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동아시아의 현실적 지형으로 볼 때 분단체제 해소는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체제 구축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 평화체제는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벅차고, 지금의 권력체계가 스스로 변화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다. 다자주의 시대를 활용하여 지역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분단체제를 해체해야 한다. 중국은 불완전한 강대국이지만 미국이라는 기존 제국의 대항 권력이기도 하다. '중국이 문제'라는 자유주의 프레임이나 '중국도 문제'라는 이상주의 프레임에 벗어나 이 땅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중국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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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주의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는 것은 그들 사이에 체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드러난 것을 뜻한다. 태극기와 성조기는 그들이 구축한 전후체제의 상징이었다. '촛불혁명'의 성공, 한일 간 정보교류 협정의 무력화, 사드 설치의 실패, 북·미 간 평화협상은 한국 보수주의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사건들이었다. 중국의 부상은 그들의 체제를 가장 강력히 흔드는 진앙지였다. 박근혜정부 몰락 이후 전후체제의 유기적 위기를 실감한 한국의 보수주의는 대략 세 세력으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안보적 보수주의 세력이다. (...) 다른 하나는 경제적 보수주의이다. (...) 마지막 세력은 극우집단이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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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적 보수주의자들에게 중국의 동북공정은 반공주의와 친미주의의 위기를 단숨에 극복해 내고 한미동맹을 지킬 수 있는 호재였다. 한국의 안보적 보수주의자들은 동북공정을 역사전쟁으로 비화시켰고,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결국 한국의 안보적 보수주의가 주도한 역사전쟁은 그들의 승리로 끝났다. 동북공정 사태 이후 중국은 미국보다도 더 위험한 '중화주의적 패권국가'로 낙인찍혔고, 추락하던 미국의 지위는 다시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우리의 영원한 우방으로 자리 잡았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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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국가나 민족을 혐오하는 데는 혐오할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혐오해야 할 국가나 인종은 없다. 어떤 국가나 민족도 잘하는 일이 있고 못하는 일이 있다. 모든 혐오는 혐오를 조장하는 집단의 특정한 목적이 숨어 있고 그런 단어가 사용되어 온 역사가 있다. 그런 집단은 특정한 국가나 인종의 일상을 자기들의 기준대로 채집하여 분류하고 전시하며 혐오를 유발한다. 짱깨라는 개념이 짱깨주의로 구조화되는 데는 그런 집단의 특정한 목적이 숨어 있다.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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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주의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칭키즘(Chinkism)'에 가깝다. 자본의 문제를 중국의 문제로 돌리고, 인종주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짱깨주의와 칭키즘은 차이가 있다. 짱깨주의는 '칭키즘'에는 없는 신식민주의적 식민성이 들어 있다. 짱깨주의에는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과 상관없는 종주국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복종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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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적 보수주의의 짱깨주의는 식민주의적 근대화론의 결정판이다. 친일적 개화파의 식민주의적 중국인식과 친일파의 적대적 중국인식이 친미반공주의자들로 이어져 신식민주의체제의 주된 중국 인식체계로 자리 잡았고, 전후체제의 위기 속에서 짱깨주의로 부활했다.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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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한 중국'이라는 프레임에는 거대한 중국의 등장에 따른 공포와 불안이 숨어 있다. 브로델과 고진도 주장했듯 '미개하다'는 정의가 사용되는 역사적 특징은 자기 힘으로 통제할 수 없거나 통제될 수 없는 국가나 민족이 등장했을 때 사용되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상상된 중국의 힘에 대한 불안이 내재된 것이다. 한국 언론의 '미개한 중국' 프레임도 동일한 관성으로 움직인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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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민의 중국 정부에 대한 신뢰는 시진핑정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국 혁명 이후 흔들림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민의 '국뽕'은 동원된 애국주의가 아니라 자발적 참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국 영화가 국뽕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빈정거리는 일이 아니라 그런 영화에 왜 중국민이 열광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국익에도 이롭고 이웃으로서도 올바른 태도이다. 중국도 이미 중국민의 중국이다.