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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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코끼리를 작은 나무 우리에 가둔 뒤 꼬리와 귀, 다리를 꽁꽁 묶고 24시간 내내 때리거나 송곳으로 찌르며 고통을 가하는 학대나 고문에 가까운 훈련 과정을 '파잔'이라고 한다. '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13개 국가가 파잔으로 코끼리를 조련한다(27)'. 이렇게 조련된 코끼리는 쇼나 노역에 동원된다. 이런 코끼리는 '인간의 학대에 길들여져 오히려 동족을 두려워하게 된(36)'다.

'아시아 코끼리와 인간의 관계를 학대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면, 아프리카 코끼리의 경우는 밀렵이다(45)'. 밀렵꾼은 총을 쏴 코끼리에게 부상을 입힌다. 그리고 척추부터 전기톱으로 끊는다. 코끼리의 신경을 마비시켜 항거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코끼리에게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는 자비 따위는 베풀지 않는다. 코끼리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전기톱으로 코끼리의 머리를 통째로 잘라내 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아를 조금이라도 길게 뿌리까지 꺼내기 위해서(57)'이다. 마찬가지로 코뿔소도 얼굴 윗부분까지 깊숙이 베어 간다.

'식용이나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레저와 전시를 목적으로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를 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이라고 한다(89)'. '트로피 헌터들은 헌팅이 단순한 쾌락을 위한 게 아니라 야생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한다(123)'. 그들이 사냥하기 위해 낸 돈이 정부와 지역사회로 흘러 들어가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는 데 사용된다는 논리다. '2013년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IFAW)의 보고서에 따르면, 헌팅 관광으로 발생한 전체 수입 중 지역사회로 유입된 비율은 고작 3%에 불과하다(144)'고 밝혔다.

사자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은 사자를 직접 죽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동물 서식지를 침범해 가축을 키우자 야생 동물이 다른 곳으로 밀려났다. 사냥감이 줄어든 사자는 쉽게 잡을 수 있는 소를 사냥하기 시작하자 인간은 응징과 반격에 나섰다. 1940년대만 해도 아프리카의 사자는 45~50만 마리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약 2만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을 살아내는 게 지상과제인 궁핍함 앞에 생태계, 종 보존 같은 명분은 사치에 불과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과 가난한 사람들의 잘못된 만남(251)'이 낳은 잔인한 치킨 게임이다.

'멸종이라는 것도 일종의 적자생존 아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물은 사라지고, 다른 동물들이 또 나타나지 않겠는가(266)'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산업혁명 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되었다. 다섯 번의 대멸종마다 최상위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는데, 지금의 최상위 포식자는 인류이다. 멸종의 모든 원인이 인간인 세상에서 유발 하라리의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너무 빨리 정점에 올라 생태계가 그에 적응할 시간도, 인간이 그에 적응할 시간도 부족했다. 인간은 최근까지도 패배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먹이사슬에서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지고 말았다. 치명적인 전쟁과 생태계 파괴가 모두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 (198)

휴머니멀/김현기/포르체 20200624 288쪽 16,800원


덧. 저자는 MBC에서 방송한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을 만든 PD이다. 다큐 〈휴머니멀〉을 보면 분노로 시작해서 끝내는 인간임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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