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 A Vision of the Human Future in Space, 1997
  • 〈창백한 푸른 점〉은 1990년 2월에 태양계 외곽에 도달한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의 카메라가 포착한 지구의 모습이다. 이 외롭고 볼품없는 지구의 모습은 거기에 사는 우리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알려주고 있다. 또 한편으로 그것은 우주 안에서 다른 수많은 〈창백한 푸른 점〉들, 그곳에서 살고 있을 다른 수많은 인류(지성을 가진 생물)들의 존재를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7)
  • 우리는 애초부터 방랑자였다. (11)
  • 보이저 계획은 토성을 만날 때까지만 추진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토성을 지나간 후에 마지막으로 지구 쪽으로 되돌아 보도록 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느꼈다. 토성의 거리에서 보면 지구는 너무 작아서 보이저는 그것을 자세히 식별할 수 없을 것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지구는 하나의 빛나는 점, 보이저가 볼 수 있는 다른 많은 점들(가까이 있는 행성들과 멀리 있는 태양들(별들))과 분간하기 어려운 외로운 한 개 픽셀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타난 우리 세계의 보잘것없는 모습이야말로 이 사진의 가치를 높일 까닭이 되는 것이다. (22)
  • 현대 과학은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는 항해로서 들르는 곳마다 겸허의 교훈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선객들은 오히려 집에 머물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41)
  • 다른 행성계의 존재에 관해서는 증거의 부재가 곧 부재의 증거처럼 여겨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놀라운 한편 실망하고 말았다. (45)
  • 우리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무대에 선다는 명제가 철두철미 거듭되어 사실과 어긋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논쟁의 대세는 결정적으로 하나의 입장으로 기울어졌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입장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다.〉 아마도 다른 세계의 생명이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인공이 없을 수도 있다. 그 어느 경우든, 우리가 겸허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57)
  • 우리 자신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우리는 지구를 얼마나 많이 변모시켰던가! 하지만 수백 마일 아래나 위에서는 인간을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지표에 붙은 얇은 생명의 막을 떠나면 가끔 겁없이 날아가는 비행기나 전파잡음의 공간전기가 있을 뿐이고, 인간이 우주에 주는 영향은 전혀 없다. 우주는 인간의 흔적조차 모르고 있다. (77)
  • 지구는, 적어도 이 태양계 안에서는 특이한 세 가지의 특성, 즉 바다, 산소, 생물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다. 이들이 서로 무관하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바다는 많은 생명이 기원한 장소이고 산소는 글의 생산품이다. (82)
  • 보이저 1호와 2호는 태양계를 인류에게 개방하고 미래의 세대에게 갈 길을 남겨준 우주선이다. 1977년 8월과 9월 두 우주선이 출발하기 이전에는 태양계의 행성들 대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다시피했다. 그 후 12년 동안 그들은 많은 새 천체들에 관한 가까이에서 얻은 자세한 정보를 처음으로 제공했다. 그 중에는 지상에 있는 망원경의 접안렌즈 속에서는 흐릿한 원반이나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것이나 그 존재 자체가 짐작조차 되지 않던 것들도 있다. 두 우주선은 아직도 수많은 자료를 보내오고 있다. (102)
  • 우리 은하 안에 외계 여행을 하는 다른 문명이 있는지를 모른다. 만약 있다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먼 앞날에 적어도 보이저 중 어느 하나가 외계의 우주선과 마주쳐서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므로 두 대의 보이저가 각각 행성과 별을 향해서 지구를 떠날 때 금제 거울로 만든 포장 속에 든 금제 음반을 실었는데 그 속에는 59개국의 언어와 고래의 언어로 된 인사말, 12분짜리 수필, 입맞춤, 어린이 우는소리, 사랑을 하는 젊은 여성의 명상의 뇌전도 기록, 우리의 과학과 문명 등 우리 자신에 관한 116개의 부호화된 그림, 90분짜리 지구의 최고 히트곡들인 동양과 서양의 고전들과 민속음악, 즉 나바호 족의 밤노래, 일본의 샤쿠하치 연주, 피그미 처녀의 성인식 노래, 페루의 결혼식 노래, 3000년 전 진나라의 음곡 「흐르는 냇물」,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스트라빈스키, 루이 암스트롱, 블라인드 윌리 존슨, 척 베리의 「조니 B. 구드」 등이 들어 있다. (169)