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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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성공할 수 없다는 프레임을 사용하다가 중국이 성공한 사례가 등장하면 대륙의 실수라는 프레임을 가져와 결코 중국은 성공할 수 없다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국은 미개해야 하고, 중국은 성공할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할 수 없는 중국은 그들이 만들어 가는 신냉전체제 구축에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이 앞으로도 계속 부상한다면 중국 대안론이나 다자주의, 탈냉전체제의 움직임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그 모든 것을 단숨에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중국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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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의 안보 보수주의자가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이 옳다고 주장하려면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에 무엇을 주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점이다. 종전선언조차 망설이는 미국을 두고 미국이 늘 옳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가 먹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미국이 한국에서 중국을 몰아내고 싶다면 중국과 실질적 민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철지난 반공주의의 부활로 이길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미국은 늘 옳지 않다. 옳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이다.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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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보수주의자가 중국을 적대시하는 까닭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내부의 문제를 외부화하려고 중국을 동원한다. 그들의 이익을 숨기거나 높이는 데 중국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 대중의 욕구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짱깨주의의 일상화에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일상화와 그 속에 편재된 시민의 경제 욕망이 개입한다.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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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은 일본의 지부티 군사기지는 군사기지라고 보도하지 않고 '거점'이라 보도했다. 심지어 일부 한국 언론은 중국의 군사기지를 견제하려고 군대를 둔다는 일본의 변명까지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이 중국의 식민지화되어 가는 약소국 지부티를 돕기 위해 자위대를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자위대 부활을 꿈꾸는 일본 우익 논리의 복사판이다. 반면 중국의 지부티 군사기지 건설에 대해서는 '군사굴기'라고 중국의 팽창성을 강조하며 대서특필했다.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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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언론의 '백신외교' 프레임은 중국의 백신을 받아 쓰는 가난한 국가들의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그런 '백신외교'조차도 차일피일하는 백신 강국 미국에게 면죄부를 주는 기능까지 한다. 중국의 백신 제공은 그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이기적인 행위일 뿐이니까 미국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하지 않아도 되는 미국이 나서면 보편적 민주주의의 실행으로 찬양받는다.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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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하워드 진의 금언은 짱깨주의에도 그대로 통한다. 누군가가 짱깨주의적 권력을 분석하고 그들과 싸우지 않으면 짱깨주의 권력은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는 적극적 짱깨주의자와 무의식적 짱깨주의자만 넘친다.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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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보수주의자들의 짱깨주의적 기획은 성공했다. 신식민주의 체제하에 있는 대중들에게 '중국도 문제다'라는 프레임의 글은 신식민주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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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으로 바뀐 결정적 계기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독백은 그 시절 한국 진보주의자들이 어떻게 중국에 대한 인식을 전환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유전되는지 극적으로 잘 보여 준다.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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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 이후 한국의 진보진영에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국민국가 중 하나로 귀환한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상존했다. 사회주의 중국이 변화한 데 대한 실망감의 핵심은 거대한 국민국가의 등장에 따르는 경계심, 자본주의 수용에 대한 우려, 발전주의 성장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러한 실망감은 현실 중국에 대해 과도하게 이상적인 사회주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주의 중국' 프레임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진보진영에서 유통되는 '사회주의 중국' 프레임은 중국은 사회주의여야 한다는 기대와 국민국가로의 전향에 따른 실망이 공존하는 이상주의적 잣대였다.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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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주의 중국'이라는 세계시민주의가 한국 보수주의가 이야기하는 자유주의적 프로젝트와 다른 탈식민주의적 프로젝트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화'해야 한다. 