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

Voices from Chernobyl, 2008
우리 원자력 발전소는 정말 안전하기 때문에 붉은 광장에다 세워도 괜찮다고 했소. 크렘린 바로 옆에(143). 1986년 4월 26일, 1시 23분 58초. 벨라루스 국경에 인접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제4호 원자로가 몇 차례의 폭발 후 무너졌다(24).

방사선은 바로 죽이지 않는다. 5년이 지난 후에는 암에 걸려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 환경단체가 수집한 통계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건 후 150만 명이 사망했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한다(5). 오늘날 거의 30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5기, 러시아 31기 그리고 한국에 21기가 있다. 종말을 앞당기는데 충분한 개수다. 그 중 20퍼센트가 지진 위험 지역에 있다(7).

꿀벌들은 재앙을 감지해서 우리보다 더 지혜롭게 잘 대처한 것이었어. 라디오, 신문에서 침묵할 때 벌들은 이미 알고 있었어. 나흘째에야 벌통을 나갔어. 말벌들이 있었는데, 말벌 집이 처마 밑에 있었어. 아무도 안 건드렸는데 말벌들이 아침에 갑자기 싹 사라졌어(88). 텔레비전으로 설명을 해주기를 기다렸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얘기해줄 줄 알았어. 그런데 지렁이가 땅 깊숙이, 한 50센티미터에서 1미터 깊이로 들어갔어. 그런데 우리는 모르잖아(18). 꽃피는 사과나무를 발견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 카메라를 들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이유가 뭔지 몰랐다. 노출도 정상이었고 그림도 예뻤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냄새가 안 났다. 과수원에 꽃이 피는데, 냄새가 없었다!(168)

우리 마을에는 묘지가 세 개 남아있다. 첫 번째는 사람이 묻힌 오래된 묘지이고, 두 번째 묘지에는 우리가 버려 총살당한 개와 고양이, 세 번째 묘지에는 우리 집이 묻혀 있다. 우리는 집까지 장사지냈다(250). 내 아이는 죽은 채로 태어났어요. 손가락도 두 개 모자랐어요. 여자아이였어요. 난 울었어요. 손가락이라도 다 있었더라면...... 여자아이잖아요(253).

우리 땅에 흩어진 방사성 핵종은 5만, 10만, 20만 년,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8). 우라늄이 붕괴하려면 238번 반감해야 하는데, 그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10억 년입니다. 토륨의 경우 140만 년입니다(190).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것이지만, 평화적 핵은 집집마다 있는 전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이 쌍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범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더 똑똑해졌고, 전 세계가 더 똑똑해졌지만 체르노빌이 발생한 후에야 그렇게 됐다. 오늘날 벨라루스인들은 살아 있는 ‘블랙박스’처럼 미래를 위해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모두를 위해…….(12)

나는 역사를 믿는다. 역사의 심판을 믿는다. 체르노빌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시작했다(367).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두 번째 핵 수업을 받고 있다(5).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8).

체르노빌의 목소리Voices from Chernobyl, 2008/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Светлана Алексиевич/김은혜 역/새잎 20110607 408쪽 16,000원

읽는 내내 HBO 드라마 〈체르노빌〉이 겹쳤다. 이 책이 영감을 주었단다.

체르노빌에서 첫 번째 핵 수업을 받았다. 후쿠시마에서 두 번째 핵 수업을 받았다. 세 번째 핵 수업까지 받으려고 하는가.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사람의 절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경고한다. 그들의 소원은 '평범한 죽음(320)'이다.

'말세와 석기시대를 갑자기 어어놓은 듯한 환상의 세계(144)'에 살고 싶지도 않고 물려 주기도 싫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