  • 역사의 가능한 진로는 많다. 우리의 특별한 인과성으로 이어진 역사의 사슬은 우리를, 비록 많은 점에서는 영웅적이지만 평범하고 초보적인 일련의 탐험들로 이끌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또는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지도 모를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고 있다. (282)
  • 장차 다른 세계들에서 육지 조성을 할 수 있는 기술의 일부를 우리가 이 세계에 끼쳤던 훼손을 보완하는 데 이용하는 것은 지금 생각할 만한 일이다. 긴급성의 선후를 고려한다면 인류가 다른 세계에서의 육지 조성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는 우리가 우리 세계를 제대로 바로잡았을 때부터 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이해와 약속의 깊이를 시험해볼 기회가 된다. 태양계 개조공사의 첫 단계는 지구의 거주 가능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소행성, 혜성, 화성, 태양계 외곽의 위성들, 그리고 그 너머로 진출할 준비가 마련되는 셈이다. (364)
  • 우리 은하수에는 4천억 개에 이르는 별이 있다. 이 엄청나게 많은 무리 속에서 특별할 것도 없는 우리 태양만이 생물이 사는 행성을 가졌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명이나 지성(인간)이 생길 가능성은 극히 작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느 때나 문명이 발생하지만 그 싹이 트자 마자 자멸해 버릴지도 모른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우주 공간의 곳곳에서 우리 지구와 비슷한 천체가 다른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으며, 그곳에 사는 생명은 우리 인간들처럼 밤하늘을 우러러 보며 어둠 속에 또 다른 생물이 살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은하수에는 생물이나 인간이 허다하게 존재하며, 이를테면, 이미 여러 세계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 지구인들은 이제야 비로소 다른 세계의 소리를 엿듣기로 작정한 단계에 이른 셈인지도 모른다. (370)
  • 나는 외계 공간에 진출할 자는 우리-현재의 우리 관습과 사회 전통을 그대로 지닌-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만약 우리가 계속 슬기로움은 소홀히 한 채 재능만을 축적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우리 자신을 파멸시키고 말 터이다. 먼 훗날에도 우리가 존속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제도와 우리 자신을 개조해야 한다. 인간의 먼 장래에 관해서 감히 내가 어떻게 추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단순히 자연선택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난폭해지고, 소견이 좁고, 무식하고, 이기적으로 된다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음은 거의 확실하다. (415)
  • 현재의 모든 실정을 고려하면, 우주는 영원히 확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동안의 짧은 정체 기간을 거쳐 이제 다시 조상들이 했던 방랑생활의 양식을 계속하게 된 셈이다. 태양계와 그 너머 곳곳의 여러 세계들에 안전하게 흩어져 있을 우리의 먼 후손들은, 그들이 공유한 유산, 그들의 고향 행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우주를 통틀어 다른 생물은 몰라도 인류만은 지구로부터 유래했다는 인식으로 한 가족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밤하늘을 우러러 창백한 푸른 점을 찾아내려고 애쓸 것이다. (423)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1997/칼 세이건Carl Sagan/현정준 역/사이언스북스 20011210 440쪽 33,000원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에서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과학 탐사가 끝난 후에야 고향을 잠시 돌아보는 위험한 응시가 허락되었다. 너무 멀어지기 직전에 건진 사진 속 단 하나의 픽셀에,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이 찍혔다." 1977년 9월5일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14일, 약 64억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찍은 고향 지구. 지금 보이저는 지구에서 227억킬로미터 떨어진 우주를 시속 6킬로미터로 비행 중이란다.

다시 읽은 책에서 칼 세이건은 우주와 미래를 말하지만 겸손과 겸허를 당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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