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의 미로 - 가난의 경로 5년의 이야기

노랑의 미로 - 가난의 경로 5년의 이야기
서울역을 등지고 한강대로를 건너 직선거리 400미터. 남대문경찰서에서 남산 방향 도로를 건너 북동쪽으로 250미터. 힐튼호텔로부터 비즈니스·문화·역사·쇼핑의 중심을 건너 동쪽으로 300미터. 그 위치가 가난의 위치였다.(80) 첨단과 수직의 고층빌딩 아래에서 낡았고, 삭았고, 헐었다. 벌레가 파먹은 듯한 지구의 후미진 땅에서 동자동이 도시의 뒷면을 구성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소의 주거 공간에서 인간에게 던져진 가장 남루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죽음과 동거했다. 그들은 한 건물에서 살았지만 남모르게 죽었다.(32)

9-2×는 동자동에서도 월세가 가장 싼 건물에 속했다. 보증금 없이 지하는 14만 원, 1~3층은 15만 원, 4층은 16만 원(가장 큰 방인 404호는 18만 원)이었다. 월세는 수도세·전기세를 합한 금액이었다. (...) 9-2×와 이웃한 건물들의 방값은 월 17만 원이었다. 20만 원에 별도 보증금을 받는 방들도 있었다. 동자동 '여인숙 골목'의 방들은 더 비쌌다. 9-2×에 내는 돈으로 이사 갈 수 있는 방은 동자동에도 더는 없었다.(64) 방 한 칸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방 한 칸을 집 한 채로 알고 살도록 9-2×는 지어졌다.(67) 가난하다고 망가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가난이 망가뜨린 사람과 동네라고 여겨졌다.(84)

건물엔 모두 마흔여덟 개의 방이 있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는 층마다 열한 개의 방으로 쪼개졌다.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방들이 뚫려 있었고, 방마다 합판으로 짠 나무문이 불규칙하게 붙어 있었다. 4층엔 방이 다섯 개였다. 다섯 개 중 두 개는 9-2×에서 가장 큰 방들이었다. 월세가 3~4만 원 더 비쌌다. 관리인이 그중 하나를 방세 없이 썼다. 마흔여덟 개 방 가운데 사람이 살지 않는 방은 세 개였다. 지하 방 하나는 창고가 됐고, 1층 교회가 방 두 개를 터서 썼다. 퇴거 사태 전후로 사람이 거주한 방은 모두 마흔다섯 개였다.(60)

2015년 2월 5일 9-2× 방마다 노란색 퇴거 통지가 붙었다. 역사가 흘린 이야기들이 9-2×로 흘러들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시절을 통과해온 그들은 서로 다를 것 없이 가난했다. 가난했으므로 9-2×에 와서야 쌓이는 가난한 역사가 있었다. 사건의 한 모퉁이에서 누락한 역사와,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역사가, 강제퇴거를 만나 '역사에 관심 갖지 않는 새 역사'를 시작했다. 각자의 시간을 거쳐 9-2×를 찾아온 사람들의 기억이 어둡고 눅눅한 건물 안에서 서로의 기억을 향해 가지를 뻗었다.(117) 건물주가 노란 딱지를 붙여 강제퇴거를 통보했다.

고물은 쓸모없어서 고물이 아니라 버려져서 고물이었다. 쓸 만한 것들이 버려졌다는 이유로 고물의 이름을 얻으면 버린 것들을 주워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물보다 못한 인생(349)이 되었다. 얻어먹는 자들의 걸음도 벌어먹는 자들의 노동만큼 고단했다. 몸을 쓰고 기운을 소진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벌어먹는 자나 얻어먹는 자나 다르지 않았다.(413) 국가가 '정화'를 선언할 때마다 닦아야 할 얼룩처럼 청소됐고, 도시가 '정비를 추진할 때마다 수리해야 할 부품처럼 교체됐다.(451) 동자동이 그랬고 동자동에 모인 사람들도 그랬다.

안전진단 결과 건물 노후화로 위험 등급을 받았다며 건물주는 전원 퇴거를 요구했다. 게스트하우스로의 리모델링이 진짜 목적이었다.(458) 가난해서 쫓겨난 그들은 가난해서 멀리 가지 못했다. 그들을 도시에서 밀어내는 것이 가난이었지만 그들을 도시에 붙들어두는 것도 가난이었다.(460) 가난의 경로는 흡혈의 경로였다. (...) 피를 빠는 것들과 피를 빨리는 자들은 대개 같은 동선 위에 있었다.(485) 반전은 법원에서 나왔다. (...) 퇴거 거부 주민들이 석 달 전 제기한 공사 중지 가처분을 법원이 받아들였다.(435) 버티지 못한 주민들이 차례로 떠나고 7월부턴 네 명만 남았다. 건물주는 단전과 단수를 단행했다. 그 건물주가 법원 판결 뒤 게스트하우스로의 용도 변경을 포기했다. (...) 건물주는 쪽방을 유지하는 대신 서울시에 건물 전체 임차를 요청했다. (...) 서울시도 건물주의 요청을 받아들였다.(436)

