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 설거지나 방 청소는 엄마 마음에 꼭 들게 해놓지 못하는 딸이지만 장남처럼, 아들처럼, 사람 구실하는 자식처럼 엄마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게 하는 그런 딸이고 싶었다. (11)
  • 딸이 겪는 가족은 아들이 겪는 가족과는 다르다. 마치 같은 얼굴의 왼쪽과 오른쪽이 미묘하게 다른 것처럼, 그 미묘한 차이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치는 것처럼. (15)
  • 현대 교육은 불행히도 효율적인 소시오패스 배출 코스와 양심적인 문명인 양성 코스를 완벽하게 분리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27)
  • 조건 없는 사랑은 사실 혈연관계에 제한되는 사랑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랑이다. (29)
  • 서열 다툼 없이 내킬 때 왔다가 문득 떠날 수 있는 좋은 술자리 (52)
  • 혼자인 여자가 여럿 모인 조합은 그 존재만으로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힘이다. (72)
  • 나는 아들들이 한국의 가정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그렇게 똑같이 집안의 다른 아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야생으로 보이고도 사랑받은 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78)
  • 딸이 자라며 아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운이 좋아봐야 '아들 못지 않게' 길러질 뿐이다. (80)
  • 복수하기 위해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속 접촉하는 것이 서로에게 해롭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85)
  • 용서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저주와 앙심을 품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최소한의 자기방어에 가깝다. (88)
  • 남이 나를 한 대 치는 것은 용서해도 내가 남을 한 대 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딸들의 불균형한 정신은 세상의 온갖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토대다. 나는 남의 정각이를 걷어차지 않을 것이며 그러므로 나의 정각이를 걷어찬 인간도 용서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 거기부터 출발해야 한다. (89)
  • 먹이사슬 하위의 동물은 포식자에게 물어뜯겨도 죽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하는 운명이다. 내가 평생 우울하고 화가 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나는 여성이고 피식자라는 세상의 주문. "지나가다 포식자가 너를 한 대 때려도 너는 똑같이 치면 안 된다. 그러면 더 큰일을 당할 것이다." (134)
  • 혼자 사는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집에 구비하고 싶었을, 휴대가 간편하고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 만구천구백 원짜리 마동석. (146)
  • 인류는 딸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199)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허새로미/봄알람 20210228 208쪽 13,000원

같은 얼굴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다른 것처럼 딸은 아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지 않는다. 딸들은 가부장제라는 온갖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세상은 넓고 몰랐거나 무관심했거나 혹은 외면했던 일이 너무 많다. 부당한 일에 세상을 사는 모든 딸들은 용서하지 말고 살아야 하고 어떤 비난도 없어야 한다.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는 의미로 오해했다. '죽으려고 살기' 혹은 '죽을 생각으로 살기'를 그만두었다는 중의적 표현을 숨기고 있음을 알았다. 가족을 떠난 뒤 비로소 삶이 시작되는 딸들은 서열 다툼 없이 내킬 때 왔다가 문득 떠날 수 있는 좋은 술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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