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이후의 세계

공정 이후의 세계
  • 이 책은 '공정'에 관한 책이 아니다. 나는 '공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만하고 싶어서 이 책을 집필했다.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사실 좀 답답하다고 느껴왔던 것은 아닐까? 꽤 오랫동안 '공정'을 주제로 한 대동소이한 글들이 뻔한 돌림노래처럼 이어졌다. "이건 공정하지 않아!"라고 누군가가 외치면, 다른 의제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리 모두가 "공정한가, 불공정한가"를 따지게 되어버렸다. 정치인들은 당연하다는 듯 모든 말들을 '공정'으로 포장했고,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앞다투어 '공정'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마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공정' 단 하나뿐인 것처럼. 하지만 이 지나친 떠들썩함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요란한 약속들이 내 삶을 바꾼 것은 없었으니까. (5)
  • 모두가 공정한, 즉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하며 따라서 내가 부당하게 손해보지 않아야 한다는(다시 말해, 똑같이 보상받거나 똑같이 당해야 한다는) 신념은 각자도생과 능력주의에 기반한 삶의 방식을 정당화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공정성 모델은 구조적·역사적 불평등을 무화시키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회적 맥락의 효과를 지워버리는 원자화atomization 모델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원한다"는 외침은 결국 "성공하고 싶으면 노력해라" "네가 가난한 것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어쩌면 동전의 양면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온전한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차별과 불평등을 외면하게 만든다. 모든 개인은 노력을 통해 성취해야 하며 그외의 경로는 부당하다. 나의 '노오력'은 내 미래를 배신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구조적 억압과 불평등을 조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과 수정 조치는 나의 노력을 보장할 것 같지 않으니 일단 반대한다. (32)
  • 신자유주의적 존재론에 따르면 자율적인 개인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므로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실직과 같은 사회적 위험을 해결하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사회 안전망 구축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사회 안전망에 기댈 것이 아니라 부단한 자기관리와 노력을 통해 성공해야 한다. 이처럼 일종의 기업 논리가 삶 전체에 침투하는 현상을 기업 식민화corporate colonization1라고 부른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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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이후의 세계/김정희원/창비 20220725 264쪽 17,000원

2020년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하자 난리가 났습니다. 취업준비생은 물론 인국공 정규직 노조도 공정하지 않다며 반대를 넘어 분노했습니다. 공사는 직접고용 과정에서 경쟁시험을 진행하여 47명을 해고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마저 샀습니다. 노조는 "불공정으로 점철된 직교용을 강행"한다며 반대했고, 청년들은 "비정규직이 운으로 정규직이 되는 불공정한 무임승차"라며 분노했습니다.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는 것으로 수렴되었습니다. 실제 정규직 전환 대상은 공채로 선발하는 일반직과는 전혀 달랐고 취준생의 밥그릇을 빼앗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연봉도 정규직보다 낮았고, 무기계약직으로 고용되어서 실질적 정규직이 아니었습니다.

피해를 본다며 억울하다며 분노를 일으킨 감정을 "피해 입은 특권"이라고 합니다. 기득권이라고 여겼던 계급이 박탈감과 불안감으로 당연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일어난 것입니다.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며 일어난 의대 파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정은 시대정신이라는 담론이 됐습니다. 반대하면 불공정이 되는 구조가 되어 반론은 왜곡됐습니다. 이런 메커니즘은 기득권 계층과 극우 미디어와 결합하여 정당한 가치로 포장되고 변질했습니다. 공정을 외치는 바탕에는 "시험도 보지 않고 SKY에 입학하려고 하는냐"는 것입니다. 기득권이 걷어찰 사다리가 줄어들자 내는 소리입니다.

청년들은 능력에 따른 차등대우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능력주의에 따른 임금격차, 차별, 서열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공정할까요?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능력자일까요? SKY에 고소득층 자녀의 비율이 증가하고, 최상위 고소득층 자녀들이 장학금을 신청하는 비율이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재학교 합격자를 보면 절반가량이 대치동 학원 출신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소득차이에 따라 사교육비는 평균 다섯 배 차이가 납니다. 시험과 능력주의는 부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는 말이 능력주의의 허구성을 잘 표현합니다.

1969년 두 명의 흑인이 인종 차별 때문에 심사에서 차별받았다며 뉴욕 필하모닉을 상대로 소송했습니다. 1970년대에 단원 선발 과정에 장막을 치고 오디션을 보는 절차가 추가됐습니다. 블라인드 채용을 하자 단원 성비는 1970년까지 여성 비율이 0%였다가 1980년에 여성 비율이 12%를 넘어 1990년대에는 25%를 넘어섰습니다. 신입 단원중 여성의 비율이 급증하여 지금은 반반입니다. 흑인 음악가들의 법정 싸움 덕분에 바뀌었지만 정작 흑인 비율은 어떻게 됐을까요? 1969년 한 명이었던 흑인 연주자는 2020년 106명의 정규 단원 중 흑인은 여전히 한 명입니다.

블라인드 채용은 백인에게 유리했습니다. 백인 여성들은 남성과의 격차를 따라잡았지만, 흑인은 차별과 불평등으로 백인 여성조차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소득층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보다 클래식 영재 교육을 받은 백인들이 유리했던 것입니다. 시험과 채용 절차를 바꿔봤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이들이 고소득층 백인 기득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험 제도가 바뀌었다고 흑인 연주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소수자 배려와 같은 할당제와 돌봄으로 차별과 혐오를 넘은 인정의 재분배가 필요합니다. 7장에서 다룬 갑질과 정의로운 조직에 관한 내용은 짧지만 훌륭합니다.

시대와 불화하는 삶은 미래가 지금이고 우리 미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이 더욱 소중해집니다.


  1. 기업 식민화 : 조직 커뮤니케이션 학자 스탠리 디츠(Stanley Deetz)가 제안한 개념. 현대인들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낸다. 그만큼 일과 직업은 우리의 삶과 일상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디츠는 기업이 가족, 정부, 교회, 학교와 같은 다른 모든 제도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삶을 규정짓고 있다고 본다. 또한 기업 중심적 사고와 담론이 사회 전체에서 지배 원리로 통용되면서, 공적 영역에 속한 제도들 역시 기업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정부기관의 민영화, 대학의 시장화와 같은 현상이 그것이다. 개인들도 마찬가지로 생산성, 효율성, 자기계발, 시간 관리, 이윤 추구와 같은 기업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놓고 자신의 일상을 계획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통틀어 기업에 의한 삶의 식민화라고 볼 수 있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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