튼 워커 장군의 외아들 샘 워커 육군 대위 등 장군의 아들 142명 6.25 전쟁에 참전.

미국 2차 대전의 영웅이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아이젠하워도 미3사단 최전방 대대장으로 전투를 하게 됐다. 아들이 참전의사를 밝혔을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은 예외였다. 아들은 자신의 한국전 참전을 반대하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고개를 저은 아버지.
  • 네가 전사하면 우리 가족의 비극으로 남게 되지만 네가 포로가 될 경우, 전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아들이 고집을 꺾지 않자 아버지는 조건부 허락을 해준다.
  • 만에 하나 포로로 붙잡히면 자결토록 하라.
결국 아들 존은 아버지 아이젠하워에게 자결 각서를 써주고 한국 전선으로 떠난다.

전쟁의 참혹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고 참전을 결정한 대통령의 아들을 비롯한 142명 장군의 아들들. 그리고 그 치열한 전장에서 자신의 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배치할 수 있었음에도 생과 사가 엇갈리는 최전선으로 배치한 아버지들.

장군의 아들 142명 중 사망, 실종, 중상자 총35명. 일반 군인들 전사율 8%, 장군의 아들 전사율 25%.

1952년 4월 4일 오전 10시 30분. 아들의 실종을 보고받은 미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명령.
  • 지미 밴 플리트 2세 공군 중위에 대한 수색작업을 즉시 중단하라. 적지에서의 수색작업은 너무 무모하다.
1952년 4월 4일 미공군중위 지미 밴 플리트 2세 한국에서 실종.
그해 부활절 밴 플리트 장군이 한국전쟁에서 전사 혹은 실종된 군인 가족에게 보낸 편지.

저는 모든 부모님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신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사람보다 위대한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강원민방 G1에서 방영하는 DMZ 스토리 중 〈부자(父子)의 전쟁〉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접어두더라도 비상식이 상식으로 둔갑해 판을 치는 지금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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