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현재 한국의 상황을 보면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의 유명한 도입부가 절로 생각난다. (...) 한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업무 강도로 악명이 높다. 그곳은 통제할 수 없는 천국인 동시에 고독함과 절망의 지옥이며, 물질적인 풍요가 넘치지만 황량한 곳이고, 고대의 전통을 간직한 동시에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한 나라다. 이 극단적인 모호함은 현대사회 역사상 최고의 성공 신화로 손꼽히는 한국의 이미지를 뒤흔든다. 성공은 맞지만, 과연 성공일까? (33)
- 오늘날의 진정한 보수는 전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교착상태를 십분 인정하고, 단순한 성장에 반대하며, 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점에서 극단적인 좌파가 오늘날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상황이 나빠서'가 아니라 기대가 어긋나기 때문에 반발한다. (37)
- 브란트 전 총리는 공산권의 붕괴를 용납한 고르바초프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소련의 공산주의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권이 붕괴하면 서구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브란트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안적인 시스템 및 근로자의 권익을 약속하는 다른 생산 체계의 심각한 위협이 있어야만 근로자와 빈곤층에 상당한 배려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근로자와 빈곤층에게 더 맞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대안이 사라질 경우, 복지국가의 해체도 가능하다. (66)
- 사회 전반에 걸쳐서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권력의 시스템에 저항하지만, 이는 곧 정당성을 잃는다. 전 세계 어느 곳이나 비슷한 일이 일어나서 TV로 보도가 되지만, 놀라운 단결이 보여주는 마법의 순간은 곧 끝이 난다. 약속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결국 독재가 개입한다. 즉, 상상의 단결인 셈이다. 서로 다르고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잊고, 증오하는 독재에 맞서기 위해서 사회가 하나로 단결하는 것이다. (161)
- 자유주의와 극단적인 좌파의 차이도 이것이다. 이들이 똑같이 세 가지의 요소(자유주의 중도, 포퓰리즘 우파, 극단적인 좌파)를 고려하지만, 다른 위상에 놓는다는 것이다. 중도 좌파에게 극단 좌파와 우파는 똑같이 심각한 '전체주의'이며, 좌파에게 유일한 대안은 좌파와 주류 좌파의 중간이다. 포퓰리즘의 '극단적'인 우파는 좌파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유주의의 무능이 보여주는 증상일 뿐이다. (164)
- 모든 혁명이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처음의 열정적인 단결이 해체된 후에야 진정한 보편성이 형성되고, 보편성은 더 이상 상상의 환영으로 유지되지 않게 된다. 처음 사람들이 보여준 단결이 서로 해체된 다음에야,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의 영향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단순히 독재자를 제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독재자를 만든 사회는 철저한 변화를 필요로 한다. 힘든 일에 참여할 준비가 된 사람만 최초의 열정적인 단결의 극단적인 핵심에 충실할 것이다. 이런 충실함은 고된 일이고, 이 과정에서 분열이 필요하다. 공산주의 이념을 현재의 질서가 만들어낸 이념적인 한계에 갇혀 있는 유대와 결속에 대한 상상의 환영부터 분리해야 한다. 이런 인내심이 요구되는 정화淨化는 적절한 혁명적인 작업이다. (170)
- 현재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문명이 가진 전체성을 규정하고, 그 구조를 만든다. 그래서 모든 '공산주의'의 영역은 과거는 물론 현재도 공포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자유로운 영역'이다. 프레드 제임슨Fred Jameson이 쿠바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공간과 그곳을 채우는 긍정적인 내용 사이의 격차가 만들어내는 낡은 구조적인 개념이다. 긍정적인 내용을 생각해보면, 공산주의 체제는 거의 대부분이 끔찍한 실패로, 공포와 비참함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특정한 공간을 제시했다. 이 공간은 유토피아의 예측을 제시하는 공간으로 무엇보다 '실제 존재하는 사회주의' 자체의 실패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해준다. (231)
- 미국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대표하고, 유럽은 복지국가로 남아 있으며, 중국은 '동양의 가치'를 가진 독재 자본주의이고, 라틴 아메리카는 포퓰리즘 자본주의다. 미국이 강대국(세계의 경찰)의 지위를 가지려다가 실패한 후, 이제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를 대비해서 이들 지역적인 중심들 사이에서의 상호 관계를 조율하는 규칙이 필요하다. (251)
- 진정한 리더는 사람들이 원하고 계획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려주고, 이들을 통해서만 이들이 원하는 것을 이룬다. 여기에 진정한 정치적 지도자의 행동이 존재한다. 지도자의 말을 들은 다음에야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나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299)
- 오늘날 공산주의는 해결책의 이름이 아니라, 문제의 이름이다. (...) 우리의 수평선은 공산주의로 남아 있어야 한다. 수평선이란 절대 접근할 수 없는 이상이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아이디어의 공간이다. (338)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Trouble in Paradise, 2014/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박준형 역/문학사상사 20170116 380쪽 18,000원
'자본주의의 최선보다 스탈린주의의 최악이 낫다(229)'는 주장을 보면 뜨악할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를 미워했지만, 함께해야만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115)'을 양측은 알고 있었다.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에 불평등은 다시 시작(244)'된 것이 증명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최선보다 스탈린주의의 최악이 낫다는 말은 이상적 공산주의가 지향하는 유토피아적 상상으로 가자는 뜻으로 이해했다. 아무런 사건도 없이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자본주의적 생존이 최선이 아니라면 말이다.
꼭 번역 문제는 아니겠지만,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책 제목도 과하다. 자본주의를 포함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데 가장 위험한 철학가인 지젝을 의식해서 정했지 싶다.
꼭 번역 문제는 아니겠지만,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책 제목도 과하다. 자본주의를 포함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데 가장 위험한 철학가인 지젝을 의식해서 정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