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재구성

상식의 재구성
  • 코로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진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놓았다. 한국은 선진국을 무조건 배우고 따라잡으며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배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또한 우리를 따라 배우는 나라들에게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이 주어지기도 하는 때가 온 것이다. (19)
  • 국민소득 3만 불이라 해도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흔하다면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또한 부모에게 맞아 죽는 아이가 있는 한 복지국가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생활고로 자살하는 일가족이 있는 한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은 위선이라는 것이다. (78)
  • 〈기생충〉이라는 한국영화에 세계가 환호한다는 것, 그런데 그 작품이 한국 사회 계급갈등의 깊고 어두운 골을 비춘다는 것, 통쾌하면서도 떨떠름한 이 기분은 한국인이라는 이 신나고도 괴로운 신분이 제공하는 아이러니다. (82)
  • 갈등 자체는 강도가 높지 않지만 체감하는 갈등의 강도는 높다는 것. 실제 사회불안요인에 비해 불안심리가 훨씬 과장돼 있다는 것. 그것이 미디어 과밀 사회의 심리적 환경이다. (95)
  • 개화기 이래 우리 역사에서 기자들은 처음엔 '몽매한 민중을 계몽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사회의 지능은 언론과 함께 진화해왔다. 정치가 그렇듯 언론도 그 사회의 수준과 같이 간다. 기자의 질이 떨어지면 사회의 질도 떨어진다. '기레기'라는 멸칭이 유행하는 시대는 기자들뿐 아니라 한 사회로서도 좋지 않다. 기자가 '기레기'라는 말을 들어도 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거대한 쓰레기장이라는 얘기다. 오랫동안 신문기자들은 정치권력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월급이 많든 적든 엘리트 집단이었는데 좋은 의미의 엘리트 의식이 사라지는 건 슬픈 일이다. (128)
  • 정치권력이 부드러운 얼굴을 갖게 되고 절대권력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을 때 공포는 애정이 아니라 혐오와 무시로 바뀐다. 일종의 보복 내지 보상심리다. (151)
  • 군부가 무력화된 시대에 검찰이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검찰에 대한 견제장치를 미처 마련하지 못한 '민주도상국'들에서 가끔 있는 일이다. 이러한 과도기, 검찰패권의 시절에 검찰 책임자가 정치인 이상으로 주목받기도 하지만, 정쟁에서 부각된 '이슈맨'이 대통령 후보로 떠올려지는 것은 정치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정치 양극화가 빚어낸 기이한 풍경이다. 이야말로 민주주의 위기의 한 징후다. (180)
  • 역사는 지금의 질서를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과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의 '밀당'의 과정이다. 그것을 통해 인류가 진화해 왔다. 당대에 순응하는 사람들만 있으면 발전이 없고, 규범을 치고 나가는 사람만 있으면 카오스가 된다. 조직 내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한 사람이 없어서 벌어진 나쁜 일들도 많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동조보다 일탈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할 때 혁명이 일어난다. 동조와 비동조, 순응과 일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 그것은 진보와 보수의 역할이기도 하다. (211)
  • 성공적인 사회 모델의 특징은 친노동 정권이 노동개혁에 앞서고 친자본 집단이 재분배에 앞서는 것 (216)
  • 인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상식은 '절대선'은 없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의 유일한 규범은 '하나의 규범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집단 어느 개인에게나 통용되는, 5년 전 10년 전과 똑같은 그런 유일 불변의 규범은 없다.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은 점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상식의 중간지대가 생겨난다. 중간지대는 큰 배의 평형수처럼 사회가 덜 흔들리도록, 침몰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217)
  • 식민지-전쟁-군부독재로 이어지는 100년, 정치 리더십의 부재와 실책과 남용으로 개인이 학대당하는 역사를 지나온 우리 대중은 이제 치유의 정치를 필요로 한다. 정치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가치의 배분'이다. 힐링에 필요한 것은 배분의 전쟁이 아니라 배분의 예술이다. (220)
  • 우리는 양대 정당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착시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남북 대치 상황과 오랜 군사정권이 만들어놓은 보수편향이다. (...) 민주당은 독일의 중도보수 집권당인 기민당보다도 약간 오른쪽에 있고 당시 자유한국당, 지금의 국민의 힘은 독일의 극우 정당인 AfD하고 비슷하다. (339)
  • 아이러니컬한 것은 조국-윤석열 사태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의 좌우가 격돌했지만 그것은 이념대립으로 보일 뿐 실제 이념대립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진보의 도덕성이 공격의 초점이 되고 '강남 좌파' '입진보' 등이 유행어가 됐지만 한국의 대중이 실제로 좌와 우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념 논쟁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2019년에는 재벌구조와 경제민주주의가 이슈가 됐어야 했다. (346)
  • 한국인들은 경쟁 본능으로 시대의 과제를 돌파해왔지만 이제 그 경쟁 본능이 덫이 되고 있다. 경쟁에서 오는 불안과 변화로 인한 불안은 자살 신드롬의 주요 성분이다. (477)
  • 자기가 속한 사회를 답답해하는 건 청년기의 특징이고 특권이기도 하다. 유럽에선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경제가 침체되면서 청년들이 프랑스나 독일로 가는데 독일 청년들은 독일에 희망이 없다고 스위스나 미국으로 빠져 나간다. 독일 청년들은 노동시간이 더 짧고 복지는 더 좋은 스칸디나비아와 자신을 비교한다. '쟤들은 저렇게 대충 일하고 사는데 우린 뭐야.' (499)

상식의 재구성/조선희/한빛비즈 20210701 560쪽 22,000원

독일 정치교육의 원칙에 합의한 '보이텔스바허협약', 갈등 해소의 모델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몽플레 시나리오 워크숍'은 흥미롭고 유익합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요. 독일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한국의 거대 양당은 보수와 극우에 가깝고, 적대적 공생을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바뀌겠지요.

양극화 시대입니다. 경제도 양극화, 정치도 양극화, 사상도 양극화 시대입니다. 회색인이면 어느 진영에서도 욕을 하고 손가락질합니다. 상식도 양극화한 시대에 상식을 재구성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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