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달린 여행자
- 이주라는 단어는 라틴어 'migratus'에서 유래했는데,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엄청난 지리적 변화를 내포하는 말이다. 새들의 세상에서는 무리 전체가 반영구적으로 계절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현상, 즉 철새의 여정을 일컬어 흔히 '이주한다'고 표현한다. 그 이동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멀리까지 가는지는 새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전 세계에는 약 1만여 종의 새가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은 어느 정도 이주를 한다고 본다. 그러니 대략 계산해도 5000가지가 넘는 이주 형태가 있을 수 있으며, 그중에 어떤 새도 정확히 같은 경로로, 정확히 같은 시기에, 정확히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진 않는다는 점에서 이주 경로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해진다. (16)
- 극제비갈매기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왕복으로 약 4만 킬로미터, 중간에 헤매는 거리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7만 킬로미터나 되는 엄청난 거리를 이동한다. 동시에 북아메리카 서부의 높은 산에서 서식하는 추위에 강한 회색잣까마귀(Nucifraga columbiana)는 한겨울에는 산꼭대기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단 수백 미터 아래로 이주해 산허리에서 평화롭게 겨울을 난다. (31)
- 이주를 떠나기 몇 주 전부터 달라지는 일조시간은 새의 뇌에서 호르몬이 변하도록 자극해 새들이 포만감을 덜 느끼고 더 많이 먹게 만든다. 이렇게 식욕이 늘어난 상태를 '과식증'이라 하며, 그 덕분에 철새는 살을 엄청나게 찌울 수 있다. 평소 12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흰뺨솔새(Setophaga striata)는 이주를 위해 몸무게를 두 배 가까이 늘리는데, 이렇게 과도하게 찌운 살은 캐나다와 남아메리카 사이 3200킬로미터 이상의 여정을 날아가는 데 꼭 필요한 연료로 사용된다. 새들은 비행할 때 시간당 몸무게의 1퍼센트를 소모할 수 있다. (48)
- 이주는 정말 놀라운 능력이다. 몸이 가장 작은 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벌새류는 몸무게가 단 3그램, 몸길이는 7~10센티미터로 아주 작지만 대부분 두 서식지 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혼자 날아서 이주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만 상공을 쉬지도 않고 날아서 지나는 루비목벌새(Archilochus colubris)는 여정의 시작과 끝 지점에 따라 짧게는 800킬로미터에서 최대 1500킬로미터를 이동한다. (70)
- 이주 경로 중 사하라사막, 히말라야산맥, 태평양 같이 거대한 지리적 장애물을 가로질러야 하는 새들은 중간에 안전하게 머무를 곳도 없이 내내 인내력이 뛰어난 비행으로 맞서야 한다. 예를 들어 줄기러기(Anser indicus)는 히말라야를 넘기 위해 해발고도 1만 미터 이상의 높은 곳을 날아가야 하는데, 이는 전 세계 철새가 이동하는 높이 중에서 가장 높다. 이렇게 높은 고도의 매우 차갑고 산소도 희박한 대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기러기는 이주를 시작하기 전에 혈액 내 헤모글로빈 농도를 높이고 허파도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진화시켜 근육에 충분한 연료를 공급한다. (74)
- 큰뒷부리도요는 주기적으로 아주 먼 곳에 있는 목적지까지 여정을 떠나는 습성이 있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하는 새들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개체들의 여정은 특히 놀랍다. 이 지역에 사는 큰뒷부리도요는 매년 가을이면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멈추지도 않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데, 대략 8일 만에 1만1000킬로미터를 이동한다. 이는 전 세계 어느 철새보다도 쉬지 않고 한 번에 가장 멀리까지 이동한 기록이다. 그러나 봄이 되면 이들은 동아시아 해안을 따라 이동하면서 훨씬 더 자주 멈춰 에너지를 충천하고 최상의 상태로 번식지에 도착하려고 한다. (80)
