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성우로 일하던 손열매는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 삶이 흔들렸습니다. 룸메이트이자 대학 선배였던 고수미가 돈을 떼먹고 자취를 감췄기 때문입니다. 시멘트공의 피가 흐르는 손열매는 떼인 돈 천삼백을 받을 요량으로 고수미의 고향인 완주로 갔습니다. 고수미의 엄마는 매점을 하며 장의사 일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동시성을 가진 매장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고수미는 없었고 엄마와도 연락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손열매에게 서울은 방귀를 뀌고 싶어도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간격을 확보하지 못해 참아야 해서 별로였습니다. 갈 곳 없던 손열매는 매점에서 알바를 하며 얹혀 지내게 됐습니다. 잘생긴 리트리버 같은 동네 청년 어저귀, 아침마다 양미네 집 앞에서 잠을 깨우는 푸틴과 간디, 입이 자물통 같은 이장, 시고르자브종인 샤넬과 산책 나오는 은퇴한 배우랑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됐습니다.
어저귀는 스스로 나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존재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나무는 "뿌리와 뿌리가 맞닿고 흙 속의 곰팡이가 연결선을 만들면서 안부를 전하고 서로 위급한 신호를 보내고 영양분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손열매에게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을 알려줬습니다. 어저귀 덕분에 손열매는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신비한 체험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창인 고수미 눈에는 어릴 때부터 말이나 행동이 엉뚱해 외계인으로 보였습니다.
"인생은 독고다이, 혼자 심으로 가는 거야. 닭알도 있잖여? 지가 깨서 나오면 병아리, 남이 깨서 나오면 후라이라고 했어." 한숨 쉬는 손열매에게 닭장집 할머니가 알려 줬습니다. 춤바람난 중학생 양미에게 배운 슬픈 얘기는 하지 말자는 말을 다시 만난 고수미에게도 그대로 해줬습니다.
손열매는 완주에서 맞은 첫 여름을 그렇게 완주했습니다. 내가 내 맘속에 지어 놓은 사랑은 잃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습니다. 손열매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생을 완주하려고 방귀도 참아야 하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나저나 외계인처럼 사라진 어저귀는 손열매 앞에 다시 나타날까요? 우산을 돌려줘야 하는데 소식이 궁금합니다.
첫 여름, 완주/김금희/무제 20250508 224쪽 17,000원
손열매에게 서울은 방귀를 뀌고 싶어도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간격을 확보하지 못해 참아야 해서 별로였습니다. 갈 곳 없던 손열매는 매점에서 알바를 하며 얹혀 지내게 됐습니다. 잘생긴 리트리버 같은 동네 청년 어저귀, 아침마다 양미네 집 앞에서 잠을 깨우는 푸틴과 간디, 입이 자물통 같은 이장, 시고르자브종인 샤넬과 산책 나오는 은퇴한 배우랑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됐습니다.
어저귀는 스스로 나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존재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나무는 "뿌리와 뿌리가 맞닿고 흙 속의 곰팡이가 연결선을 만들면서 안부를 전하고 서로 위급한 신호를 보내고 영양분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손열매에게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을 알려줬습니다. 어저귀 덕분에 손열매는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신비한 체험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창인 고수미 눈에는 어릴 때부터 말이나 행동이 엉뚱해 외계인으로 보였습니다.
"인생은 독고다이, 혼자 심으로 가는 거야. 닭알도 있잖여? 지가 깨서 나오면 병아리, 남이 깨서 나오면 후라이라고 했어." 한숨 쉬는 손열매에게 닭장집 할머니가 알려 줬습니다. 춤바람난 중학생 양미에게 배운 슬픈 얘기는 하지 말자는 말을 다시 만난 고수미에게도 그대로 해줬습니다.
손열매는 완주에서 맞은 첫 여름을 그렇게 완주했습니다. 내가 내 맘속에 지어 놓은 사랑은 잃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습니다. 손열매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생을 완주하려고 방귀도 참아야 하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나저나 외계인처럼 사라진 어저귀는 손열매 앞에 다시 나타날까요? 우산을 돌려줘야 하는데 소식이 궁금합니다.
첫 여름, 완주/김금희/무제 20250508 224쪽 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