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정치적 사고'였다. 표를 준 유권자들도 그가 이토록 무지하고 무능하고 포악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윤석열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다. '의도'가 아니라 '본성'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도자기가 깨지는 것은 그의 의도와 무관한 '부수적 피해'일 뿐이다. 그를 정치에 뛰어들게 한 동력은 사회적 위계(位階)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는 생물학적 본능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국민을 속이지 않았다. 검찰총장으로서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그를 정확히 보려 하지 않았던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 화장과 조명으로 윤석열의 결함을 감춰준 언론에 속은 시민도 많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었다. (7)
- 윤석열은 대한민국을 멍들게 했지만 뼈를 부러뜨리지는 못했다. 뼈를 부수려면 입법을 해야 하는데, 국회를 야당이 장악하고 있어서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야당이 동의하지 않는 입법은 할 수 없다. 법원은 비판적인 기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방통위, 방심위, 선방심위의 윤석열 추종자들이 내린 징계를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한국은 독재화 과정에 들어섰지만 독재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권력 분산과 상호 견제 시스템 덕분이다. (25)
- 윤석열도 비속하다. 주체적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법이 없다. 자기 객관화도 자기 성찰도 하지 않는다. 그저 본능과 욕망이 명하는 대로 한다. 그래서 자신의 언어가 없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위계 조직의 최고 권력자가 되면 남도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조직원 모두를 자신처럼 비속하게 만든다. 그가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악인이라면 더 지독한 악을 저질렀겠지만, 어리석어서 악을 저지를 뿐이라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 (30)
- '불완전한 선'을 위선이라고 비난하는 방법으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의제를 차지했다. 권력을 장악한 다음에는 선한 척조차 하지 않고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둘렀다. 2022년 3월 9일, 한국 유권자는 '위선'이 싫다고 악을 선택했다.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악인 줄 알고도 선택했다는 말은 아니다. (39)
- 우리가 알던 저널리즘은 여전히 강력하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힘을 다 잃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강하지는 않다. 힘이 빠지는 중이다. 세계적인 현상인데, 한국은 좀 특이하다. 한국 언론은 우리가 알던 저널리즘도 아니다. 언론이라고 하기보다는 정보유통업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한국의 신문 방송은 대부분 사회의 공론장이 아니라 기득권 집단의 이념을 전파하고 그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정보유통 회사가 되었다. (92)
- 기자는 사회에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이 아니다. 민중을 위해 싸우는 투사도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기자는 사는 게 괴롭다. 월급을 받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회사원일 뿐인데 비리를 폭로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인권과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하니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기자가 자본과 정치권력의 간섭과 횡포에 맞서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실 그런 시대는 있지도 않았다. 그런 것처럼 보인 때가 잠깐 있었을 뿐이다. (96)
- 선거여론조사는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보여준다. '투표하는 날 하루만 주권자'라고 비웃지 말라. 투표권 말고는 국민이 정부의 폭정을 멈추게 할 수단이 없다. 윤석열의 무능을 심판할 길이 없다. 투표권은 인류 문명의 역사 수천 년 동안 필설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희생을 치른 끝에 가까스로 얻은 민중의 무기다. 종이로 만든 탄환이다. 여론조사에 휘둘려 투표를 포기하면 안 된다. (112)
- 말이 나온 김에 한국 언론에 대한 평소 생각을 하나 더 말하겠다. 우리 언론은 자유를 찾고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 기여한 바 없다.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협조하거나 앞장선 적은 많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국민과 함께 군부독재와 싸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군부독재에 빼앗긴 자신의 권력을 되찾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 시기를 제외하면 한국 언론은 언제나 권력 가진 자, 돈 많은 자, 많이 배운 자, 기득권자의 편을 들었다. 스스로 균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균형을 파괴했다. 지금도 그렇다. (122)
- 윤석열은 왜 인기가 없을까? 첫째는 무능이다. 국정을 옳게 이끌었는데도 국민 눈높이에서 소통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변명은 국민의 부아를 돋울 뿐이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은 많이 했다. 원래 있던 문제는 더 심각하게 했고 없던 문제를 숱하게 만들었다. 그냥 무능한 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극단적으로 무능하다. 국민은 그렇게 본다. (130)
- 윤석열은 무능한 독재자가 아니다.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무능한 대통령이다. 이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개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 배운다. 영원한 초보운전자는 없다. 난폭 운전자도 마음을 고쳐먹고 운전 습관을 바꾸면 모범 운전자가 될 수 있다. 학습 능력이 있으면 사람은 발전한다. 윤석열도 더 유능하고 민주적인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전제가 있다. 학습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156)
- 선거는 '기성복 고르기'다. 나는 이 말을 대통령이 되기 전의 노무현에게 들었다. 정치시장에는 맞춤복이 없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많은 사람이 모인 정당이 어떻게 모든 면에서 내 마음에 들겠는가. 존재하는 정당 중에 제일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정당, 제일 나아 보이는 후보를 선택하면 된다. (229)
- 민주주의는 '극단적 이념'도 배척하지 않는다. 극단적 이념을 왜 극단적이라고 하는가? 극소수만 이해하고 찬성하니까 극단적이라고 한다. 그런 이념은 사회를 위협하지 않는다.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다. 다수의 이해와 지지를 얻으면 사회의 통념이 된다. 노예해방, 인민주권, 페미니즘도 처음에는 극소수만 옳다고 여긴 '극단적 이념'이었다. 민주주의가 배격하는 것은 극단적 이념이 아니라 다른 이념을 폭력으로 공격하고 말살하려는 독선과 불관용이다. 다수파든 소수파든 상관없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을 폭력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244)
-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잘못된 만남'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와 인간 윤석열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대통령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객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본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더닝-크루거 효과'의 존재를 입증하는 사람이다. 너무 어리석어서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운명이 그를 덮친다. 자신에게 왜 그런 운명이 닥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54)
- 함께 나이 먹어가는 친구들한테 말한다. 나이 들면 지혜로워진다는 말을 믿지 말자고. 어리석은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자고. 젊은이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자고. 나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 산다. 2030은 선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 사는 '네이티브 디지털' 세대다. 생각과 문화의 차이가 뚜렷해서 말을 붙이기 어렵다고 느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하면서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은 뭐든 잘해나갈 것이다. (287)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유시민/생각의길 20240619 288쪽 16,800원
윤석열은 무능한 독재자가 아니다.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무능한 대통령이다.
윤석열 때문에 응어리졌던 원인과 처방전이다. 그래서 속이 시원하게 술술 잘 읽힌다. 단, 무능한 독재자에게 퇴로를 만들어 주자는 제안은 거부한다.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의 결말은 사면이 아니라 단두대가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