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철새는 따로 집이 없다. 날마다 도착하는 그 모든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을 알아채고 따라하는 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누구나 그럴 듯한 집 한채 장만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겠지만, 바로 이 어처구니없는 욕망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고 말 것인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텃새처럼, 아니 이미 새가 아닌 닭처럼 철망 속의 둥지에 깃들어 살 것이냐, 철새처럼 풍찬노숙의 길을 갈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였다. 어차피 집과 집을 이으면 길이 되고 그 길의 마지막 집은 무덤이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 집이라는 해괴한 물건(?)을 포기했다. 버렸다. 패대기쳤다. 이 세상의 모든 집을 안식처가 아니라 과정의 길로 만들고 싶었다. (150)

거주라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투전판으로 변한 집. 크던 작던 우리의 욕망이 유착됐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집으로 신분과 계급을 나눕니다. 어디 사느냐는 물음으로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이런 시대에 철새처럼 사는 이는 신기함을 넘어 도인의 경지로 보입니다. 경외심이 듭니다. 닮고 싶습니다.

지리산 낙장불입 시인 이원규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합니다. 죽어가는 4대강이 있어 슬프지만 그럴수록 향기나는 사람들 때문에 살 만한 곳이라고 합니다. '집과 집을 이으면 길'이 아니라 '길이 곧 집'이었다고 합니다.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이원규/오픈하우스 20110909 320쪽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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