리모델링 중단 뒤 남은 것은 흉터였다. 서로에게 흉터를 남긴 채 공사는 게스트하우스로의 리모델링에서 쪽방 보수공사로 전환했다.(437) 게스트하우스와 쪽방의 차이는 리모델링과 땜질의 차이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를 만들 목적으로 부수고 쪽방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건물은 날림으로 때워졌다.(445) 9-2×는 더 자잘해졌다. 마흔다섯 개였던 방이 쉰한 개로 늘어났다. (...) 건물주는 예외 공간을 두지 않고 모두 방으로 만들어 수입원을 추가했다. 건물 입구엔 '해 뜨는 집'이란 이름이 붙었다. (...) '해 뜨는 집'이 됐지만 여전히 해가 들지 않았다.(486) 공사를 마친 9-2× 건물 외벽과 내부 방문에 노란색이 입혀졌다. 무채색 동자동에서 노랑만 홀로 유채색이었다. 9-2× 건물이 마침내 노란집이 됐다.(493)

노란집의 강제퇴거 대상 주민은 마흔다섯 명이었다. 그들 중 재입주한 사람은 여덟 명(18퍼센트)이었다. 퇴거에 응하지 않은 네 명을 제외하면 이사 나갔다 되돌아온 사람은 네 명뿐이었다.(503) 재입주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노란집엔 없었다. 쪽방은 몸을 누이는 집이었지만 반드시 돌아가야 할 집은 아니었다. 가난한 자들은 작은 충격으로도 흩어진 뒤 꼭 그 방이 아니라 '그 방 즈음'으로 돌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되돌아가야 할 본래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 가난한 자들이 흩어지는 방식이었다. 돌아갈 이유는 없으나 완전히 멀어질 수도 없다는 것이 가난한 자들이 모이는 방식이었다. 가난한 그들은 가난한 방 주위를 인공위성처럼 맴돌며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506) 쪽방에서 쫓겨난 그들이 찾아간 새 방도 여전히 쪽방이었다. (...)가난한 자들에겐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 거주·이전의 자유는 자유를 살 돈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됐다.(508)

가난은 시각적이었다. 가난한 방일수록 인간을 우습게 아는 시커먼 균사체가 점령했다. 가난은 후각적이었다. 가난한 시간일수록 텁텁하고, 답답하고, 막막한 냄새를 쌓아올렸다. 가난은 촉각적이었다. 가난한 벽일수록 눅눅하고, 축축하고, 끈적했다. 가난은 청각적이었다. 가난한 동네일수록 다툼이 많고, 욕설이 잦고, 웃음도 크고, 시끄러웠다. 가난은 미각적이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사는 맛이 쓰고, 맵고, 짰다. (...) 가난은 그렇게 오감으로 감각됐다. 그 가난이 오감을 자극하며 몰려드는 곳에 도시가 있었다. 도시가 가난을 몰아넣은 땅에 그 동네가 있었고, 가난하므로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입주 뒤에도 노란집 방마다 차곡차곡 들어찼다. 건물 벽과 방문이 노란색으로 덮였으나 노랑 안에선 새까만 가난이 여전히 충만했다. 지워지지 않는 검정이 활짝 피었다.(542)

가시 스펙트럼 576-580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의 빛깔. 가장 눈에 잘 띄는 원색. 방문마다 붙어 강제퇴거를 통보한 날벼락. 잿빛 9-2x가 보수공사를 거친 뒤 껴입은 헌 옷 같은 새 옷. 무채색으로 가득한 동네에서 홀로 도드라진 건물 한 채, 리모델링을 멈추고 땜질로 전환한 부실의 결과물. 있음이 없음을, 많음이 적음을, 위가 아래를, 안이 밖을, 이 세계가 쫓겨난 존재들을 대하는 태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경로, 잘라내고 끊어내도 다시 얽히고 묶이는 이야기의 혼돈, 환하게 칠한 건물 안엔 정작 없는 무엇. 덧칠만 하면 찬란한 세계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징그러운 환상. 머지않아 벗겨지고 말 껍데기. 비릿한 검정의 속임수, 노랑의 미로.(544)

가난의 뿌리는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이끈 길들과 그 길을 찌르는 뾰족한 돌멩이들 틈에 박혀 있다.(211) 9-2× 주민들은 삶의 배경은 모두 달랐지만 삶의 과정은 놀랄 만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가난했다. 그들은 부모 세대부터 가난을 유전처럼 물려받았다. 전쟁 중 고아가 돼 가난했거나, 가난 때문에 전쟁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183) 가난은 가난한 땅 밖에서는 머물 곳을 찾지 못했다.(217) 가난과 다투는 것은 가난이었다.(241) 가난이 모이는 것은 갈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이유와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르지 않았다. 떠나는 자는 가난해서 떠났고, 남는 자도 가난해서 남았다. 누가 들어오고 누가 나가든 가난만 변함없이 방에 남아 차곡차곡 쌓였다.(278) 가난과 질병을 안고 사는 그들은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면 입원했거나 입관됐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감각하고 확인했다.(340)

가난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엔가 모여 있다. 어떤 가난은 확산되지만 어떤 가난은 집중된다. 가난이 보이지 않는 것은 숨겨지고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 가난의 이야기가 노란집에 있었다.(9) 그들의 기억으로 이 역사를 쓴다.(117)

노랑의 미로/이문영/오월의봄 20200518 580쪽 24,000원


덧. 오탈자
454쪽 11행 재식훈련 → 제식훈련
455쪽 14행 원상폭격 → 원산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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