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타워
647층, 인구 50만 명, 높이는 대략 2킬로미터,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 이야기에 나오는 거대한 콩 줄기에서 따온 빈스토크라는 타워형 도시국가는 바벨탑을 연상시키지만 정작 입주민들은 그 별명을 죽어도 싫어한다. 주변국 사람들은 빈스토크를 암세포로 생각한다. 빈스토크 22층에 국경층이 그어져 있을 뿐 비인간적이고 무분별하게 상업화된 부분이 모두 빈스토크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빈스토크는 원래 국가가 아니라 건물일 뿐이었지만 65년 전 국가로 인정받았다. 주변국과 버스로 겨우 20분 거리에 있지만 비자 발급이 깐깐하다. 건물 전체가 주변국 영토에 얹혀 있는 주제에 주변국 사람들에게조차 비자 면제 혜택을 주지 않을 정도이다. 주변국 사람들은 빈스토크를 바벨탑이라고 비웃지만, 그 바벨탑에 입성하고 싶은 이들 만큼 바벨탑을 노리는 적들도 많다.

27층에 있는 미세권력연구소에서는 부정한 화폐로 활용되는 술을 통해 권력장(權力場)을 연구한다. 권력에 따라 술이 흐르고 모이는 것을 추적하여 권력이 집중되는 정도를 3차원 권력 분포 영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술병이 흘러 들어가기만 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권력자이거나 술꾼, 둘 중 하나다. 그런데 487층 A57 구역에 많은 술이 모였다가 다음 단계로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집주인은 영화배우 P였다.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술을 보냈을까?

술을 통해 본 권력장 얘기를 다룬 〈동원 박사 세 사람〉, 비정한 정치 논리와 인간적인 연대가 대치하는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자 변절(?)하여 자연주의 작가가 된 K의 사연을 다룬 〈자연 예찬〉, 빈스토크에만 있는 부자들 이념인 수직주의자와 가난한 사람들 이념인 수평주의자 사이에 얽힌 사연을 얘기하는 〈엘리베이터 기동 연습〉, 생불이 되려는 코끼리를 죽게 만드는 〈광장의 아미타불〉, 바벨탑을 붕괴시키려고 잠입하여 65년 전 건설 초기에 숨겨 둔 폭탄을 가동하는 〈샤리아에 부합하는〉 등 여섯 편의 연작소설은 날줄과 씨줄로 얽히며 재밌다.

수직자본론, 수직운송조합과 수평운송노조의 차이, 심판의 날과 집행유예는 재미있는 작명이면서 의미가 깊다. 술이 모인 영화배우 P는 개였다. 타워 개념어 사전에 의하면 '국민'이라고 짖기도 하는 네발짐승이다. 인간이 아닌 배우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상 소감으로 평소 준비한 말은 '멍멍멍'이었지만,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 '멍멍'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대답했다. "멍멍! 멍멍!"

최고 권력은 "일정 정도 이상 알코올을 섭취한 경우에 발현되는 인간 내면의 극단적 외면화 현상"으로 네 발로 걷는 인간이 아니라면 바벨탑에 사는 인간을 구원할 생명체는 개일지도 모른다. 파란 우편함을 없애고 코끼리 아미타브를 죽이는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말이다.

타워/배명훈/문학과지성사 20200220 316쪽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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