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아파트

너무 더워 그늘을 찾던 압구정 아무개 아파트 정문에는 수박장수가 있었다. 땀도 식힐 겸 담배 한개비를 물며 수박장수 뒷편 손바닥만한 그늘을 찾아 앉았다. 연신 주민들이 들낙거리는 걸 보니 수박 장사가 곧잘 되는 모양이다.

그때 아파트로 들어가던 중형차 하나가 멈췄다. 조수석 창문이 빼꼽히 열리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몇 동 몇 호로 저거 하나요. 수박장수는 떠나는 차 꽁무니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담배 하나를 다 태울 때까지 같은 장면을 한 번 더 목격했다.

수박을 사서 싣고 가면 빠르겠지만 더운 여름에 굳이 시원한 차에서 내려 수박을 고르기 싫어서 그랬을 것으로 짐작됐다. 그래서 그런지 주문하는 목소리가 하나같이 냉랭했다. 공연히 기분을 잡친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꽁초를 중형차가 사라진 쪽으로 힘껏 던졌다.

엊그제 압구정 어느 아파트에서 경비 노동자가 분신을 시도해서 위독하다고 한다. 압구정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 기사를 보며 얼추 삼십년이 다 돼가는 압구정 아파트에 관한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차갑게 떨어지는 날카로운 고드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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