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성장에 관한 지청구

폴 콜리어는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자본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했던 마지막 시기는 1945년부터 1970년 사이였다. 이 시기에 정책을 이끌어간 지침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였고, 정치권의 주류 정당들이 모두 이러한 형태의 사회민주주의를 수용했다."1고 평가했다.

슬라보예 지젝은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에서 "브란트 전 총리는 공산권의 붕괴를 용납한 고르바초프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소련의 공산주의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권이 붕괴하면 서구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브란트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안적인 시스템 및 근로자의 권익을 약속하는 다른 생산 체계의 심각한 위협이 있어야만 근로자와 빈곤층에 상당한 배려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근로자와 빈곤층에게 더 맞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대안이 사라질 경우, 복지국가의 해체도 가능하다."2고 밝혔다.

안젤름 야페는 《파국이 온다》에서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등장은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의 일탈 행동 같은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또한 그것은 "급진" 좌파들이 가끔 주장하듯 기세등등한 정치가들과의 공모 아래 벌어진 쿠데타 같은 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티도록 만들기 위한 유일한 현실적 돌파구였다. 그리하여 상당히 오랫동안 금융 내지 신용 분야가 많은 기업과 개인들에게 번영이라는 환상을 좀 더 심어주었으나 그 목발마저 결국 부러지고 말았다(2008년 가을의 미국발 금융위기와 그 이후 지금도 계속되는 전 세계적 혼란이 바로 그 증거다)."3라며 신자유주의로 변신한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신자유주의는 "1979년에 영국에서 노동당 정권이 실각하고 민영화, 탈규제, 반복지, 시장화를 주창한 마거릿 대처가 수상으로 선출되었고, (...) 1980년에는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루스벨트 이후 큰 틀에서 지속되어 온 뉴딜 타협을 깨고 노조 탄압과 대대적인 탈규제, 사유화를 단행"4하며 등장했다.

Share of Income Earned by Top 10 Percent, 1917-2018
Share of Income Earned by Top 10 Percent, 1917-2018

위 그림은 1917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상위 10%가 차지하는 전체 소득의 비율을 나타내는 그래프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와 경쟁하던 약 30년 동안은 자본주의 사회는 번영을 달성하지만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묵계가 있었다. 적어도 이때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와 달리 대중의 번영을 넓게 실현하려는 시스템이었다.

자본주의는 1980년대로 들어서자 사회주의와 경쟁에서 압도적 격차를 확인하던 차에 때맞춰 대처와 레이건이 등장하며 신자유주의로 변신한다. 이때부터 자본주의는 상위 10%를 제외하고 다수가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신자유주의는 친기업·반노동과 친시장·반복지를 지향하며 친소유·반공유 성향을 더해갔다. 사회주의 국가가 해체되자 양극화는 심해졌고, 2018년에는 미국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를 넘었다. 자본주의는 다수가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양극화 사회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한국 불평등 지수는 미국 다음이다.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 기준으로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3.3%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K-방역, K-Pop, K-문화가 선풍을 일으키지만, 코로나19로 K-성장 즉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미국과 큰 차이가 없다. 1980년대 후반부터 남한의 자본주의는 북한과 경쟁할 이유가 없어졌다. 여기에 체제와 이념에 대한 주입은 자유와 인권 대신 쌀밥을 먹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삐뚤어진 자본주의로 각인된다. 신자유주의보다 더한 변신을 거듭하여 부동산 열풍으로 유전한다. 불평등 지수를 측정하기 시작하며 더 크게 미국을 따라잡는 모습을 보인다.

흘러 흘러 지금은 신자유주의보다 더 지독한 젊은 꼴통극우주의자가 등장하는 현실이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K-성장보다 더한 천박한 양극화를 대표하는 끝판왕이 엄습하고 있다. 상위 10퍼센트 밥상머리 교육이 K-성장을 합리화하며 대물림한다. 미국의 미식축구 코치 배리 스위처(Barry Layne Switzer)는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라고 절묘하게 비유했다. 슬프다.

신자유주의의 발전은 새로운 빈곤을 발명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며 AI와 공유경제로 포장했지만 공유경제는 부를 공유하지 않는다. 새로운 착취 형태만 만들고 있다. 나날이 자신의 토대를 좀먹는 신자유주의와 부도덕한 이윤을 숙청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인류가 종말하는 순간까지 다수를 착취할 것이다.


  1. 폴 콜리어, 《자본주의의 미래》, 까치, 2020년, 337쪽
  2. 슬라보예 지젝,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문학사상사, 2017년, 66쪽
  3. 안젤름 야페, 《파국이 온다》, 천년의상상, 2021년, 130쪽
  4. 신진욱 외,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 헤이북스, 2021년,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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