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얼지 않게끔, 드디어 휴면하는 휴먼이 출현하다

부디, 얼지 않게끔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고 소문난 송희진과 무더운 사무실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최인경은 같이 베트남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민소매 티에 적갈색 머리를 한 희진은 관종으로 불리며 더운 게 싫은 사람입니다. 인경은 여름이면 화장이 땀으로 무너질 걱정이 없어 부럽다는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체질마저 상극이어서 교류가 없었던 두 사람은 베트남 출장길에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인경의 몸이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버린 걸 희진이 처음 알아챘습니다. 둘은 베트남에서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오히려 기운이 넘치는 인경이 변온동물로 변해버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열대 기온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변온인간으로 변했지만 국가기관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국가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대신 희진은 변온인간이 된 인경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영영 변온동물로 변해버린 것이라면, 가장 큰 고비는 여름이 끝나고 서늘한 가을을 지나 혹한의 추위가 다가오면서부터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대충 계산해보면 반년도 더 이후의 일이니 안심할 수도 있을 법하지만, 만일 지금 지내는 이 여름이 나에게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남은 시간을 결코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49)'.

열대 기온에서 살아야 하는 변온인간으로 변한 인경은 자신을 돌보는 희진에게서 '그저 기분 좋은, 주머니 속에 넣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그런 온기(126)'를 느낍니다.

'특별하고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이 들어 오랜 시간 추위를 피한 후 날씨가 따뜻해지고 햇살이 충분해질 때쯤 일어나면 되는 것이었다. 집에서 변온동물을 키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동면의 조건을 만들어주고 1년에 한 번쯤은 쉬게 해주어야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냥 무심하게 아무 일 없이, 그렇게 한겨울 한 철만 나면 된다고 했다.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그들은 표현했다. 사람도 동물처럼 겨울을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롱패딩값도 굳고 말이죠(192)'.

희진은 '생각만 한 것과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78)'은 다르다며 인경이 동면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줍니다. '다시 눈뜰 수 있기를.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기를. (...) 우리가 만난 행복한 여름을 다시 경험할 수 있기를(200)' 기원하며 인경은 냉장고 박스 안에서 눈을 감고 겨울잠에 듭니다.

여름을 버티기 어려운 희진과 겨울이 오는 게 두려운 인경은 돌봄과 연대를 넘어 변온인간으로 변하는 최초의 휴먼입니다. 인경은 '겨울을 이겨내야만 하는 이유(199)'가 희진의 돌봄에 있음을 압니다. 인경이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 희진이 변온인간으로 변했다면 하면(夏眠)하는 그를 돌볼 겁니다. 변온인간은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며 1년에 한 번쯤 교대로 잠이 드는 전혀 새로운 휴먼이니까요.

두 사람은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며 '지구가 한 번 공전하고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에도 무사히 살아남아 아무도 다치지 않고 죽지 않은 채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202)' 삶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로 휴먼도 걱정 없이 휴면(休眠)하는 삶에 도전합니다. 자본주의에 반동(反動)하고 탈피하여 자본주의 종말 이후에 등장할 새로운 휴머니즘의 기원입니다.

반려견 슈도 새벽까지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선잠을 자던 공동집필작가여서 반가웠습니다. 휴먼은 누구나 원할 때 휴면하고, 휴면에서 깨어나면 맥주 한 캔이랑 떡볶이를 나눠 먹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얼지 않게끔, 지금과 판이한 더 나은 세상을 꿈꿉니다.

부디, 얼지 않게끔/강민영/자음과모음 20201116 204쪽 13,000원


덧. 오탈자 : 197쪽 4행 희진 씨가 잠들고 나면 → 인경 씨가 잠들고 나면
재쇄 찍어 오탈자 수정하고 공동집필작가인 반려견 슈선생에게 발도장 사인을 받고 싶습니다.

덧. 책표지 그림은 정은지 작가가 그린 〈열여섯 개의 원 2 (열다섯 개의 포도알과 접시)〉임을 알았지만, 소설과의 연관성이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내 탓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냉장고 박스 안에 잠든 인경을 그린 이미지가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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