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21세기에 우리네 이솝 우화를 쓰는 소설가

양심 고백
인간이 죽을 때가 아니라 태어날 때 평점을 받는 선천적 능력주의 세상을 풍자하는 「인간 평점의 세상」, 「시험 성적을 한 번에 올리는 비법」으로 친구마저 굴러 떨어트리는 냉혹한 현실을 그리지만, 성적을 올리기 위해 이혼이라는 쇼까지 벌이는 부모는 절대 되지 말라는 「두 여학생 이야기」.

약한 사람, 아픈 사람을 배려해준 뒤의 공평함이야말로 인간다운 공평함이라는 「단체 감옥」, 시간을 얻기 위해 시간을 버리는 「레버를 돌리는 인간들」, 간절함보다 재미로 뛰는 사람이 이긴다는 「서울숲 게임」, 젊음보다는 재산이 많은 노인이 좋다는 「노인의 손바닥 안에서」.

자살하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게 되자 부모가 영어 유치원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자살을 권하는 「다시 시작」, 성우보다는 말은 더듬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며 부모가 말더듬증 고치기를 중단하는 「말더듬이 소년의 꿈」, 소수의 사물에 나타난 숫자가 아이로 변하자 숫자를 지우는 건 살인이라던 시위대도 전국에서 숫자가 나타나자 조용히 해산하는 「카운트다운」, 유기물 집합체 즉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90%의 인류가 사회적 기준과 무관하게 영혼을 가진 사람 10%를 노예로 만드는 「영혼 인간」.

같은 인간을 계속해서 보는 건 재미가 없어 유한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신의 「양심 고백」, 동물의 목소리를 바꾸면 반려동물 진료비를 전액 지원하는 삼성 반려동물 보험이 허용되자 두 반려견이 삼성! 삼성! 하며 반갑게 만나고, 쌍꺼풀 수술을 받은 반려인은 삼성, 수술비도, 삼성, 공짜니까, 삼성, 좋아라하며 대화하는 「동물 학대인가, 동물 학대가 아닌가?」.

예전 국민학교는 이솝 우화를 반강제적으로 읽혔다. 교훈은 대부분 권선징악이었지만, 그나마 재미가 있어 읽었다. 《양심 고백》에 실린 스물여섯 편의 짧은 소설은 우리 현실을 재미있게 풍자하지만, 날카롭고 예리하게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화두를 남긴다. 소설은 유쾌하지만 울림은 묵직하다.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긴 소설집 10권을 다 읽을 것 같다. 김동식 작가는 21세기에 우리네 우화를 쓰려고 환생한 이솝이 틀림없다.

양심 고백/김동식/요다 20180405 296쪽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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