- 궁극적으로는 수많은 철새가 한 가지 항해술만으로는 긴 이주를 안전하게 끝낼 수 없고 여정 전반의 환경 변화에 따라 여러 기술을 적용하면서 날아간다. 새들은 '지구자기장'을 보면서 자신의 위치 정보를 얻는 동시에 몸속에 저장된 '지리학적 지도'로 경로를 보강한다. 시끄러운 암석 해안가에 다가가거나 소리가 울리는 협곡을 지날 때와 같이 어떤 구간에서는 '소리'가 경로를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은 특히 구름이 잔뜩 낀 낮이나 밤에도 철새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어떤 새들은 알에서 깨어난 지 단 몇 주 만에 부모와 함께 이동하면서 배웠던 첫 번째 이주 경로를 기억하고 더 보강해가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는다. (84)
- 알바트로스와 슴새 종류를 포함한 수많은 바닷새와 기러기, 오리, 고니 종류와 같은 물새는 수면에 내려앉아서도 쉴 수 있지만 다른 새들은 그렇게 쉽게 수면에 떠 있을 수 없다. 그 대신 지빠귀, 솔새, 벌새, 도요새, 제비, 종다리 종류와 같은 새들은 이주하는 동안, 그러니까 비행 도중에 잠을 잔다고 알려져 있다. 뇌의 절반은 최소한의 기능만 하면서 쉬고 나머지 반만 깨어서 활동하는 단일반구서파수면(Usws)이라는 휴식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들은 정신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뇌의 각 부분을 서로 다른 시간에 재충전하는 동시에 깨어 있는 한쪽으로는 지속적으로 비행 환경을 추적하고 경로를 조정하며 포식자를 비롯한 여러 위협을 주시한다. (116)
-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의 새가 뚜렷하게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미국쏙독새는 겨울잠을 자는 유일한 새로, 멕시코 북부와 미국 남서부 토착 지역에 있는 동굴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틈새에서 잠을 자며 겨울을 난다. 그 외 수많은 새들은 단기간에 수면 상태에 접어들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겨울잠을 자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수면 상태에 빠진 새들은 대사 속도를 늦춰 에너지를 아낀다. 다만 이런 상태를 몇 시간 동안만 지속하고 한 계절 내내 유지하지는 않는다. 벌새, 칼새, 쏙독새 같은 종류의 새들은 무기력한 상태를 하룻밤 혹은 일시적인 한파 기간 동안 유지하기도 하지만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데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122)
- 줄기러기는 장거리 이주를 할 때 높은 고도로 이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새들이 높은 산을 피해서 더 수월하게 날 수 있는 경로를 찾아 이동하지만 줄기러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히말라야 위를 넘어서 날아간다. 심지어 에베레스트산 바로 위를 지나가는 장면도 목격됐다. 최고 1만50미터 높이로 난 기록이 있으며 단 하루만에 1600킬로미터를 이동하기도 했다. (130)
- 이주하는 새들의 미래에 대해 지금 우리가 단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결국 변한다는 것이다. 새들은 많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고 결국은 해내겠지만 우리도 옆에서 도울 일을 찾아 함께하면 좋을 것이다. (128)
깃털 달린 여행자Migration: Exploring the remarkable journeys of birds, 2020/멜리사 마인츠Melissa Mayntz김숲 역/가지 20230201 160쪽 19,800원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철새가 계절에 따라 다른 종으로 변한다고 했고, 1500년대 스웨덴 대주교인 올라우스 마그누스는 겨울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첫 부총장이 되었던 찰스 모턴은 철새가 주기적으로 달로 이주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가설은 1680년대 후반부터 1720년대까지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가르쳤다고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철새의 이주 행동에 관해 잘 모릅니다. 지금까지 극히 일부만 파악했을 뿐입니다. 그림도 아름다운 책을 보며 다시 겸손해집니다.
