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
-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들이 가부장제의 유용한 여성-신체자원(자궁-여성 유기체로서의 대상)으로 동원, 소비, 착취, 억압되는 것을 거부하는 움직임일 뿐만 아니라, 이때껏 스스로의 신체의 교환가치를 더 높이고 적어도 남성의 성애적 욕망의 투여가 일어나지 않는 무가치한 몸(교환가치=0)으로 전락하지 않고자 지속적이며 의무적으로 수행하던, 일체의 꾸밈노동을 집단적으로 보이콧하는 행위입니다. (23)
- 여성의 신체 역시 남성적 담론과 실천의 장 안에서는 교환을 위한 '유용한 물건'이 되며, 따라서 일종의 상품으로 기능합니다. 그리하여 사실상 여성에게 자신의 '신체'는 남성 욕망경제 매트릭스 속에서 사회경제적으로 교환가치가 인정되는 상품으로 존립시켜야 할 대상이 됩니다. 달리 말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연적으로 여성-신체자원이라는 '천연적 노동대상물'을 타고 났으며 이를 보다 세련되게 관리하고 정교히 세공해내는 기술을 투입함으로써 스스로의 신체를 '가공된 노동대상'으로 탈바꿈하는 '꾸밈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33)
- 현재 탈코르셋 운동은 10대, 20대의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주축으로 실천되고 있으며 이는 비혼-비연애-비출산-비섹스라는 4B(4非) 운동의 선언과 면밀히 연결된 운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선언을 통해서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몸이 더 이상 가부장제 사회의 결혼제도나 이성애적 연애 속으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남성들이 지닌 '보슬아치' 환상의 가능조건 자체를 근본적으로 분쇄해버립니다. (51)
-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에 의해 위계적이며 불균등하게 배치되어 왔던 여성의 신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혀 다른 조건 아래에서, 전혀 다른 물질적 관계 속에서 새롭게 배치하려는 운동입니다. (69)
- 탈코르셋 운동을 실천하는 여성들에게 '남성이 되고 싶어서 그러느냐'라고 조롱을 던지는 것은 사실상 남성형을 이상적 표준형으로 단일하게 제시하고 모든 것을 오로지 남성형으로 환원시키는 남근 일원주의적 사고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탈코르셋 운동을 실천하는 여성들은 고정된 여성성 수행 방식의 아비투스를 하나하나 덜어내고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 완전히 다른 효과를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이상적 여성성을 실행할 때 얻게 되는 달콤한 당근과 수혜를 과감히 포기하는 동시에 남성들의 짧은 머리, 민낯, 안경, 편한 복장이라는 언뜻 똑같아 보이는 요소들을 여성의 신체와 새롭게 접속시키고 재배치함으로써 그 사회적 의미를 전복하고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81)
-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결코 내재적이지 않습니다. 늘 그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남성 인식주체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자족적인 것도, 독립적인 것도, 온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사회학자 부르디외에 따르면 여성의 사적 취향과 기호, 욕망, 앉거나 걷는 자세, 태도, 어투, 제스처까지 사회적으로 구별되는 성별 계층성에 의해 각인되고 결정됩니다. 여성이 온전히 자유롭게 선택하는 취향으로서의 외모 꾸미기란 사회적 환상에 불과합니다. (93)
- 남성들이 입는 갑옷이 전쟁터에서 창이나 화살 등에 공격당해 치명상을 입지 않기 위한 보호 장치라면, 여성들이 입는 코르셋은 여성의 신체 장기 훼손과 변형 등으로 인해 자신의 갈비뼈에 찔려 죽거나 염증을 일으키는 병리적 증상들을 여성의 실존 조건의 하나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족쇄이자 스스로에게 상해를 일으키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성의 몸은 그 숱한 불편함과 고통을 견뎌내는 몸, 고통에 의해 약화된 몸을 가장 여성화된 상태로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건강이 넘치는 몸, 활기에 가득한 몸, 방기된 몸은 이미 남성적 몸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119)
탈코르셋 선언/윤지선, 윤김지영/사월의책 20190715 136쪽 14,000원
"결국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이 어떻게 남성과 구별되는 외형과 아비투스로 구성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어떠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이처럼 여성 문제 자체의 초점을 옮기고자 하는 데서 탈코르셋 운동의 혁명적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82)" 꾸미지 않을 자유는 혁명이 아니라 진작 일상이 돼야 했다.
덧. 오탈자(?)
119쪽 11행 왜냐하면 건강이 넘치는 몸 → 건강이 넘치는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