담론 체계의 '지역화'란 '지식의 지정학'을 구체화하고, 구체화된 지역의 권력체계 위에서 행동이 구상되어야 한다.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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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주의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와 샌프란시스코체제의 위기 속에서 분화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체제하에서 주류 이데올로기였던 반공주의, 친미주의, 경제지상주의 세계관이 새로운 세계의 등장으로 서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가속화되는 글로벌 경제시대는 반공주의를 무너뜨리고, 미국 패권의 추락은 친미주의를 흔들리게 만들고 있으며, 저성장 국면은 경제지상주의의 위기와 맞닥뜨리고 있다. 보수주의의 위기이다.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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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주의의 등장에는 미국이 옳고, 미국이 이기니, 미국 편에 서라는 신식민주의만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이 나쁘고, 중국이 이길 수 없으니, 중국 편에 서지 말라는 신냉전적 중국봉쇄 기획도 숨어 있다.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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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체제나 키신저 시스템이 더 이상 굴러갈 수 없을 때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을까. 그것은 어느 때보다도 한국인의 선택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체결하여 신냉전 시대로 후퇴할 수도 있고, 키신저 시스템을 포기하고 다시 미국의 '선물'만 바라보며 살 수도 있다. 반대로 다자주의 시대에 걸맞게 미국에게 신식민주의 요소를 줄이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 주도적으로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체제로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한국의 힘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체결 시기와 분명히 달라져 있다. 그때는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이 배제되었지만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힘이 생겼다.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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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안보 보수주의자들이 지닌 식민성은 약소국이라서 어쩔 수없이 보이는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프란츠 파농이 말한 이른바 '백인성'의 일종이다. '백인성'은 백인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백인의 눈에 자신들을 비추어 행동하며, 백인의 가치로 세계를 보는 의식을 말한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옹호한다는 것은 미국의 가치로 세계를 보고, 미국의 눈에 맞추어 행동하며, 미국에게 자기들의 생존권마저도 맡기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신의 생명조차도 주인의 결정에 맡기는 무서운 '백인성'이다.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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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성이 발휘될 수 있는 단일 시장은 FTA식의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는 평화공동체적 단일 시장을 뜻한다. 사람이 걸어서 서로 오갈 수 있는 단일 시장은 애덤 스미스가 오래전부터 구상한 "문명연방
(commonwealth of cvilization)"과 비슷한 형태일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세력은 중국을 전후체제 너머의 새로운 문명연방 구축에 활용해야 한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나오는 잉여들을 더 이상 미국과 미국이 지배하는 기구들의 처분에 맡길 것이 아니라, 이 잉여들을 더 나은 국가체제를 구축하는 해방의 도구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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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의 신식민주의체제가 흔들리고, 아시아의 역량이 성장했고,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도 패권을 장악하지 못하는 지금이 바로 우리에게 기회이다. 100년의 꿈을 꾸자. 지난 100년 동안 꾸었던 꿈. 앞으로 100년 동안 누려야 할 그 꿈. 짱깨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꿈을 꾸는 일이다. (652)
짱깨주의의 탄생/김희교/보리 20220425 676쪽 33,000원
언론은 중국에 관해 보도할 때 "분노와 혐오 조장, 선입견이 담긴 감정적이고 부정적인 단어 사용, 중국인 몇 명이 한 일도 중국 전체의 문제로 보도, 중국이 잘한 일도 나쁜 점을 보도, 전 세계적 문제나 자연현상도 중국 탓, 미국의 행위는 국가전략의 문제, 중국의 행위는 도덕의 문제, 미국이 그렇다면 그런 것, 중국의 입장은 없거나 구색용, 일단 문제를 제기하고 결과에는 상관하지 않음, 한 언론의 보도를 거의 모든 언론이 반복 재생"하고 있다. 진보·보수 매체를 불문하고 포털저널리즘으로 중국 혐오를 생산한다. 짱깨주의자들은 미국식 신식민주의자의 시각으로 중국을 보며 혐오와 증오를 부추긴다.
짱깨주의는 포털저널리즘과 보수주의자들이 만든 프레임이는 시각도 필요하다. 중국과 공산당, 시진핑을 무조건 대변하거나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반짱깨주의자인 저자가 중국과 미국을 이용하자는 큰 그림을 제시한다. 국제 관계를 특정 국가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중국 담론은 "백인성" 관점이 아니라 "지식의 지정학" 개념으로 중국을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덧. 오탈자
- 182쪽 14행 개입 소유분 → 개인 소유분
- 353쪽 6행 중국이 문제다'라는 → '중국이 문제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