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의 철학

뉴노멀의 철학
  • '인권 대 안전'이라는 근대적 대립 도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안전 속 인원'을 모색해야 한다. 한 사람의 반칙은 모두를 위협하기 때문에 그 한 삶이 반칙하지 않도록 미리 배려해야 한다. (6)
  • 인류는 코로나19와 함께 포스트-근대를 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이 그 전조라면, 코로나19는 근대의 끝을 알려주는 징조의 막내이자 마침표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이 삼각편대는 근대를 산산조작 낸 진정한 다이너마이트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이 유의미하게 제시된 건 40년이 조금 넘었지만,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상황과 맥락에서 진정 포스트-근대, 탈근대가 논의되어야 한다. 이 작업은 근대와 적절하게 거리를 두면서 인류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7)
  • '코로나 혁명'이 일어났다. 인공지능과 기후위기에 이은 대격변의 마침표다. (17)
  •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민낯을 드러낸 것 중 하나는 각국 정부의 성격, 또는 그 정부를 구성한 인민의 성격이었다. (21)
  • 실험은 안전의 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실험이 안전 자체를 목표로 삼지는 않으나, 실험 없이는 안전이 확장되지 못한다. 이런 피드백 고리 안에서 실험이 곧 자유라는 점이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한 사회가 실험을 감내하는 정도가 그 사회의 자유도(自由度)다. (31)
  • 불평등과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분열과 갈등은 커지고 영토는 흔들린다. 우리는 서로 보호해야 하며, 공동의 안전망을 함께 구축해야 한다. 진정한 자유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사회의 자유도다. (35)
  • 사방에 화약이 뿌려져 있지만 불씨를 운반하는 건 자유의 문제라고 오도하는 것과도 같다. 자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영토의 문제다. 영토가 망가지면 개인의 자유도 없다. (59)
  • 공동체 수준에서 이 위험을 지켜내는 수단은 민주적 거버넌스가 유일하다. 민주주의를 오래 지키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라는 얘기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 심지어 파시즘으로도 행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혁명의 잠재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75)
  • 동물이 상처 입은 새끼를 돌보는 건 일반적이지만, 상처 입은 동료를 돌봐주는 건 인간종 밖에 없다. 도구의 발명보다 사회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이다. (88)
  • 지구 시민들 모두가 협심해서 새로운 지구적 거버넌스를 만들어내야 하며, 그 속에서 서양 근대의 가치들이 재편되고 재해석되어야 한다. 지구를 커다란 배로 비유하자면, 지금 지구는 난파 직전의 상황이다. (95)
  • 빼앗는 것이 아닌 나누어주는 것이 새로운 거버넌스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런 거버넌스를 '공동주의'라고 명명했다. (96)
  • 인공지능, 기후위기, 감염병 대유행 등은 최근에 막 시작한 새 시대의 변별적 특징이다. 역사에서 '세기'라는 시대 구분은 숫자에 불과할 뿐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가능하다. 프랑스혁명이 발발한 1789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가 역사적인 의미의 19세기였고, 다시 그 후로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직전인 2019년까지가 20세기였다면, 인류는 이제 막 실질적인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123)
  • 과학자들은 세계화가 마무리되어가면서 특정 지역에 존재했던 풍토병이 전 세계로 확산되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진단한다. 이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는 없으며, 심지어 모든 오지들은 서로 연결되었다. (124)
  • 전문가는 두 종류가 있다. 이미 알려진 것을 빨리 습득한 전문가와 아직 모르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내는 전문가. 전자를 후진국형이라 한다면, 후자는 선진국형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137)
  •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한국이 사례로서 검증한 후 제시한 '보편성'이며, 한국은 보편성이라는 시금석과 마주하고 있다. (139)
  • 창조성의 본질인 실험을 가로막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실험은 미리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위험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을 막으면서 동시에 창조적 결과를 기대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창조성은 실험의 위험성을 이겨내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용기와 힘, 그리고 그것이 실천될 수 있는 자유를 전제로 한다. 실패해도 괜찮아야 한다. (176)
  • 학문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사회에 기여해야 하며, 사회의 바람에 호응해야 한다. 뉴리버럴아츠 인문학은 시대가 우리에게 던진 물음과 화두에 응하는 융합 학문이 될 것이다. (193)
  • 문사철 인문학은 폐지하고, 그 대안으로 뉴리버럴아츠 인문학을 제안했다. 문과와 이과, 예술까지 통합하는 학문 체계인 뉴리버럴아츠를 학부 교육과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201)

뉴노멀의 철학/김재인/동아시아 20200731 224쪽 15,000원

거스를 수 없는 대변화를 혁명이라고 한다면 코로나는 혁명이다. 저자는 코로나 혁명이 인공지능과 기후위기에 이은 대격변의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비로소 21세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코로나 혁명은 근대에 발명된 자유, 평등, 박애, 소유와 같은 개인의 가치와 권리를 바꿔 놓을 것으로 본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가 영원히 지속할 것임을 직감한다면 지금이 뉴노멀의 철학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방역과 인권에 대한 문제에서 초점이 자유에 맞춰지면 안 된다. '마치 사방에 화약이 뿌려져 있지만 불씨를 운반하는 건 자유의 문제라고 오도하는 것(59)'과 같기 때문이다.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며, 매번 상황에 따라 판정을 달리할 조건적 권리(33)'이다. '동물로서의 인간이 본능적으로 구성해야만 하는 어떤 안식처(25)'를 영토라 한다면, '자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영토의 문제'가 된다.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영토의 문제이다. '영토가 망가지면 개인의 자유(59)'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사회의 자유도(35)'에 있다.

종교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헌법 제20조에 보장한 종교의 자유라는 것은 '종교 및 비종교의 자유(76)'가 되어야 한다. 양심과 표현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에 앞서기 때문에 무신론과 종교를 부정하고 비판할 자유가 먼저다. 종교의 자유도 영토 안에 있다. 종교는 삶의 일부이므로 종교인과 종교단체는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종교는 사이비이다.

코로나 이후 탈근대 사회는 선례가 없어 혼란스러울 것이다. 코로나19로 각 정부와 구성원의 민낯이 드러났다. 새로운 규범과 제도를 발명하는 뉴노멀의 철학이 필요하다. 한글을 발명한 과학자 이도(李祹)에게 고마워하며 백범 김구 선생이 문화의 힘으로 그리는 세계 시민주의 사상은 추구할 가치가 차고 넘친다. 그것은 공상이 아니라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사상이 탄생하는 곳이 선진국이다(10)'. 뉴노멀 시대를 헤쳐갈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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