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사람이 한세상 살다 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구의 부모로 살면서 그 핏줄의 의무에만 충실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거라면 다른 동물들도 다 하는데 사람의 삶이라면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수십억분의 1만큼은 좋아지길 바라고 수십억분의 1만큼만 힘을 보탠다면 사람으로서 살다 간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정도로 나는 인생의 의미를 정리했다. (49)
-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유전자 수나 인간이 만든 문명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문명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자존심을 갖고 남을 둘러보면서 사는 모습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며, 그런 지혜를 어떻게 얻었는지,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결코 유전자로는 밝혀낼 수 없는 비밀의 영역일 것이다. (59)
- 뇌물도 선물이라고 우기고 받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지만, 선물도 뇌물일 거라고 생각하고 안 받는 사람도 있다. 올바르지 않은 일인지 알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말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인정'이라는 사고방식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63)
- 어떤 종교도 인류애보다 우선할 수 없다. 인류가 공동운명체며 모든 인간이 저마다의 천부적인 생명을 얻은 귀중한 존재임을 일깨우지 않는 종교는 종교라 할 수 없다. 빈 라덴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그런 테러를 저질렀다 해도 그가 주모자라면 그의 신이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그를 용서할 리 없다. 또한 미국이 아무리 정의와 정당방위를 외친다 하더라도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다면 미국인들이 믿는 신도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131)
- 젊은 세대들이 '사랑밖엔 난 몰라' 하고 사는 것도 곤란하지만 '사랑 따윈 난 몰라' 하면서 사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젊은이들이여, 힘들지만 그래도 사랑은 할 수 있다. (144)
- 그 뒤로 여성 문제에 관해 글을 쓸 때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내 시각보다 앞서는 글을 썼다. 내가 페미니스트의 소양이나 여성적 시각이 기본적으로 부족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각적으로 반응을 못하고 항상 뒤에 가서야 당시에는 급진적으로 보이는 문제 제기가 옳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성 문제는 여성의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보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다는 확고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이 온갖 박해와 방해, 비난 속에서 시작해 이루어놓은 성과물을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 무임승차로 공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른 부문처럼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여성의 권리는 법적으로 눈부시게 신장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가 페미니스트들한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나 자유에 대해 무심하다.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쯤은 그것이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대를 무릅쓴 투쟁에서 얻어졌으며, 거기에는 그런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170)
- 우리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서먹서먹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주춤주춤 다가간다.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 인생에서 많지 않았던 그 뜨거운 사랑의 순간들을 잿빛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우리는 이별을 맞아야 하고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모든 사랑했던 순간들에 대한 예의고 또한 이별의 예의다. (194)
- 예언자에게 가장 비참한 사태는 예언이 빗나가는 것이다. 그다음 비참한 사태는 예언이 적중하는 것이라고 한다. 불길한 예언은, 예언자에겐 안된 일이지만 빗나가는 것이 다행스런 일이다. 예언까지는 안 가더라도 불길한 예측이 적중하는 것을 보면 비참하다. (199)
- 그렇게 잘 키워진 사회 각 분야의 스타들이 국위도 떨치고 돈도 잘 벌어 잘 먹여 살릴 테니 '너희 능력 없는 사람들은 박수부대로 살아라', 이 말이다. 만약 태어나서부터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나라가 적절하게 대책을 세우지 않아 인생의 길목 길목에서 실의와 좌절을 겪게 될 젊은이들이 더 이상 박수부대는 되지 않겠다면 어쩔 것인가. 후배가 뱉은 "그러니까 세상이 한번 뒤집어져야 해요" 라는 말이 칼이 되어 가슴을 후벼 팠다. (249)
- 기자 생활 중도에 영화 공부를 위해 전문대에 들어간 동료가 있다. 당시 서울대와 그 전문대의 학력고사 점수 차이는 백 점 이상이었기 때문에 서울대 출신인 그는 상위권 성적을 자신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 얕보았던 동급생들이 자기보다 못하는 과목은 국, 영, 수뿐이고 이해력이나 학습 능력, 학업 열정과 성취도가 모두 자신보다 월등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명문대 출신 또는 각종 고시와 시험을 통과한 이 사회의 전문직업인이나 지식인들을 '국어, 영어, 수학 잘했던,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라는 지론을 자주 편다. (262)
- 삼성전자의 이사 연봉은 52억 원이다. 로또복권에 여러 번 당첨되는 수준이다. 전자 분야의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전자의 이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에 입이 벌어지지만 배가 아프지는 않다.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를 목표로 하는 현대자동차가 생산직 노조원들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것도 배 아프지 않다. 비록 나의 연봉이 그에 못 미친대도 말이다. (270)
-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침묵하는 것,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분노하면서 가정폭력에 무심하게 되는 것은 가치관의 혼돈이 일어난 탓일 것이다. 모든 폭력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도덕심의 잣대는 하나여야 한다. (276)
- 요즘은 민중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시민이 들어섰다. 그러나 나는 민중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뜨끈하고 울컥거리는 감동과 때로는 성난 파도와 같이 휩쓸려가는 거대한 힘, 그리고 그 거대함 속에 개인이나 개인의 이익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는 그 익명성의 낱말을... (355)
-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어떤 부모도 자식을 선택해서 낳을 수는 없다. 부모 노릇 면허증을 받고 부모가 되는 사람도 없다. 아이들이 나를 어떤 부모로 추억할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부모도 자식에게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처럼, 자식도 부모에게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나를 포함하여 요즘의 부모들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히 관찰하고 일일이 간섭하며 자식의 인생에 너무 깊게 개입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넓게 울타리가 돼주고 믿어주면 자식도 거기에 부응한다는 사실을 내 경험을 통해 잘 알면서도 말이다. (372)
- 평생 한 번도 확고해본 적이 없었다. 신념도 없었다. 지금도 매일 매순간 흔들리고 자신이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지 매번 두려웠다. 죽을 때까지 이런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사람으로 태어나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예의, 안 되면 염치만은 차리자, 라는 생각으로 살고 글을 썼던 것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378)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김선주/한겨레출판 20100615 380쪽 14,000원
한겨레 논설주간이었던 언론인 김선주가 세기말 전후로 쓴 글을 모았습니다. 왕언니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에 지나치거나 외면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하는 나이지만 슬그머니 0.7을 곱하고 있습니다. 줄어든 나이만큼 예의 있고 염치 있게 살라는 뜻이겠지요. 더 염치 있는 인간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